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휘감고 있는 남원은 참 살기 좋은 고장이다. 또 역사와 문화유적의 보고이다. 천년고찰 실상사가 있고, 역사의 아픔과 호국정신을 간직한 소중한 유산인 남원읍성, 만인의총, 교룡산성, 황산대첩지가 있다.

송흥록, 송만갑, 김정문, 이화중선, 강도근, 안숙선, 오갑순, 강정렬 등 수 많은 명인명창을 배출한 국악의 성지이자 판소리 동편제의 본향이다. 우리나라 고전을 대표하는 춘향전과 흥부전, 현대문학의 걸작인 혼불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고 있는 남원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운봉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가야문화이다. 우리는 가야문화를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역사의 무지에서 비롯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모르고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다. 늦었지만, 우리는 이제 운봉고원에서 찬란한 꽃을 피운 잊혀진 가야문화의 비밀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한다.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원시 아영면과 인월면 일대에는 경주 신라 왕릉 같은 봉분 40여 기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988년에 실시한 두락리 고분군 2기 발굴조사결과 2호분은 직경 20m, 높이 6m에 이른다. 1호분은 시신이 안치된 돌방의 총 길이가 9m, 폭이 1.3m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형태가 양호한 환두대도, 금동귀걸이, 화살촉, 구슬, 청동방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중 33점이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도굴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가야유적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락리 고분은 대가야의 대표 유적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200여 기), 사적 512호로 관리 중인 경주 대릉원(고분 23기)에 비해 손색이 없는 규모이다. 고분규모, 수량, 문화적 가치 등을 동시대 유물과 비교해 보면 운봉 가야는 당시 김해 금관가야나 경주에 있는 신라에 버금가는 큰 세력이 존재하였다는 설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유서 깊은 가야 고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문화말살 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 일본인들의 문화재 약탈 및 골동품 수집으로 거의 도굴되어 황폐화되고 말았다. 학계에서는 한때 운봉 가야 고분을 백제 묘역으로 추정하였다. 그것은 남원지역이 백제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 고분이 가야국 유적으로 조명을 받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초 88올림픽 고속도로 개설당시 두락리와 유곡리 고분 인근에 있는 월산리 고분 발굴조사 결과 가야국의 고분으로 밝혀지면서다.

이제 우리는 운봉지역 가야문화유적의 실체규명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해 남원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지리산 가야문화 재조명’을 정책공약으로 내놓은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해 취임직후 군산대끼교 박물관에 의뢰해 고분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원 동부권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던 중심세력이 존재하였고,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았다. 남원시는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고분 발굴을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지난 2월, 전북 시장·군수 협의회 안건으로 채택해 도내에 산재한 가야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했다. 오는 23일에는 경남 김해·고령 등 14개 시·군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를 남원에서 개최한다. 남원시 관내에 산재한 가야유적을 소개하고 가야국 역사 규명에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발굴성과를 토대로 찬란한 철기문화를 자랑한 가야국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고분을 정비할 계획이다.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할 예정이다. 신비의 나라 가야! 수수께끼의 나라 가야!

1500여년 전 거대한 봉분만 남겨주고 말없이 사라진 남원 가야문화를 재정립 해 역사를 다시 기록하고자 한다.

/이환주 남원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