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종용한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 경질

모든 국면에 예외없이 중앙일보 '참견'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된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의 석연찮은 사정에 <중앙일보>가 개입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는 변영섭 전 청장의 경질을 둘러싼 사건들에 예외없이 <중앙일보>가 등장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부인인 신연균 재단법인 아름지기 이사장이 문화예술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추측의 한 근거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변영섭 전 청장의 경질은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6박 8일 간의 서유럽 순방 직후 숭례문 부실복구 등 문화재 보수사업에 대한 논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소재를 밝히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사실상 촉발됐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직접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이와 같은 지시를 내렸고, 김기춘 비서실장은 자신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해당 업무 관련 수석에게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바로 당일 아침 <중앙일보>는 문화재청 출신 공무원들이 문화재 수리 전문업체에 사실상 특혜성 취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1면에 냈다. 재미있는 것은 <중앙일보>가 7일 1면에 숭례문 부실복원 의혹을 보도한 것을 시작으로 8일 1면에는 석굴암 본존불 부실 관리, 9일 1면에는 문화재 수리 자격증 관련 비리 등 11일까지 문화재 관련 문제제기를 마치 한이라도 맺힌 듯 연이어 강행했다는 점이다.

▲ 중앙일보는 지난 7일, 8일, 9일, 11일에 걸쳐 문화재청 관련 의혹을 1면 보도했다.

특히 석굴암의 경우는 <중앙일보> 안성규, 이영희, 이승호, 박종근 기자, 김종록 문화융성위원·작가·객원기자, 김호석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으로 특별취재팀까지 구성해 수준 높은 기사를 완성해내는 등의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면 변영섭 전 청장의 경질에 <중앙일보>가 혁혁한 공을 세웠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중앙일보>의 문제제기를 변영섭 전 청장의 경질 사유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숭례문 부실 복원의 경우 이전 정권에서 진행된 것으로 사실상 변영섭 전 청장이 책임져야 할 이유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굴암 부실관리의 경우에도 막 취임 8개월이 된 변영섭 전 청장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는 할 수 있어도 경질의 이유로 들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변영섭 전 청장이 관료들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린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불교닷컴>과의 통화를 통해 “변영섭 청장의 경질은 관료 마피아와의 파워게임에서 문화재 개혁세력이 진 것”이라면서 “행시 출신 관료들이 변영섭 청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참여도 않은 숭례문 부실 복원 책임을 물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평우 소장은 지난 8월 서미경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의 경질도 마찬가지 맥락의 지적을 언급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변영섭 전 청장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호) 보호 방식과 관련해 당국과 마찰을 빚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정부는 지난 6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카이네틱댐’ 설치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문화재청, 울산광역시,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조정실 등 관계기관장 간의 협약을 체결하기로 한 바 있다. 카이네틱댐이란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보호막으로 이뤄진 소규모 댐으로 정부는 암각화 전면에 카이네틱댐을 설치해 암각화를 훼손하고 있는 물의 수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변영섭 전 청장 본인은 카이네틱댐 설치안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안이 근본적 해결책이 못 되는 데다가 카이네틱댐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반구대 암각화가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변영섭 전 청장은 카이네틱댐 설치 안에 반대해 자진 사퇴하겠다는 뜻까지 밝혔으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설득에 이와 같은 뜻을 굽혔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변영섭 전 청장은 카이네틱댐 설치와 관련한 질의에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면서 “문화재는 실험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역시 카이네틱댐 설치안에 여전히 반대의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사례다.

흥미로운 점은 카이네틱댐 설치를 통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은 <중앙일보>를 통해 최초로 제시됐다는 점이다. 카이네틱댐 설치를 제안한 함인선 (주)선진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는 지난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과정을 밝혔다. 함인선 대표는 자신이 한양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한 학생이 과제 해결로 제출한 카이네틱댐 설치 아이디어를 보완해 <중앙일보>에 제안했고 기사가 나간 직후 새누리당 강길부 의원(울산 울주군)이 연락을 해와 새누리당을 통해 정부에 공식 제안됐다는 점을 설명했다.

▲ 중앙일보가 지난 5월 보도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 위한 카이네틱댐 설치 방안 관련 기사.

즉, 카이네틱댐 설치 제안의 과정에서도 <중앙일보>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고 변영섭 전 청장은 이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만 보면 <중앙일보>가 변영섭 전 청장의 경질의 핵심적인 이유를 제공하였다거나 더 나아가서는 아예 <중앙일보>의 의지에 의해 변영섭 전 청장이 경질된 것 아니냐는 섣부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중앙일보>의 일련의 행보가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충심에 의한 것인지, 모종의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었는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인 셈이다.

미디어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