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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 하수봉 박사논문
"나물캐는 여인·맷돌질하는 여인
화폭 하드보드지 40년대엔 없어"
감정협 "편년은 잘못…위작 아냐"

화강암 표면 같은 질감에 지난 시절 서민들의 일상을 채워넣었던 국민작가 박수근(1914~65)의 그림을 놓고 2008년 <빨래터> 이후 또다시 위작 시비가 재연될 조짐이다.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공인된 <나물 캐는 여인>과 <맷돌질하는 여인>이 위작이라는 학계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근대미술사 연구자 하수봉씨는 최근 명지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통과된 '박수근 회화의 표현기법 연구'란 박사학위 논문에서 1940년대 후반 작으로 알려진 두 작품을 사용 재료, 도상 비교 등으로 감정한 결과 위작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두 작품은 1985년 열화당 도록에 40년대 후반작으로 실린 개인소장품. 박수근 작품 공백기인 40년대 대표작으로 자리매김돼 왔다. 50년대 후원자인 미국인 마거릿 밀러 소장품이었다가 70년대 국내 반입돼, <나물 캐는 여인>은 1999년 서울 호암갤러리(현 삼성미술관 리움) 회고전에, <맷돌질하는 여인>은 2007년 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 전시에 처음 공개됐다. 평론가 오광수씨는 책 <박수근>(시공사, 2002)에서 박수근의 <맷돌질…>은 1940, 41년 총독부 조선미술전에 입선했다가 없어진 작품을 반복해 그렸다고 언급했다.

하씨는 두 작품을 40년대 기년작이 아닌 위작으로 보는 세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우선 두 그림 화폭에 쓰인 하드보드라는 재료가 40년대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하드보드란 부순 나뭇조각들을 페놀수지 접착제로 붙여 성형한 경질섬유판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비상식량 시 레이션 박스를 만들었던 재료로 들어와 1962년부터 국내 생산을 시작했다. 그림 재료로 쓴 것은 일러도 50년대부터라는 분석이다. 두번째는 한국전쟁 때 박수근 일가가 피난하면서 다른 40년대 중요 작품을 놔두고 이 2점만 갖고 나왔을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1952년 박수근의 부인과 자식들이 월남할 당시 현재 강원도 철원 부근에 주요 작품을 담은 항아리를 묻어두고 왔다는 증언이 전하는데, 두 소품만 골라 가져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표현기법의 확연한 차이를 들었다. 사진으로 전해지는 40년 조선미전 입선작 <맷돌질하는 여인>과 40년대 후반 같은 제목 작품의 필선, 운동감, 구도 등을 비교해보면, 동일 소재지만, 훨씬 수준이 떨어지고 이질적인 편차를 보인다는 것. 40년대 후반작은 여성의 몸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상체가 빈약하며 앞에 놓인 맷돌과 전함지·항아리 배치가 조선미전 출품작의 안정된 삼각 구도와 달리 산만하다는 점도 들었다. <나물 캐는 여인> 역시 하드보드 사용과 표현기법상 편차라는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하씨는 "두 그림이 기년작이 된 것은 1985년 유족 증언만 참고해 화집에 실리면서부터인데, 후원자 마거릿 밀러 소장품이기에 당연히 박수근 작품이란 공식이 적용됐다"며 "박수근은 초기부터 인체, 풍경 묘사에 매우 충실한데, 두 작품은 그런 특징이 별로 없고, 편년을 50년대 초로 내려도, <나무> <집> 같은 50년대 대표작들과 흐름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논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유홍준 명지대 교수도 "과학적 실증 자료들을 근거로 전문가들이 검토한 만큼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수근 작품을 주로 감정해온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송향선 감정위원은 편년이 잘못된 건 인정하지만 위작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두 작품의 기존 편년은 최근 유족 및 전문가들과 상의한 결과 1953년께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공식 작품도록 발간 때 수정할 방침"이라며 "작품 자체는 고인의 필치와 구도가 분명한 진품"이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또 불거진 박수근 작품 위작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