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가지정문화재 1407점 하수처리장 내 지붕도 없이 놔둬 ㆍ전문가들 “조선 건축기술 연구 중요 사료 보존 대책 시급”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국가지정문화재인 오간수문과 수표교, 하천 바닥 등에서 발견된 유구 1400여점이 10년째 지붕도 없는 하수처리장 안에 방치돼 있다. 이들 유구는 조선시대 토목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22일 서울시 중랑구 중랑하수처리장 한쪽에 마련된 ‘청계천 유구 보관소’를 찾았다. 이곳에 놓인 유구들은 조선시대 건축물인 청계천 수표교, 모종교, 하랑교, 효경교 등의 석조다리, 오간수문·모종교 양측에 세웠던 축대(양안석축)의 해체물 1407점이다. 발견될 당시 위치와 모양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일련번호까지 매겼다.
높이 2.6m, 너비 3599㎡의 칸막이로 만든 이곳은 ‘보관소’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 사이로 보이는 유구들은 공사현장에서 옮겨놓은 ‘돌덩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도난이 우려되지만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랜 출입문 안내문에 ‘석재 유구 1007점, 보관장소 내를 무단 출입하거나 손상, 은닉, 임의 이동할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쓰여 있을 뿐이다.
비바람 고스란히 맞고…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철거됐던 국가지정문화재인 옛 청계천 다리 조각 유구 1407점이 10년이 넘도록 지붕도 없는 서울 중랑구 중랑하수처리장 한쪽에 방치돼 있다. | 정지윤 기자
실제 유구 수와 안내문에 표시된 수가 다른 이유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애초에는 1007점인 줄 알았는데, 다시 파악해보니 400점의 유구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유구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4년 9월 청계천 문화재 보존전문가 자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하수처리장으로 옮겨졌다. 당시 서울시의 결정을 두고 학계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구를 손상시킬 수 있다”며 반발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는 “이 전 대통령이 무리하게 청계천 공사를 진행하면서 문화재를 하수처리장에 방치하는 등 복원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2004년 청계천 유물 발굴을 담당했던 홍지윤 중앙문화재연구원 본부장은 “수표교와 광통교는 철저한 기획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대의 건축 기술, 축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 역사적 문화재”라며 “건축기술뿐 아니라 한양도성의 변화까지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류호철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유물 보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온도와 습도가 얼마나 일정한가이다. 유물들을 야외에 두게 되면 계절마다 그리고 아침, 저녁마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가 극심한 환경에 노출된다. 게다가 지금처럼 유물이 비바람을 맞으면 훼손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석재가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안정적인 편이긴 하지만, 전시 목적이 아니라면 노천이 아닌 다른 보관 장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 유물관리 상태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황요한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돌이어서 온도와 습도는 중요하지 않으며 야외에 있어도 훼손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발족한 청계천시민위원회는 내년 1월 ‘청계천 개선·보완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다.
류 교수는 “복원은 장기계획을 세워 천천히 진행돼야 할 일이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유물들은 계속 훼손될 것”이라며 “서둘러 안정된 보존환경을 마련해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유물로 다리·축대 등 구조물의 잔해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