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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7일, 그날의 벅찬 감동이 하나둘씩 잊혀져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판소리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해 온 우리 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03년 11월 7일은 유네스코 제2차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세계무형유산)’으로 선정된 뜻 깊은 날이다.

부채 한 자루만 쥐면 세계 어디서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소리의 고장 전북. 그러나 이 날을 널리 알리기 위한 기념식이 전무한데다가 남원 판소리대학 설치를 포함, 당시 봇물처럼 쏟아낸 각종 구상들이 구두선으로 그쳐 아쉬움이 많다. 특히 남성 소리꾼이 급감하는 등 동편제를 살리기 위한 대안 모색 등 중장기 계획이 전무함은 물론 판소리의 선점 효과가 큼에도 불구, 뒷짐을 진 채 정작 기념일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전북도립국악원, 국립민속국악원 등 각종 국악 관련 기관의 공연장을 클릭해보니 어느 곳 하나 판소리 세계무형유산 선정을 기념하는 문구는 물론 관련 행사를 하는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전라북도청 등 관계 당국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기념일이 이미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이미 오래임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무형유산으로 선정된 판소리의 기념일을 적극 활용해야 함을 나타내는 대목이지만 냄비 근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더군다나 지난 1996년 강도근 명창(흥보가), 2008년 오정숙 명창(춘향가)이 작고한 이후 도내에 판소리 국가중요무형문화재가 전무해 전북이 세계무형유산 ‘판소리’의 고장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특히 강도근명창이 맥을 이었던 동편제의 경우, 전북이 무관심하게 대처해온 사이, 전남 구례가 동편제소리축제를 개최하는 등 남원으로부터 비롯된 동편제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다.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명창 박초월의 소리의 고향이었다.

예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 시킨곳(운상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악계의 거성으로 우뚝솟은 송흥록,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김정문, 이화중선, 장재백, 박초월, 배설향, 강도근, 안숙선, 강정숙, 전인삼 등 수 많은 명창들이 지리산 자락의 아늘한 고원인 이곳에서 소리를 빚어 남원을 국악의 고장으로 키워 왔다. 그래서 활을 쏘고 지리산을 오르며 판소리를 하고 북을 치는 풍류를 즐기는 남원 사람들은 이 세 가지 맛을 모르면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1996년 국가주요무형문화재 흥보가 소리 보유자였던 강도근명창이 사망한 후 남원지역이 탯줄을 갖고 있던 동편제의 전통이 전북 남원이 아닌, 전남에서 이어지고 있어 개탄의 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인근 전남에서는 구례동편소리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또, 전남 구례읍 백련리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은 국창 송만갑과 구례가 낳은 판소리 명창들의 유품과 자료가 정리돼 있다. 구례군이 2000년에 세운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에는 판소리를 배우는 공간과 공연을 하는 곳으로, 그 한켠에 국창 송만갑 선생 생가, 명창 추모비가 떡하니 들어서 있다.

반면 남원의 경우, 강도근판소리보존회가 있지만 이렇다 할 큰 성과가 없는 가운데 전인삼(강도근명창의 제자)명창이 제자를 가르치면서 송만갑바디의 ‘춘향가’를 복원하는 등 동편제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다.

송흥록,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김정문, 강도근, 김소희선생 등, 그리고 오늘날의 박송희, 김일구, 송순섭, 안숙선, 이난초, 전인삼으로 그 법통이 이어져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조사를 위해서는 전수 조사를 통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의 지정이 절실하다는 국악계 안팎의 목소리다. 전북의 ‘세계무형 유산’ 판소리가 가을 바람을 따라 잊혀져가고 있다. 이종근 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