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에 포위된 봉은사 “숨 쉬고 싶다”

ㆍ코엑스 등 잇단 증축 계획
ㆍ조망권 침해로 민원 제기
ㆍ“천년고찰 고려한 개발을”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복판에 자리한 봉은사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고층 건축물들이 시야의 절반을 차지했다. 봉은사는 794년 창건된 1000년 넘은 고찰로 신도 수만도 25만여명이다.

봉은사를 중심으로 정면에는 4층 높이의 코엑스(COEX) 신관과 지상 41층 높이의 아셈타워(약 179m), 지상 29층 높이의 인터컨티넨탈호텔(105m) 등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이 사찰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지상 55층 규모의 무역센터(227m), 오른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면 10층 이상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35m 너비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100m가 넘는 높이를 상쇄하긴 역부족이었다. 빌딩숲에 둘러싸인 봉은사에 최근 근심이 줄을 잇고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오는 26~27일 핵안보정상회의(G50) 등 매머드급 국제회의가 봉은사 바로 앞 코엑스에서 연이어 개최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봉은사 앞을 병풍처럼 둘러싼 고층 건물들을 더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한국무역협회는 코엑스 전시컨벤션센터 증축을 위한 세부개발계획안을 강남구청에 제출, 공람 절차를 밟고 있다. 무역협회는 현재 4층인 건물을 최대 39층까지 증축하는 개발안을 제시했다. 이 계획대로 전시컨벤션센터가 증축될 경우 봉은사 앞에는 180여m 높이의 큰 벽이 세워지는 셈이다.

봉은사를 에워싸려는 건축물들은 전시컨벤션센터뿐만이 아니다. 봉은사 바로 왼쪽에는 약 6m 거리를 두고 15층짜리 건물 2채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 인근에는 12층 높이의 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봉은사는 코엑스 인근에 있는 인터컨티넨탈호텔 측의 건물 신축 계획도 주시하고 있다. 2014년 이전 계획을 가지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자리에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벌써부터 신경을 쓰고 있다.

봉은사는 일단 열람 공고를 통해 개발 가안을 확인한 뒤 조망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봉은사 측은 건축설계도가 나오기 전부터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건물 증축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봉은사 관계자는 “조망권 침해는 물론이고 스님들의 수행 환경을 방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주변 고층 건물 증축을 막으려는 주지 스님의 의지가 단호하다”면서 “전통 사찰과 현대 건물이 어우러질 수 있는 개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봉은사는 1997년 아셈타워가 건설될 때도 조망권 침해 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했다. 양측은 논의 끝에 건물의 각도를 변경하는 등 합의에 이르렀다. 같은 해 인터컨티넨탈호텔 측과도 같은 내용의 합의를 이룬 바 있다.

[중앙일보] 정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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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자리는 조선시대 승려 수천 명 승과시험 치른 벌판

1960년대 초 필자가 중학생이었던 어느해 식목일. 뚝섬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봉은사 뒷산에 나무를 심었다. 당시 봉은사 주변은 논밭뿐이었다. 한강을 건널 때 조그만 동력선이 통통거리며 뒤에서 목선을 밀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이 배마저도 결항됐다. 봉은사 쪽에 살던 강남 학생들은 비 오는 날이면 결석할 수 밖에 없었다.

1970년대 시작한 도시계획으로 강남은 상전벽해(桑田碧海), 빌딩 숲이 됐다. 지금은 개발에 앞서 고고학적 조사를 먼저 실시한다. 중요한 문화유적이 나오면 계획이 변경되기도 한다. 그러나 강남개발 당시만 해도 문화재의 중요성이 무시돼 강남 지역 문화유적은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강남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들이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봉은사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강남 지역의 고찰로서 수많은 불교 신자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봉은사의 역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고승 연회국사가 창건한 견성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98년 연산군이 성종대왕의 능인 선릉을 조성하면서 견성사를 중창해 봉릉(奉陵)사찰로 삼았다. 이때 봉은사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다 명종 17년(1562년) 중종의 능인 정릉을 조성하면서 봉은사를 지금의 수도산자락으로 옮겼다. 성종과 중종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로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시기였다. 고려왕조가 숭상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국교로 내세웠다. 고려부터 이어져 온 승려 자격시험인 승과(僧科)가 중종 2년(1507년)에 완전히 폐지됐다. 중종33년(1538년)에는 『동국여지승람』 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절은 모두 불태우는 훼불(毁佛)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길을 가는 승려에게 욕설을 하고 구타를 해도 말리 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사찰에 들어가 고기를 구워먹는 이도 있었고 부처를 모셔놓은 단을 훼손해도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았으니 불교의 운명은 태풍 앞에 놓인 촛불 신세였다. 이때부터 사찰은 사람들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일본에 있는 한국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약탈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때 버려진 불교문화재를 일본 사신들이 주워가다시피 한 것도 상당량이라니 당시 불교가 얼마나 억압받고 배척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명종 7년(1555년) 봉은사 주지였던 허응당 보우(虛應堂 普雨, 1515~65년) 선사가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지원을 받아 폐지됐던 승과를 부활시켰다. 그 해 8월 봉은사에서 승과고시를 열었다. 이때 시험을 보려고 몰려든 스님이 수천 명이나 돼 봉은사 앞 벌판에서 시험을 치렀다. 서울 삼성동 봉은사 앞 현재의 코엑스(COEX) 자리는 이때의 승과고시 덕분에 ‘승과평(僧科坪)’ 또는 우리말로 ‘중의 벌’이라 불렸다. 지금은 그 위치를 알려 주는 승과평 표지석만 남아있다.

승과고시는 이후 10년 동안 이어지다가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보우선사도 죽음을 맞으면서 폐지되고 만다. 승과고시의 부활을 이끌었던 보우선사는 명종 때 혜성처럼 나타나 조선 불교의 중흥을 이끌어낸 승려였으나 불교를 배척했던 유교세력으로부터는 ‘희대의 요승(妖僧)’으로 몰렸다. 제주도로 유배됐고 끝내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승과고시를 통해 조선 불교의 중흥이 이뤄졌다.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같은 고승들도 배출됐다. 이렇게 조선시대 최고의 불교 중흥기를 상징하는 장소가 바로 ‘승과평’이다.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내로라하는 스님이 승과평을 가득 메운 채 시험을 치르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440여 년이 흐른 지금, 승과평 자리는 세상의 모든 기술과 정보가 모이는 강남의 문화중심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 또한 면면하게 이어져 봉은사는 20만명의 불자가 예불하는 서울의 대표 사찰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병식(1951년 출생)

-한양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졸업
-한양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졸업(고고학 전공, 석사)
-상명대 대학원 사학과 졸업(고고학 전공, 문학박사)
-운주문화연구원 원장(현)
-주류성 출판사 대표(현)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발행인(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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