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문화재급 가치 인정한 곳, 그곳은 국민의 것이다 

함양 용유담 명승 지정예고 의의

이상길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도 문화재위원

 
 
문화재청이 함양 용유담 등 네 곳을 명승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가 세 곳만 지정하고, 용유담은 지리산 댐 건설 관련자의 이의 제기로 일단 제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수많은 문화재 중 특히 가치가 높아서 일정한 절차를 거쳐 보호되는 것이 지정(指定)문화재이다. 문화재 지정의 주체는 국가를 대신하는 문화재청(국가지정문화재)과 광역자치단체(시·도지정문화재)이며,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와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문화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이번에 논란이 된 명승(名勝)은 산이나 하천, 급류, 계곡, 고원 등의 자연 중에서 특별히 경관이 빼어난 지형 또는 지역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국가가 지정하여 관리하는 곳을 말한다.

문화재 지정은 '문화재보호법'에 정한 일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문화재청장은 먼저 지정하고자 하는 문화재에 대해서 관계 전문가에게 조사를 요청하고, 현지를 조사한 위원은 그 가치와 지정에 대한 의견을 포함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먼저 문화재위원회에서 보고서에 기초하여 문화재의 가치를 검토하며, 여기에서 당해 문화재가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 그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심의, 결정하기 전에 관보에 지정예고를 하게 된다. '지정예고' 기간은 30일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그 기간에 혹시 지정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유가 있는지를 살펴 국민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지 않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지정예고 중 이의가 없으면 다시 그 위원회에 상정하여 지정 여부를 심의하는데, 지정예고 전에 이미 그 가치를 판단하는 절차를 거쳤으므로 그대로 지정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함양 용유담의 경우 지리산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수자원공사와 함양군이 예고기간에 문화재 지정을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므로 이번 위원회에는 상정되지 못한 것 같다.(보류가 아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문화재청이 당해 문화재에 대해 지정예고라는 행정절차를 취했다는 사실이다. 관보(官報)를 통해 지정을 예고하였다는 것은 당시 현장을 조사한 전문가들은 물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에서 용유담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미 그 가치가 인정된 문화재에 대해 건설공사를 빌미로 지정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문화재청(文化財廳)이나 문화재위원회(천연기념물분과)는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셈이 되고 만다. 문화재 보호는 원형 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각종 건설공사에 앞서 문화재 조사를 하는 것은 파괴로부터 문화재를 지키자는 의미이다. 댐 건설로 파괴나 훼손이 뻔한데, 이미 그 가치를 인정하고서도 지정하지 않는 것은 문화재 보존·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문화재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댐 건설을 추진하는 당사자인 수자원공사가 문화재 지정을 반대하는 것은 일단 제쳐두고, 해당 지자체인 함양군이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용유담이 비록 함양군의 마천면과 휴천면에 걸쳐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함양군의 소유가 아니라 국민이 그 주인이다. 댐을 건설하여 함양군이 어떤 눈앞의 이익을 취할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지리산을 끼고 그 자락에서 면면히 살아온 지역 주민들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전국의 국민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가치를 높이는데 앞장서는 것이 도리이다. 자연을 갉아서 이익을 얻을 계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자연과 함께 누리고 살아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위정자(爲政者)가 할 일이다. 존경받는 목민관(牧民官)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수자원공사는? 이 일과 관련해서 본다면 함양군보다는 좀 더 이해당사자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버하기는 수공(水公)도 마찬가지다. 누가 온 나라의 물을 당신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허락했나? 적어도 나는 당신들에게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다. 그저 충직한 집사처럼 물을 잘 관리하라고 했을 따름인데 오히려 물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것은 도가 한참 지나쳤다.

이번 지정 추진은 지리산 댐 반대론자들이 주창한 것이 아니라 문화재청이 스스로 전국의 명승자원을 조사하여, 그중에서 용유담 등 네 곳을 선별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국가가 먼저 지역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받들고자 하는 뜻을 물리치는 것은 너무나 엉뚱한 일이며,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문화자원이 하찮은 건설공사 때문에 훼손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지리산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받고자 하는 여러 움직임이 있고, 세계 자연유산 지정을 통해 함양군을 비롯한 지리산권의 지자체가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익을 고려한다면, 지리산 일각에 자리한 용유담을 우리가 먼저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너무도 바람직한 일이다. 남들은 모두 인정해 주겠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함양 용유담은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합류하여 형성된 큰 계곡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홉 마리의 용이 놀았을 만큼 연못의 규모가 크고 수심이 깊으며, 용이 남긴 배설물 흔적을 연상시키는 암반들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나타낸다. 용유담은 신선이 노니는 별유천지(別有天地)로 예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며, 지금은 전국의 피서객이 휴식을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가뭄이 들면 관아가 주도하여 기우제를 지낸 대표적인 장소로, 함양군수로 있었던 김종직(金宗直) 선생이 용에게 비를 내려줄 것을 호소하는 기우제를 지낸 후 지은 시가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문화 명승지이다."

이 글은 문화재청이 지난 2011년 12월 8일 용유담을 지정예고하면서 보도자료로 제시한 내용이다. 댐 건설을 막고자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면서 억지를 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용유담이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 늦은 것이 아니다. 한번 주춤하기는 했지만 용유담의 문화재 지정은 다시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법 절차에 따라 잘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화재청은 물론 경상남도와 함양군은 용유담 지정과 관련하여 특정 기관이나 지자체가 이해당사자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국가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를 가진 함양 용유담은 국민의 것이며 그것을 향유할 권리 또한 국민에게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정치인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경남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