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고서적에게 주인 찾아주는 곳

이른 아침 찾은 인사동 길, 고요함 사이로 조용히 얼굴을 내민 ‘통문관’이 눈에 띈다. 전통찻집과 한정식 집, 팬시점 등에 홀려 미처 보지 못했던 그곳을 비로소 마주한다. 굳게 닫힌 문이 열리자, 차곡차곡 쌓아올린 서적들 사이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지금 이곳에는 조선시대 문학·예술·학문서에서부터 사료적 가치가 높은 학술서 등 주로 고서적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양은 창고에 있는 책까지 합치면 4만~5만 권 가량 되고요. 귀한 서적들의 경우 집에 보관하는데 방 2개가 모두 서적들 차지입니다.”

통문관의 창업자이자 고서적수집가인 할아버지 고(故) 이겸로 선생의 뒤를 이어 스물아홉에 주인이 된 이종운 관장. 오랜 역사만큼이나 역사적·사료적 가치가 높은 희귀 서적을 취급하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통문관이 유일하다고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런 때문인지 통문관이 발굴한 다양한 고문헌들이 이곳을 떠나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조선 후기 시조작가인 김천택 선생의 『청구영언』 자필본이 한글박물관에 안착했다.

괜찮은 고서적이 한 데 모인 장소이다 보니 과거 이곳은 국학 원로들의 사랑방이었다. 책이 있으니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이야기가 흐르는 것은 당연지사. 서점이 쇄락하고 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었지만 여전히 연구하는 대학생과 학자, 장서가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종운 관장은 숨은 고서를 찾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희귀 고서가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데, 우리나라 자료가 가장 많다는 일본은 그 중 대표적인 곳이다. ‘숨겨진 보석’을 찾아낸 뒤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 책이 돌아갈 때의 기쁨은 이 일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과거 할아버지께서 192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우표 책을 구입하셨어요. 표지에 절수우표들을 붙여 만든 책이라 국내에서도 매우 희귀한 책이었는데, 구입하실 때가 1941년이었습니다. 그걸 2002년에 제가 다시 구입해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가지도 못한 채 80년이란 세월을 보관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책에도 일종의 ‘보관 연한’이라는 것이 있다고, 그래서 필요한 누군가에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통문관의 역할을 두고 그는 사라져가는 우리 고서적을 수집하고 잘 보관하는 것만이 아닌, 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하는 가교역할까지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전통, 미래의 전통을 위해

할아버지를 따라 6살 때부터 이곳을 드나들었다는 이종운 관장에게 통문관은 유년시절의 놀이터이자, 책의 기쁨을 깨닫게 해 준 공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함께 살아서인지 대학생 시절에 개인 장서만 7,000~8,000권 가량 모았습니다. 국문학도였기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한 것도 이유였겠지만 책의 촉감이나 냄새, 책과 함께 있는 여러 풍경들이 그냥 좋았어요.”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서적이 그저 박물관 유물처럼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다 말한다.

“2011년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지만 이 시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실물의 책을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당시 책이 가진 인쇄 상태나 질감, 세월의 무게 등을 느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우리 유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를 테니까요.”

우리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는다면 이질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때문에 그는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설령 찢어 없어질지라도 아이들에게 우리 고서를 경험하게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 삶에서 단절된 역사란 그저 과거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다시 미래로 잇도록 지금 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는 이종운 관장의 바람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통문관을 찾는 발길이 계속되는 한은 말이다.

글 정연희 사진 김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