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형유산의 도시 강릉

강릉단오제가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데는 강릉시의 적극적인 홍보가 큰 역할을 했다. 강릉시는 강릉단오제의 가치를 알리고 국제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2004년 국제 시장단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지속적인 교류가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 지역도시들이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진흥을 위해 협력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그것이 바로 ICCN(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이라는 국제협력기구다.

무형문화유산 분야에서 세계 유일한 도시 간 네트워크로, 문화교류를 위한 대표적인 국제협력기구인 유네스코는 국가가 회원인데 비해 ICCN은 지방정부 및 문화관련 기관이 회원이며, 강릉시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지역들이 산업화 등에 의해 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는 문제를 겪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강릉시 주도로 열린 시장단회의에서 이런 의견들이 모아졌고, ICCN 탄생으로 이어진 거예요.”

김희경 사무국장이 ICCN에서 일하게 된 건 2008년, 그 해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시장단회의 준비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ICCN에 합류하게 됐다. 오랜 기간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며 국제교류와 관련된 업무를 맡았던 커리어가 도움이 됐다.

“학부는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석사 땐 마케팅, 박사 땐 관광 쪽을 공부했어요. 졸업 후에는 주로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했고, 이스라엘에 있을 땐 팔레스타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협력해서 일할 수 있었죠. ICCN의 콘텐츠가 문화라면 그 방법에 있어선 국제협력, 국제교류가 핵심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신명나는 화합의 축제

처음 ICCN에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통문화에 대해 뜻이 있던건 아니었다. 강릉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매년 단오제에서 어울리고 즐겼던 기억 정도였다.“초등학교 시절에 농악을 배웠는데, 매년 단오 때마다 농악공연을 했어요. 그곳에서 사람들이 씨름하고 음식도 먹으며 어울려 즐기는 모습을 봤죠. 강릉을 떠난 뒤에도 매년 단오 무렵이면 지금쯤 단오제가 열리고 있겠구나 생각이 나더라고요.”강릉단오제는 강릉 사람들의 정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삶의 일부처럼 친근하고 애틋하다. 강릉단오제는 종교적인 행사이기 전에 주민들을 화합하게 하는 대동단결의 협동정신, 애향심의 모습이다. 또한 전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더불어 즐김으로써 진정한 축제의 구실을 한다.

동시에 다른 지역 주민, 더구나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외국인들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전통문화가 가진 커다란 힘이다.“2010년엔 체코의 작은 마을에서 회의를 개최했었어요. 마을의 체육관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공연을 하고 직접 준비한 음식도 함께 먹고요. 그냥 같이 어울려 놀았어요. 그런 소박하고 일상적인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아요. 문화의 벽, 관계의 벽을 허물어 주는 힘이 무형문화 속에 있다는 걸 느껴요”

최희경 사무국장은 ICCN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감동을 받는다. 전통문화, 특히 무형문화는 그 자체로서 역사적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라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는다. 국제교류는 거창한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부터 출발하기에 전통문화를 통한 교류가 의미 있는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이 지닌 부드러운 힘

2008년 창립된 ICCN은 매년 회원도시를 순회하며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2년에 한번 씩 각 지역의 전통공연을 함께 선보이는 축전으로 개최되고 있다. 첫 회 11개국 11개 도시에서 현재 35개국 40개 도시로 매년 회원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지역들 사이에 우정이 쌓여가는 것이 더 뜻 깊은 소득이다. 그리고 ICCN의 목표인‘무형문화유산을 통한 평화’가 조금씩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평화’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관념적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ICCN 안에서 그런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어요. 이번에 크로아티아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도 팔레스타인, 이란, 이스라엘 지역의 대표들이 다 모였는데, 이스라엘 대표가 내년 이스파한 회의 때도 참가하고 싶다면서 공식적으로 이란 외교부에 노력을 요청했어요. 정부 사이에 정치적으로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는 나라의 지역들이 ICCN 안에서는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게 무형문화가 지닌 엄청난 힘을 증명해주는 게 아닐까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 이스파한(이란) 회의 때는 북한 지역도 초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2014년 ICCN 축전에서 남과 북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무형문화 유산을 통한 평화’가 구호만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일들이다.

단오의 풍류처럼흥겨운 여정

작년 ICCN에 아주 기쁜 소식이 있었다. 2012년 6월 7일 열린 제4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ICCN이 정식 승인된 것이다. 강릉단오제를 지키고 알리기 위한 시와 시민들의 노력이 빚어낸 쾌거였다. 이로써 ICCN은 긴급보호목록 등재 심사,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 프로그램, 국제원조요청 등 유네스코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2014년, 2016년, 2018년 ICCN 축전이 거듭되면 하나의 문화 올림픽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강릉이 비록 작은 도시지만 강릉단오제, 그리고 ICCN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는 게 가장 뿌듯해요.”강릉이라는 지방도시에서 만들어진 ICCN은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서 인류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진흥에 기여하고 있으며, 더불어 강릉의 도시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부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무형문화유산은 지역에서 형성되고 지역민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기에, 국가 차원의 보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민 모두가 무형문화유산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데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최희경 사무국장은 ICCN을 통해 전통문화가 부흥하고, 도시가 발전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부분이 힘들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해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런 기회를 만들어간다는 게 즐거우니까요.”물론 앞으로 갈 길은 멀다. 하지만 그 여정은 단오의 풍류처럼 흥겨울 것이다

글. 성혜경 사진. 엄지민,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