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열국시대

흔히들 동아시아의 역사를 육지위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동해와 남해, 황해와 동중국해를 포함하고, 그 너른 바다를 중국대륙과 만주 및 일본열도 등이 둘러싸고 있다. 이른바 지중해적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는 이 해역의 한가운데(中核)에서 모든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고 있다. 이른바‘동아지중해(EastAsianmediterranean-sea)’이다. 우리 역사는 한반도와 만주일대, 그리고 해양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터에서 발달하였다. 이러한 지정학적 지문화적 공간에서 해양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활발하였으며, 해양을 활용하는 정도에 따라 민족의 위치가 영향을 받았다.

고조선은 황해북부해안을 끼고 발전하였는데, 특히 요동반도와 서한만, 대동강 하구지역을 중심으로 해양문화가 발달하였다. 고조선과 한나라 간에 벌어진 전쟁은 이러한 황해북부 해상권을 둘러싼 역학관계의 재편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남쪽에는 삼한의 소국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해안가 또는 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일종의 항구도시국가들이었는데, 일본열도의 소국들 및 중국 지역과도 교섭을 하였다. 일본열도에 발달한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에 해당하는 야요이(彌生)문화(BC 3세기~AD 3세기)는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이룩한 문화이다.

삼국시대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는 압록강 하구인 서안평을 장악하여 황해 북부로 진출한 이후 꾸준히 요동진출을 시도하여 요동만 해안지역에 닿았다. 동천왕 때(233년)는 양자강 하구 유역인 건강(建康, 현 남경)에 있었던 손권의 오吳나라와 교섭하였다. 위魏나라를 피해서 먼 바다에서 근해항해를 하면서 장거리 외교를 한 것으로, 뛰어난 항해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396년도에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의 핵심부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때 한강수로직공작전, 인천상륙작전, 남양반도상륙작전 등을 시도하였다. 5세기에 이르면 황해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장악하여 백제, 가야, 신라, 왜 세력들이 중국의 남북조와 교섭하는 것을 견제했으며, 분단된 중국을 동시 등거리외교를 통해 조정했다. 뿐만 아니라 4세기부터 일본열도에 진출하여 그 흔적들이 혼슈남단의 지역에서 발견된다. 고구려는 대륙경영과 함께 해양활동을 확대시키는 이른바 해륙정책을 추진해 군사력은 물론이고 외교력을 신장시키고 경제력을 강화시키면서 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백제는 초기부터 해양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경기만으로 흘러드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의 하계망河系網을 장악하면서 경기지방을 배후지로 삼았다. 황해도 해안지방까지 장악하면서 영토를 확대하는 것 외에도 황해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무역상의 이점을 확보 하고자 했다. 이어 마한을 정복하고 서해남부지역을 장악했다. 이후서 해남부의 여러 섬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제주도를 영향권 아래에 넣었으며,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경기만을 빼앗겨 수도를 남으로 이전하였다. 그 때문에 결국 해양활동은 위축되었다. 물론 국력을 회복하여 황해 남부는 물론 남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리고 일본열도로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큐슈 북부에 상륙하고, 다시 세또(瀨戶)내해를 항해하여 오사카, 나라, 아스카 지역으로 진출했다. 결국 백제는 일본에서 고대국가가 성립하고 불교등문화가 발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나·당 동맹을 허용함으로써 패망의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하였다.

한편 가야는 김해, 거제도, 고성 등을 이용하여 일찍부터 해양문화와 대외교역이 번성하였다. 일본열도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유물과 건국신화 등 가야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가야가 멸망할 때까지 가야와 일본열도 간의 교섭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부에 고립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해양에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초기에는 바다를 건너온 왜로부터 빈번하게 침략을 당한다. 그런데 일본신화에 스사노노미코도나 천일창 등 신라인의 진출사실이 나타나있고, 이즈모 등에서 신라계 유물이 발견된 것은 일본열도로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김이사부金異斯夫는 강릉 삼척을 점령하고 512년에는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킨 다음 충주, 김해, 한성, 당성 등을 차지하여 해양문화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당나라와 맺은 동맹은 해양을 이용한 비밀외교를 통해 성사된 것이다. 결국 삼국시대의 동아시아 질서는 육지위주의 질서나 영토를 확장한다는 단편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한계가 있다. 특히나 한일 관계는 국가와 국가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 간의 관계, 국가와 주민 간의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정치와 군사의 관계만이 아닌 문화와 경제 간의 관계로써 이해해야 한다. 한반도의 각국들은 먼저 주민들의 비조직 적인 대규모 이주를 통해 일본열도의각지역에 진출하였고, 후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진출하였다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는 삼국의 해양문화를 토대로 삼아 매우 활발한 해양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당과의 전쟁을 위해, 또 일본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해군력 증강에 힘을 썼다. 그 후 동아지중해의 바다에서 군사적 긴장이 풀리면서 외교 문화 경제적 목적을 위한 해양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장보고(張保皐, ?~846)로 대표되는 재당 신라인들은 상업적으로 때로는 외교사절의 역할을 하면서 동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였다.

한편 발해는 고구려의 해양능력을 이어받아 초기부터 해양활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건국 초기인 732년, 무왕은 장문휴張文休로 하여금 수군과 함선을 거느리고 발해만을 건너 등주를 공격하고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린다. 일본과는 건국 초부터 교류를 시작하여 공식적인 기록에 전하는 것만 발해가 일본에 34회, 일본이 발해에 13회 사신을 파견하는등빈번하게 정치 경제적 교섭이 있었다. 특히 9세기에 이르면 한번에 100명이 넘는 사절을 파견하기도 한다. 신라를 경계해야하는 지정학적인 역학관계 때문에 발해와 일본은 해양외교를 통해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 외에 민간인들의 접촉과 무역도 상당했다.

고려 이후

고려를 세운 왕건은 전형적인 경기만 해양세력이다. 후백제는 견훤이라는 금강 하구 세력과 섬진강 하구 세력이 연합한 정권이다. 고려와 송은 거란족의 나라인 요를 견제하기 위하여 정치외교적인 교섭이 절실했고, 또 문화의 교류와 교역도 필요했다. 이 때 교류의 길은 해양이었다. 고려는 중국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에 이르는 지역과 바다를 이용해서 무역을 벌였다. 그 힘을 통해 몽골군에 대항했고, 훗날 일본열도를 침공하는 여몽연합군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해양문화는 매우 미약해졌다. 초기에는 대마도 정벌 등을 추진하였고, 조선술에 관심을 기울여 새로운 선박을 건조한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해양문화는 천시되고 수군 활동도 미미해졌으며, 민간인들의 대외해양활동을 원천적으로 금하였다. 그 후 근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해양의 중요성과 역할이 거론되었으며, 해양력은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동아시아는 완충지대 없이 한반도의 땅과 바다에서 양극질서가 직접 대결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러한 첨예한 군사대결 속에 바닷길은 막히고, 그 결과 교류와 교역의 지중해적 질서는 사라졌다. 이처럼 20세기에는 바다가 폐쇄되고 단절되어 동아지중해권은 제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세계질서,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려고 한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모든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해양 네트워크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다. 따라서 중요한 해로를 장악하고, 해양조정력을 가질 경우 각국 간의 역학관계를 조정할 수 있고, 막대한 경제적, 문화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해양력이 약하면 오히려 바다에 포위되어 폐쇄적 상황에 놓이고 해양력이 강한 주변국들에 의해 민족의 이익과 자주가 침탈당할 수가 있다. 21세기에 해양력은 동아시아의 역학관계의 기본 틀과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글·사진. 윤명철 (동국대학교 교수) 사진. 문화재청, 두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