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ㆍ‘인사동처럼 밀려나나’ 한숨… 전통문화의 맥 끊어질 위기
옻칠기 장인으로 유명한 신중현옹(서울시무형문화재 1호 생옻칠장)은 15년 전 서울시의 권유로 안국동 공방을 북촌 한옥으로 옮겼다. SH공사 한옥을 전세로 임대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SH공사는 기존의 5000만원 전세 대신 연간 1600여만원의 사용료를 받겠다고 알려왔다. 전세로 치면 보증금이 크게 오른 셈이다. 신씨는 “평생 옻칠만 해온 외길 인생”이라며 “임대료 부담도 크고, 집을 새로 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촌 한옥마을은 최근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북촌 문화의 핵심인 공방 장인들의 한숨은 깊어가고 있다.
궁중 장신구, 천연염색, 한지 등 전통공예의 맥을 잇는 30여개 공방 장인들은 최근 땅값이 치솟으면서 임대료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시와 SH공사가 매입해 장인 등에게 빌려준 한옥 21채도 임대료가 오르긴 마찬가지다.
10년 전부터 북촌에서 민화와 부적을 연구해 온 가회공방은 “매달 33만원씩 내던 사용료가 지난해에 3배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이민아 학예사는 8일 “2000~3000원의 입장료와 민화 판매로 유지하는 공방으로선 사용료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에 걸쳐 금박기술을 전수해온 공방 금박연의 김기호 선생은 “민간 임대보다 시 임대가 저렴하긴 하지만 공방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며 “공방 공예품은 일반 상가제품과 달리 판매량이 많지 않다”고 밝혔다.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장인들이 북촌을 선뜻 떠나지 못하는 것은 북촌에서 그동안 다져온 문화적 기반 때문이다.
시 소유 한옥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한 장인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작업하면서 우리 문화를 알리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북촌에 온 지 수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씩 인정받아 뿌린 걸 거두고 있다”며 “당장 나갈까 싶다가도 한 자리에서 이름이 나기까지 또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임대료가 2배 가까이 올라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인들 대부분은 이대로 간다면 북촌만의 전통문화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전통공방이 하나둘 사라진 ‘인사동의 재판’이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공방을 연 이시염방의 이종남 자연염색연구소장은 “인사동은 땅값 때문에 중국산이 아니면 수지가 맞지 않아 결국 전통공방이 사라졌는데 북촌도 그렇게 변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가 북촌을 제대로 된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싶다면 적어도 시 소유 한옥 공방의 임대료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공과금 외의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북촌한옥 임대료는 공시지가와 건물 감정평가액을 더해 산출한 재산평정가격의 1000분의 14를 받아 운영해 민간보다 임대료가 적다”며 “경우에 따라 분납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