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長成은 늘어나는데… 우리 정부는 ‘뒷짐만’
“고대 한반도 영토 한정시켜 한국사 전체 왜곡”
中 속내는 ‘영토 확장’… 정부 “동북공정 종료돼”
중국 정부가 지난 5일 ‘만리장성 늘리기’를 발표해 노골적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나선 이후 정부의 대응 방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 분쟁을 염려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중국 문물국은 최근 5년간의 재조사 결과 장성이 동북 만주와 서북 신장까지 뻗어나갔으며 길이도 기존의 두 배인 2만 1196.18㎞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고구려와 발해 등의 주요한 성들을 장성 범위에 모두 포함시켜 기존 만리장성의 개념을 뒤엎은 것이다.
현재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 정부가 역사왜곡이나 동북공정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동북공정은 2002년에 시작해 이미 공식적으로 끝났고 사업을 주관하는 기관도 다르기 때문에 동북공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논리다.
하지만 학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국내 역사학계의 대부분 학자들은 이를 놓고 한국사를 왜곡시켜 영토를 확장하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고 평가한다.
만리장성 늘리기 사업에 제기된 문제는 중국이 발표한 장성 지역에 옛 고구려와 발해와 관련된 유적이 2건 이상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중국이 한족의 역사·문화까지 자국의 것으로 둔갑시켜 영토 범위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2일 ‘중국의 역대 장성(長城) 발표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이 점이 쟁점 사항으로 논의됐다.
이날 단국대 이종수 교수는 “이번 사업은 만리장성 동단을 북한 청천강까지 확장시키려는 작업”이라며 “한족의 역사·문화를 지속적으로 자국의 것으로 바꾸려했던 중국 정부의 태도를 고려해 볼 때 장성 사업도 동북공정의 일환이며 미리 설정돼 있는 역사왜곡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토론에 참석해 발제했던 강원대 남의현 교수도 “이번 일은 고대 한반도 역사를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한정시켜 고구려, 발해 등 한국 북방사와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만드는, 한국사 전체를 왜곡시키는 것”이라며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한 바 있다.
이 같은 지적에도 정부 측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 정부의 발표는 고구려·발해사를 왜곡하기 위한 것으로 볼 근거가 다소 약하고 동북공정은 아니라는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동북공정을 비롯해 백두산, 아리랑, 만리장성까지 중국 정부의 역사왜곡이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재단은 뒷짐만 지고 있는 실정이다.
외교통상부도 동북아역사재단과 의견을 같이한다. 중국 정부의 아전인수식 역사왜곡이 수일을 넘었음에도 외교부는 “중국 측 발표에 대해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 중”이라며 “파악이 되는 대로 학계에서 검토하고 동북아역사재단과 연구 등의 작업을 병행할 것”이라고 12일 오후 정례브리핑을 통해 밝혀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외교적 사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외교부의 미온적 대처는 해외유출문화재 환수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외교부는 지난해 4월 해외유출문화재 환수를 위해 ‘해외문화재협의회’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으나 지난해 7월 ‘문화재반환 국제포럼’ 개최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문화유산 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외교부가 명분을 앞세워 외교적 성과를 내려다 보니 진정성 있게 약탈 문화재 환수를 하지 못한다”면서 “‘5년 단위 임대 갱신’으로 국내에 들어온 외규장각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만약 외교부가 나서지 않았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의 성과지상주의 정책이 문화재 환수 과정에서 자칫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해외유출문화재 환수에서 중요한 점은 외교부의 형식적인 회의나 포럼보다 민관이 합동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해외유출문화재 환수를 담당하고 있는 외교부 문화외교국 한충희 국장은 “문화재에 관한 구체적인 목록을 만든다거나 문화재 자체를 평가하는 일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외교부에서는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반환 결정이 내려질 때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게 외국 정부와 협상을 하는 것”이라며 “양국 관계를 고려해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는 외교부가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현재(2012년 5월 기준) 환수가 완료된 문화재는 9749점이며 반환되지 않고 해외에 소장돼 있는 문화재는 14만 9126점이다.
이와 같은 여건을 감안해 정부는 해외반출문화재의 효과적인 환수와 활용을 위해 공적 기관이 아닌 민간 전담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문화재청을 통해 지난달 22일 밝혔다. 7월에 설립 예정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그것이다. 재단은 앞으로 외교부의 문제점을 보완해 민간 소장 국외문화재 실태와 유통 등 현황을 조사하고 문화재 구입과 기증을 유도하는 역할을 전문가들을 통해 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외문화재팀 박관수 행정사무관은 “문화재 환수에 관한 부분이 산발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며 “앞으로 외교적 문제가 있을 때는 외교부가 나서지만 민간 기관과 접촉할 때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 김명화 기자 kmh929@newscj.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