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임오군란 직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가 느슨하나마 동맹 관계를 형성해 가던 중의 일본군을 지원하기 위해 제물포항에 주둔했다. 함선에는 수병들이 있었고 그들은 잉글랜드 출신답게 무기와 식료품에 더해 축구공까지 싣고 동아시아로 왔다. 작은 포구에서 동아시아의 거대한 개항장으로 발전해가던 제물포 사람들이 그들과 공을 찼다.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 학교에서 체육 과목의 하나로 축구가 채택됐으며, 1905년 6월 10일 서울 훈련원(지금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서서 사라진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의 공식적인 첫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한편 2007년 인천의 강화문화원이 발굴한 자료는 근대 한국 축구의 기원과 실력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강화문화원은 1893년 강화도에 설립된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통제영학당’ 자료 조사를 하다가 당시 영국 성공회가 발행하던 잡지 ‘모닝컴(Morning Calm)’의 마이크로필름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 성공회와 관련이 깊은 성공회대학교 자료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필름에는 영국인 시드니 파커가 ‘모닝컴’ 편집자에게 보낸 1901년 3월 21일자 원고가 담겨 있었다. 파커는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훈련을 받은 강화학당 축구팀이 존재한다. 선수들은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으며, 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하다”고 썼다. 엄격한 기록을 좌우명으로 삼는 영국 저널리스트의 표현, 즉 ‘몇 년 간 훈련했고 잉글랜드 진출도 가능’하다는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한국 축구가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말해준다.

축구로 일제강점기 설움 이겨내다

당시 많은 신식 학교에서 축구를 비롯한 근대 스포츠가 도입되였다. 육상은 양정고보, 야구는 휘문고보·배재고보·송도고보 그리고 축구는 서울의 경신학교와 평양의 대성학교·숭실중학이 주축이었다. 이는 훗날 경평축구로 확장된다. 여기에 보성전문과 연희전문, 즉 오늘날까지 대학 축구의 전통을 고려대와 연세대가 잇고 있다.

이러한 열기는 강고한 식민지 정책을 꾀하던 일본으로서는 두려운 것이었다. 1907년 7월 29일 일본은 다중의 집회 금지를 골자로 하는 보안법을 공포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축구 대항전도 주춤하게 된다. 축구공이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 이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고착되면서 일종의 문화 정책 일환으로 허용된 이후의 일이다. 일본은 자국 체육협회의 지부로 조선체육협회를 세웠고, 그제야 제도로서의 체육 활동 및 축구 대회가 가능해졌다. 1921년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조선체육회 주최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그리고 산업이 발달하는 도시마다 현대 스포츠가 발전하게 됐는데, 원산·인천·군산·부산·마산·평양 그리고 경성 등 근대 도시 곳곳에 축구가 발달하게 된다.

여러 도시 중 특히 인천이 중요하다. 개항 이후 항만·정미·제염·목재·연초·제분·철강·주류 산업 등이 크게 발달한 인천은 축구 문화가 일찌감치 발전했다. 1920년대 인배회와 율목리팀 같은 자생적 ‘클럽’이 있었고 이들에 의해 매해 ‘전인천 축구대회’가 열렸다.

그 자리가 현 제물포고교 자리인 웃터골이다. 비록 일제강점기였지만 농촌의 옛 마을 공동체가 아니라 근대적 산업이 크게 발달한 대도시에 몰려든 도시민들이 그들 스스로의 문화로 축구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인천 조양’ 축구단이 1930년대에 창단되어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광복 이후 1947년 최초의 국가 대표팀을 구성할 때 이유형·이시동·배종호·정국진·오경환 등 조양 출신이 5명이나 선발됐다.

실력에서 세계적 수준이던 조선 축구

식민지 청년들의 축구 실력은 그 흔한 표현대로 ‘탈아시아’ 수준이었다. 1925년 4월 불교청년회 축구부가 재정난으로 해체되자 뜻있는 사람들이 후원해 조선축구단으로 재건하게 되는데 곧 전국을 제패하게 된다. 1926년 10월 16일 기차로 경성을 출발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동경으로 원정을 가서 동경고등사범학교 등을 가볍게 제압하자 일본은 고뇌에 휩싸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강한 일본 팀을 만들어 출전하고자 했는데 번번이 경성의 조선 청년들에게 패한 것이다. ‘순수’ 일본 선수만 뽑아서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발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베를린올림픽 선발전을 겸한 1935년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에서 조선축구단이 우승하고 제8회 메이지신궁대회에서 경성축구단이 우승하자 결국 일제는 김용식과 김영근을 일본 팀으로 발탁한다. 훗날 김영근은 평양축구단원으로 중국 텐진 원정을 위해 자진 사퇴하게 되고, 김용식이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이 선례가 만들어지자 일제는 조선의 청년들을 거리낌 없이 발탁하게 된다.

1936년부터 1942년까지 38명이나 되는 조선인을 일본 대표로 뽑은 것이다. 물론 제2차 대전이 터지면서 월드컵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청년들은 이토록 기구한 상황에서 공을 찼지만 그 실력만큼은 일찌감치 ‘탈아시아’급이던 것이다.

글 정윤수(축구평론가,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