입력 : 2014.07.30 05:34
- 김윤덕 문화부 차장
"고가구가 어떻게 이리 현대적인가." 피트의 질문에 가구박물관 박중선 이사가 답했다. "한국 가구는 비례와 균형, 절제미의 산물이다. 서양 미술로 치면 장식을 배제한 미니멀리즘인데, 한국에선 이미 200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가구들이 어느 예술가가 아니라 동네 목수들이 순전히 자신의 미적 감각에 따라 만든 일상용품이라는 것이다."
피트에게 서울 가면 가구박물관에 꼭 들러보라고 권한 사람은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였다. 그녀는 부엌 가구, 그중에서도 소반에 매료됐다. 원형반, 팔각반, 호족반 등 상판 모양에 따른 소반 종류가 70개가 넘는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산 모양의 나뭇결을 살린 먹감나무 가구들 앞에서 스튜어트는 "한국인은 가구에 자연을 담아 가까이 두고 즐긴 것 같다"며 감탄했다.
한옥 10채에 조선시대 목가구 2500여점을 소장한 가구박물관을 찾은 건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가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을 해 화제가 된 뒤였다. 이곳은 기자들 사이에서 문턱과 콧대 높기로 유명했다. 취재 절차가 복잡한 데다 정미숙 관장이 인터뷰를 극구 사절해온 탓이다. '십고초려' 끝에 만난 정 관장에게 세간 '불평'을 전했더니 손을 내저었다. "인터넷으로 예약받아 한 번에 10명 이내로만 관람시켜서 그래요. 떼 지어 다니면서 한옥의 운치, 우리 가구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어요?"
관람 동선을 따라가니 정 관장의 '고집'이 이해됐다. 대문과 행랑채, 부엌채를 지나면 담 너머 남산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이른다. 사대부 집을 신발 벗고 들어서면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한옥은 앉아서 보는 집'이라 정경부인의 침방이며 누마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집 안팎 풍경을 즐긴다. 안방 문갑은 왜 팔 하나 얹을 만큼의 높이인지, 사방탁자는 왜 사면이 뚫려 있는지, 한옥의 창문을 왜 '차경(借景)'이라 부르는지 앉아서 보면 알게 된다.
나라 지원 한 푼 안 받는 박물관이 외국 국빈들이 앞다퉈 찾는 명소가 된 건 스토리텔링 덕분이다. 전쟁 후 "너희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니?" 묻던 미국 아이들에게 "우리 이렇게 멋지게 살아온 민족이야" 답하고 싶었던 분단국가의 열여덟 살 소녀가 일생의 업(業)으로 일궈온 '작품'이라 더욱 뭉클하다. 정 관장은 VIP들보다 아이들과 아빠들 방문이 훨씬 반갑다고 했다. "조선 사대부들은 하늘과 땅을 읽고, 서책과 풍류를 즐기며, 살 집과 가구까지 직접 만드는 멋쟁이였죠. 앞만 보고 달리느라 삶의 본류를 잊고 사는 남자들이 여기 와 위로와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