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전신 도입의 풍경
19세기의 인터넷 ‘전신’이 20세기를 거치며 점차 사람들의 일상적인 매체로 자리잡는 사회적 수용과정에서 대중은 새로운 매체에 대해 열망과 기대를 보내는 동시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19세기 서구사회 대중의 열망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지식을 즉각적으로 배포할 수 있다는 ‘즉각성’의 환상을 전신 매체에 심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전신이 시공간을 가로질러 메시지를 전달하는가에 대해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의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전신 운용자들은 대중시연大衆試演 이벤트를 벌여 대중들의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이는 비단 서구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신이 도입되었던 개항기의 한국사회에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전신의 도입은 일상민들의 통신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구한말 한반도의 정치적 지배를 두고 쟁투를 벌이던 제국 열강의 필요성과 도전세력의 봉기를 제압할 필요가 있었던 조선정부의 이해관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중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자국의 전신 네트워크와 연접連接시킬 목적으로 중국 기술자에 의해 건설되고 운용되었던 ‘서로전선’(의주-평양-서울-인천, 1885년), 그리고 중국과의 정치적 대결구도 속에서 좁아져 가는 일본의 입지를 높이는 한편 이미 1884년도에 완성한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잇는 해저전신케이블에 연접할 목적으로 건설된 ‘남로전선’(서울-공주-전주-대구-부산, 1888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로전선 가설의 기술적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정부가 독자적인 의지로 북로전선(서울-춘천-원산, 1991년)을 가설함으로써, 전신 네트워크의 기본적인 틀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개항기 전신의 도입이 일반 조선 민중의 통신 욕구와 무관하게 이뤄지다보니, 당시 전신에 대한 조선 민중의 의심은 매우 컸다. 그리고 이는 (가혹한 전신주 부역에 대한 반발과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서) 전신선로에 대한 절단행위로 이어졌다. 전보의 한국학적 의미를 탐구했던 이규태는 『개화백경』이란 책에서 전신에 대한 조선 민중의 의심이 크게 세 가지 전통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첫째는 전보로 기별한다는 것이 부정스럽고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한말 궁내부 주사로 있었던 황우찬黃祐璨 옹의 회고에 의하면, 인천의 한 세관직원이 서울에 있는 아버지에게 아들 낳았다는 소식을 전보로 전했다. 이를 부정하게 여겨, 그 할아버지는 그 손자를 평생 집 문안에 들이지 않았다 한다. 둘째, 유언비어가 크게 작용하였다. 전보가 오는 도중, 전선을 지키는 외국 병정들에 의해 변조된다는 것이었다. 청나라가 가설한 전선 전보는 청국병정이, 일본이 가설한 전선 전보는 왜병정이 도중에서 전보를 따돌려 전혀 그릇되게 변조하여 보낸다는 것이다. 또 전보는 전기바람의 소치이고 전기 바람은 가뭄을 몰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전보가 날아들면 가뭄이 드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혹시 누군가가 몰래 전보라도 받지 않았나 의심하였고, 경상도 의성義城지방에서는 기우祈雨의 한 방식으로 모의 전보용지를 만들어, 그것을 태우는 것으로 비 오기를 빌었다. 셋째, 전보는 관官의 전용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관에 대한 기피심리가 전보를 멀리하게 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유령성幽靈性 귀신이 가장 많이 탄생한 곳이 관가官家였다. 즉, 관가나 옛날 관가였던 터에는 귀신이 살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관을 기피하게 된 연유이다. 그러기에 전보를 취급하는 전보사電報司에 전기귀신이 살고 있다는 발상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와 같이 신래新來 기피사고忌避思考가 관 기피사고와 결합됨으로써, 개화의 문물은 다각도로 저항을 받아야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전기통신이 거의 전적으로 국가의 수단으로 인식되던 당시엔, 전선절단은 엄벌로 다스려져야 할 아주 심각한 범죄였다. 그래서 정부당국자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장소에서 전선절단범을 고압전선에 묶어 전류를 보내 감전사시키거나 효수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또한 구한말 미국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James Gale의 기록에 의하면, 상거래 용도로 빈번히 사용되었던 전보는 외국인들에겐 매우 소중한 매체였지만 구한말 조선의 객주客主들이나 보부상褓負商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다. 왜냐하면 전신선이 끊임없이 서울과 연락을 취하고 있어서 객주나 보부상들이 많은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값비싸지만 유용한 통신수단, 전보
전신이 정보를 보내고자 할 때 의존하는 전기통신매체라고 한다면, 전보는 전신 기계에 의해 전달되는 메시지에 해당된다. 따라서 일반인이 전보를 접할 수 있는 것은 편지와 마찬가지로 송신자가 보낸 (종이에 적혀진) 메시지를 배달부에 의해 전달받을 때에나 가능하였다. 이 땅에 전보가 처음으로 수발受發된 것은 1885년의 일이었으나 그것은 순한문이었고 주로 관보官報였다. 따라서 일반인의 이용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1898년 국문 전보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전보는 글 모르는 대중에게도 흥미의 대상이 되었다. 1898년 7월 17일자 《독립신문》기사에서는 “서울서 의주까지 전신을 보내려면 통신국으로 가서 국문으로 보내되 한 자에 동전 두 푼이면 천리 사이에 말을 통한다더라”하여 그 감격과 환희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문전보의 개시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여지는 생겼으나, 전보는 편지에 비해 매우 비싼 통신수단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그러하였는데, 심지어 어떤 연구자는 우편(4전), 전신(10~15전), 공중전화(10전)의 비용 중 가장 비싼 통신수단이 전신이었다고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통신수단에 비해 전보요금이 더 비싼 현상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체신부가 발행한 『전기통신요금변천록』에 의하면, 보통시외전보의 경우 1962년 화폐개혁 이후 25원이었다가 1966년 1월 1일에 50원이 인상되었다. 이에 비해 시외전화비용은 1962년 당시 50km 미만까지는 15원, 100km미만까지는 30원이었다. 물론 멀리 떨어진 지역 간에는 전화요금이 훨씬 비쌌지만, 비교적 가까운 지역 간에는 오히려 전화요금이 더 저렴한 현상까지도 발생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외전화의 경우, 미리 전화신청을 하여 호출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지역과 통화를 하고자 할 때 비용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 ‘1가구 1전화’의 시대를 맞기 전까지 일반인들이 기쁨과 슬픔이 담긴 인생소식을 급히 전하고자 할 때 주로 의존했던 통신수단은 전보였다.

전보에 담긴 일상풍경
종이에 적혀진 메시지를 배달부에 의해 전달받는 체계였던 만큼 20세기 전보의 사회적 수용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특히 우체국이 멀리 떨어진 농촌의 경우, 편지나 전보를 부치거나 받아보기가 썩 용이치 못한 형편이었다. 하루 품을 매고 15리, 20리를 찾아가야만 부칠 수 있고 닷새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어야만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었다. 또한 장날이라도 우편배달부의 손에서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장 출입을 잘하는 구장區長 영감의 전편傳便으로 혹은 이웃사람雇人의 전편으로 받아보게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급하다는 전보조차도 3, 4일씩 지체되는 일이 일제강점기 농촌지역에서는 종종 있었다. 한편 전보는 사람들의 시간관념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전보 전달속도의 차이 만큼이나 전보가 미친 시간관념에 대한 영향에 있어서도 근대 초기 도시와 농촌 간에는 다소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별건곤》 1932년 7월호에 게재되었던 어느 한 소설은 전보와 근대 시간관념 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二八일조 한강착”
서울서 일류 가는 모던보이 형식은 시골아저씨로부터 벌써 열흘 전에 이 같은 전보를 받았다. 길 떠나는 날 당일 정거장에서 쳐도 될 전보를 열흘 앞서서 칠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영민한 형식군은 벌써 알아 채렸다.
“이 양반이 생전 처음으로 서울구경을 하게 되니까 미리부터 서두르시는구나. 매사는 불여튼튼. 일에 막닥드려가지고 허겁지겁을 할 게 아니라 미리부터 해두자 하는 아저씨의 모토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중략)…
형식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들면서,
“아저씨! 몇 시 차에 내리셨어요. 어느 정거장에서 내리셨어요”
“아, 형식이냐. 너를 여기서 한참 기다려 섰었다. 내가 열흘 전 떠날 때 부친 전보는 받아보았겠지. 서울길이 꼭 열흘 걸리는 구나”
“그래, 당나귀를 따고 오셨군요. 하하하하……동키호테같은 마이 엉클(우리아저씨)!. 어서 문안으로 들어갑시다. 저 자동차타구”

사회적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여러 가지 해프닝을 거쳐 전보는 점차 대중들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근대 한국에서 전보의 사회적 용도는 개인 간의 급한 소식을 전달하는 용도에서 벗어나 점차 결혼, 영전, 생일, 회갑, 약혼, 승진, 백일, 합격, 취직, 졸업, 입선, 입학, 취임, 학위, 당선, 우승, 출산, 성공 등 인간 생애사의 좋은 소식을 축하하는 ‘경축전보’와, 재난이나 사망과 같은 슬픈 사건에 대해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조위전보’로 자리잡게 되었다. 즉, 19세기의 인터넷으로서 개발되었던 전신 테크놀로지와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인 전보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인간 상호 간의 ‘위로’와 ‘축하’, ‘공감’의 매체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화, 휴대전화, 스마트폰 등의 선진적 통신수단이 개발되고 일상화된 21세기의 매체적 상황 속에서 ‘위로’와 ‘축하’, ‘공감’ 매체로서의 ‘따뜻한’ 전보는 이제 그 자리를 새로운 통신수단에 양보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21세기의 새로운 통신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따뜻한’ 정서의 매체로 만들 것인가.

글·사진·윤상길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박사후연구원 사진·문화재청, 우정박물관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