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명륜당, 운현궁 등 국가 지정 문화재에서 불법 전통 혼례식이 수년 동안 계속 열려 왔지만 관리 관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문화재청이 명륜당의 전통 혼례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서울 종로구는 2년 반 동안 이곳에서 혼례식이 열리는 것을 방치하다 최근 경찰에 예식업체 대표를 고발했다. 이 업체는 그동안 명륜당을 '전통 혼례식장'으로 이용하면서 신랑 신부 측으로부터 130만원씩 사용료를 받아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추산된다. 운현궁의 경우 서울시는 아예 혼례식 대행업체를 선정해 사용료까지 받아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8일 "이게 불법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묘와 성균관 일원은 사적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 없이 스피커와 천막을 설치하고 전통 혼례를 올리는 것은 불법이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2011년 1월 "전통 혼례 예식은 유교 성현들을 모시고 유생들이 공부하던 문묘의 역사적 의미와 맞지 않는다"며 P업체 대표 이모(55)씨가 낸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 신청을 부결한 바 있다. 하지만 이씨는 문화재청 결정 이후에도 지난 5월 말까지 국가 소유 문화유산인 문묘와 성균관을 전통 혼례식장으로 사용하며 사용료로 130만원씩 받았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에서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가 가마를 타고 명륜당 앞뜰로 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문화재 구역에서 이뤄지는 불법 전통혼례 행사를 2년이 넘도록 방치해왔다. /인터넷 캡처
관리 담당 관청인 종로구는 이 기간에 모두 세 차례 행사 중단 요청 공문을 보내는 것 외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본지 통화에서 "문화재라고는 하지만 의자를 놓고 천막을 치는 것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종로구 측은 "주말마다 감독할 여유가 없어서 문묘에서 2년 넘게 결혼식이 계속 열리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어떻게 P업체가 독점적으로 이곳을 혼례식장으로 사용해왔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종로구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6월 25일에야 서울 혜화경찰서에 P업체와 대표 이씨를 고발했다. 이씨는 종로구의 조치에 불복해 문화재청에 문묘와 성균관에 대한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 신청을 다시 냈고, 문화재청은 지난달 이를 다시 부결했다.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명륜당과 함께 '전통 혼례 명소'로 꼽히는 사적 257호 운현궁 역시 한 전통 행사 진행업체가 위탁 운영을 맡아 불법적으로 전통 혼례 행사를 열어 오고 있다. 운현궁 관리 책임을 맡은 서울시는 이 업체로부터 연간 7억8000만원의 입찰금을 받고 위탁 운영업체로 선정했다.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전통 혼례 행사까지 문화재청에 현상 변경 허가를 받고 진행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보수·수리뿐 아니라 가설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문화재의 현 상태를 변경 혹은 훼손할 수 있는 모든 행사는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서울시에 고지했다"고 말했다.
관리 관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성균관과 운현궁 등은 예비부부들 사이에 결혼식 명당으로 입소문을 탔다. 주말에 두 차례씩 진행되는 운현궁 전통 혼례는 다음 달 예약 자리가 3자리를 빼고는 모두 동난 상태다. 오는 10월 명륜당 뜰에서 전통 혼례를 올릴 예정이었던 회사원 유재연(31·가명)씨는 지난달 초 P예식업체로부터 "명륜당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리기 어렵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씨는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야외에서 전통 혼례로 치르면 훨씬 의미 있을 것 같아 2월에 계약을 끝냈는데 결혼 석 달 전에 이런 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으니 정말 황당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에서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가 가마를 타고 명륜당 앞뜰로 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문화재 구역에서 이뤄지는 불법 전통혼례 행사를 2년이 넘도록 방치해왔다. /인터넷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