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반출입 시스템 이대로 좋은가]

상. 감정의 실태와 문제점턱없이 부족한 인력·시간, 진품 밝히기 역부족

▲ 문화재청 감정관이 최근 대전경찰청에서 열린 문화재 절도단 수사 브리핑에서 일본에서 불법 반입된 국보급 불상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쓰시마에서 도난 된 국보급 불상의 부산항 반입 과정에서 '위작' 판정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감정의 신뢰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문화재 감정의 전문성 제고, 현장 인력 확충, 감정 시스템 개선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비전문분야 감정 60% 이상
2009~2011년 120회 미적발
감정보다 과세 여부에 집중
현 인원에서 배 이상 늘려야

△문화재 감정 현황=문화재청에 따르면 부산항을 비롯해 전국의 국제공항과 부두 17곳에 문화재감정관실이 설치돼 있으며 47명(상근 25명, 비상근 22명)의 감정위원이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을 막는 업무를 하고 있다. 감정위원들은 보통 서적, 회화, 조각, 공예, 도자, 미술, 고고, 자연사 등으로 전공 분야가 다양하다.

이들은 자진 신고한 문화재 의심 물품이나 자진 신고 없이 반출하려다 X선 검사로 적발된 문화재 의심 물품을 직접 감정해 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재 의심 물품이 반입될 때는 반입 물품의 과세 여부를 판정해 세관에 통보할 뿐 도난 신고가 들어온 문화재가 아니라면 진작이든 위작이든 반입을 허용한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반출 시에는 문화재의 불법 반출을 막기 위해 복수감정을 원칙으로 한다. 감정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반입 시에는 도난 신고가 접수된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는 단독 감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출입 시 전공 분야 감정위원이 없거나 감정 결과에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에는 화상감정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의 감정위원들은 이러한 감정 지침이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전직 감정위원은 "국가별, 시대별로 문화재 종류가 너무 다양한데다 밀려드는 여행객들로 분주한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정확한 감정을 해내는 건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한 감정위원은 "박물관장도 진작을 위작으로, 위작을 진작으로 감정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감쪽같은 위작이 많다"며 "혼자 감정을 해야 할 때는 실수를 할까봐 두려움에 떨 정도"라고 말했다.

△문제점=전문가들은 감정위원들이 비전문 분야를 감정할 경우 감정의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지난해 국회에서도 공항, 부두 문화재 감정위원들의 비전문 분야 감정비율이 60%를 넘고 심지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한 명도 없이 감정한 사례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20회가 넘는 문화재 밀반출을 사전에 적발하지 못했다며 문화재 감정위원들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감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국의 감정관실은 출입국자 규모에 따라 근무자 수가 다르지만 감정위원들 스스로도 현재 인원의 2배 이상이 돼야 감정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낼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 이번에 국보급 불상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린 부산항 문화재감정관실은 고작 4명이 근무하고 있다. 교대 근무를 고려하면 턱 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일부 전문가는 감정위원들이 문화재 의심 물품 반입 시 문화재 여부를 가리는 감정 작업보다는 과세 여부를 세관에 알려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재청은 도난 문화재의 경우 도난 신고가 들어왔을 때만 강제 유치하면 된다고 밝혔다. 문화재로 의심이 되더라도 반입한 사람의 인적사항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관 후 문화재를 추적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난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을 경우 문화재 감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도난 후 당국이 유출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 발 빠르게 문화재가 반입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문화재 불법 반출을 차단하는 데도 허술한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 전직 감정위원은 "문화재로 의심되면 소지 경위 등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문화재 보호 최일선에 일하는 감정위원의 역할"이라며 "우리나라는 문화재 불법 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 및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유네스코 협약국이기 때문에 불법 문화재 반입을 차단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안과 개선 방안

도난 의심만으로 강제유치 가능해야

▲ 세관 통관 과정에서 문화재 감정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승객들이 수하물 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부산일보 DB

 

일본 쓰시마에서 도난 된 국보급 불상이 부산항을 통해 반입된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감정의 신뢰성 논란이 한창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감정관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인력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고 없으면 진품도 무사통과
'유치 후 추후 확인' 시스템 절실
전문성 갖춘 인력 확보도 과제

△전문성 확보와 인력 구조 개선=공항과 부두의 문화재감정관실은 문화재 불법 반출입을 막는 첨병 역할을 한다. 그런 만큼 감정의 결과에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 전직 감정위원은 "머릿속에 많은 문화재 관련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현장감이 부족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또 문화재 관련 분야가 매우 광대해 감정위원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 외의 문화재를 감정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솔직히 감정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며 "비전공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감정위원은 "감정위원들 스스로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전공 분야 외에도 다양한 문화재를 직접 눈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며 "감정위원을 뽑을 때도 박물관 근무 경력자 등 풍부한 경험을 지닌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을 확충하거나 효율적으로 배치,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감정 현장에서는 화상감정 등의 보완책이 있지만 이도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력을 지금의 배 이상으로 늘려야 정확한 문화재 감정이 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인력을 늘려 다양한 전공 분야의 감정위원을 배치하면 감정의 객관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인력을 확충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도 존재한다. 한 전직 감정위원은 "감정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하루에 감정이 몇 건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는 무작정 인력만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전문 분야와 감정관실별 또는 감정분야별 감정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감정위원을 효율적으로 채용해 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박용기 사무관은 "인력 확충과 인력 구조 개선이 필요하지만 인건비 등의 문제로 쉽지가 않은 문제"라고 밝혔다.

△감정 시스템 개선=이번 도난 불상 부산항 반입 사건을 계기로 과세 여부를 세관에 알려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문화재청의 반입 감정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은 도난 의심 문화재가 반입되더라도 반입 물품의 과세 여부를 판정해 세관에 통보할 뿐 도난 신고가 접수된 문화재가 아니라면 진작이든 위작이든 반입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반복해 밝히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를 '위작'으로 판별한 커다란 실수는 인정하지만 "만약 진품으로 감정했더라도 도난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반입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이러한 문화재청의 입장이 아전인수격 이중적 잣대라고 지적하며 "반입 감정 시 도난 의심 문화재를 차단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 전문가는 "문화재 반출과 반입 시 문화재를 서로 다른 잣대로 감정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문화재를 정확하게 감정해 불법 반출입을 차단하는 게 감정위원의 본분"이라며 "감정 결과 문화재로 확인되면 소지 경위 등을 파악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세관에 강제 유치를 요청해 확인 작업을 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도난 의심 문화재에 대한 강제 유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전직 감정위원은 "도난이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도난 의심만으로도 이를 강제 유치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해 감정위원들이 추후 확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일보 이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