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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대표적 보물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金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의 해외 반출을 놓고 벌어진 논란은 씁쓸한 뒷맛을 낳게 한다.

알려진대로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신라의 유물 등 100여점이 오는 10월29일부터 내년 2월23일까지 뉴욕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열리는 '신라 : 코리아의 황금 왕국(Silla: Korea's Golden Kingdom)'전에 특별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는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인 메트뮤지엄이 15년에 걸쳐 준비한 서방 세계 최초의 신라특별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메트뮤지엄은 한해 입장객이 6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미국인들은 물론, 많은 세계인들이 찾는 박물관에서 열리는 신라특별전은 중국과 일본의 유물 전시에 비해 옹색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보물들과 그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해외나들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반출을 반대한 주된 이유도 반가사유상이 그간 해외 전시를 위해 8회에 걸쳐 3000일 간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잦은 이동과 전시에 따른 훼손 우려는 물론이거니와 9년 가까운 세월을 해외에 나가 있었던만큼 정작 우리 국민들이 반가사유상을 볼 기회가 그만큼 제한됐던 셈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중요 문화재의 국외 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만큼 이젠 우리도 나라의 보물들을 해외에서 돌리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메트뮤지엄이 포장, 운송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고 최고의 전시 안전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며 보류 판정을 내린 문화재위원회를 설득할 수 있었다.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완강한 반대는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굽히는데 성공했다.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찜찜함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반가사유상의 무리한 반출을 감수할만큼 신라특별전의 명분과 효과가 클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메트뮤지엄이 신라특별전을 공식 발표한 것은 지난 6월3일이다. 기자는 사전에 메트뮤지엄으로부터 신라특별전에 관한 공식 기자회견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신라특별전이 열린다니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행사장에 도착한 후 어리둥절해졌다. 신라특별전은 메트뮤지엄이 올 하반기에 순차적으로 개막하는 미술전과 회화전 등 15개 전시회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날 행사의 메인이벤트도 아니었으며 다른 전시회들과 마찬가지 비중으로 3분 가량 사진 자료와 소개를 하는데 그쳤다.

행사 후 메트뮤지엄이 한국 기자들을 위해 토마스 캠벨 관장과의 별도 인터뷰를 배려하긴 했지만 신라특별전이 기대만큼 특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주최측이 오랜 노력을 기울였고 3개 주제의 전시관을 통해 고대 한국의 복합적인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성의도 보이는건 사실이다.

적어도 이날 분위기만큼은 여타 전시회와 대동소이했다는 뜻이다. 뉴욕 타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 등 주류 언론 기자들도 참석했다고 했지만 신라특별전에 관심을 갖는 모습은 볼 수 없었고 특별히 기사로 소개되지도 않았다.

냉정히 말해 메트뮤지엄의 연례 기획전으로 편성된 전시회에 신라 최고의 보물을 반대 여론까지 억누르며 무리하게 보낼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국보들이 반출되려면 1870년 개관한 메트뮤지엄의 150주년 기념전으로 특별기획된다든지, 위상에 걸맞는 '격'이 전제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가사유상의 '복제품'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관람객들은 반가사유상의 복제품을 감상하면서 '오리지날' 진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이 있는 신라의 고도 경주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약소국 콤플렉스에 싸여 한국을 알리기에 급급한 시절이 있었다. 1970년 우리 국민소득이 250달러였을때 당시 정권은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1000달러가 되면 비행기 타고 주말 제주도에 놀러갈 수 있다'고 장밋빛 꿈을 심어주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정모가 해방 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우리 국민들은 또 얼마나 열광했던가.

이제 대한민국은 경제와 스포츠 과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위치에 도달해 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알게모르게 선진화됐고 올림픽의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여유로움도 갖고 있다. 전방위적인 한류 열풍으로 코리아는 한번쯤 가고 싶은 동경의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인식만큼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가도로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독립문을 번쩍 들어 옮길 때부터 알아봤지만 명색이 국보 1호인 숭례문을 고층건물로 포위해 고목나무 매미신세로 만들더니 급기야 홀랑 태워먹는 일까지 저지른 우리들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것을 자꾸 내보내기 보다는 우리의 것을 보기 위해 그들이 오도록 해야 한다. 문화재 해외 전시는 지극히 예외적으로 허락되야 한다. 그리고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될 특별한 국보들도 명시되어야 한다. 제아무리 운송과 전시에 철저함을 기해도 포장되어 옮겨지고 풀어지며 사람의 손이 닿을 때마다 우리의 보물들은 조금씩 훼손되기 마련이다.

1000년이 넘는 은은한 미소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아마도 이런 말씀을 하고 싶지 않을까. "이젠 나도 집에서 좀 쉬고 싶다네."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robin@newsis.com

[특파원칼럼] 신라보물의 미국나들이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