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1906~1962·사진)은 흔히 문화독립운동가로 불린다.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말살되어 가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문화재보호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10만석 부호의 상속권자였던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막대한 재력을 활용해 우리 문화재 회수에 착수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감식가이자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중 한 명인 위창 오세창(1864~1953)을 비롯해 문화적 민족 운동에 공명하는 많은 지식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실현해나갔다.
그가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수집하던 1930∼40년대는 일제의 수탈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이다. 고려고분 2000여기가 도굴되고 1000여점이 넘는 고려청자가 일본으로 밀반출됐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문화재는 생활고 때문에 불쏘시개로 쓰일 정도였다. 간송이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서 국보 294호 '청화백자 양각진사철채 난국초충문병'을 1만4580원에 낙찰받은 이야기는 전설로 남았다. 조선 왕실 가마터가 있던 광주에서 나물 캐는 할머니가 발견해 참기름 병으로 사용하다 단돈 1원에 일본 상인에게 팔아버린 물건이었다. 당시 경성시내 여덟 칸 짜리 기와집이 1000원에 해당했으니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했다. 간송은 가산을 탕진한다는 비방을 들을 정도로 오직 문화재 수집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모은 문화재가 '청자상감운학매명'(국보 68호),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등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5000여점에 달한다.
그의 50주기를 맞아 간송미술관은 '진경시대 회화대전'을 이달 27일까지 연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정립한 겸재 정선(1676~1759)의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조선남종화를 일군 현재 심사정(1707∼1769)의 '계산모정(溪山茅亭)', 단원 김홍도(1745∼?)와 혜원 신윤복(1758∼?)의 진경풍속화 등 민족문화의 정수를 담은 회화 100여점을 선보인다. 진경시대는 숙종부터 정조에 걸쳐 약 125년간의 조선 후기 문화절정기로 겸재가 창안한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이후 단원과 혜원에 이르며 조선 고유의 색을 한껏 드러내던 시기이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70)은 "유럽에서 그리스·로마 문화를 기준으로 문예부흥을 시켰듯이 우리도 이 시대를 기준으로 해서 문예부흥을 하자는 의미로 간송은 이 시대 미술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고 말했다.
간송은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서화에 일가를 이룬 문사들과 교유를 가지며 그 자신의 예술과 감식안을 대가의 반열에 올렸다. 전시에서는 간송이 50세 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고사소요(高士逍遙·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를 갱지에 따라 그린 '방고사소요(倣高士逍遙)'와 사촌형인 역사소설가 월탄 박종화(1901~1982)와 술을 마시다 흥에 겨워 그린 국화 그림 등 간송의 예술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서화도 함께 선보인다. 관람료는 없다.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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