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내라, 사투리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사투리로 된 시가 처음 등장했다. 3월 새 학기부터 쓸 디딤돌출판사의 중 3 국어 교과서에는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강원도 강릉 사투리로 옮긴 글이 원문과 나란히 실렸다.

"남쪼루 창을 맹글라 그래요(남으로 창을 내겠소) / (중략) / 마커와 자세도 좋지요(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서 사나구 진셍이매루 물으믄 히쓱 웃는기 동정 달지요(왜 사냐건 웃지요)"

이 시의 강릉 사투리 버전은 (사)강릉사투리보존회가 제공했다. 이 단체가 작년에 18회를 치른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는 강릉단오제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어서 해마다 손님이 미어터진다. 2009년에는 유명한 시 59편을 사투리로 바꾼 시집 <감재 담은 바수가리>를 펴내기도 했는데, 편편이 별미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렇게 바뀌었다. "나 보는 기 매해서 / 들구번질 저는 / 입두 쩍 않구 신질로 보내드릴 기래요"(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표준어에 밀려 오랫동안 찬밥 신세이던 사투리가 귀중한 문화자원으로 대접받을 길이 열리게 됐다. 문화재청은 음악, 미술, 공예 등 기능과 예능 중심으로 돼 있는 무형문화재 범주를 사투리나 민담, 전통지식처럼 보유자를 특정하기 힘든 분야까지 포함하는 '무형문화유산'으로 확대해 보존하고 지원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표준어 정립에 힘써온 국립국어원도 올해부터 지역어 활성화 사업을 시작한다. 사투리를 부끄러워하던 생각도 많이 바뀌어서 요즘은 사투리를 살리려고 애쓰는 지역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라도말 지킴이로 소문난 월간지 <전라도닷컴>은 정월대보름 전날인 지난 5일 광주시립박물관 마당에서 제 2회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열었다. 초등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12개팀 30여명이 출전해 실력을 겨뤘는데, 폭소 만발에 재미도 그런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직접 가 보지 못해 유감이던 차에 대회를 잘 마쳤다고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짐작이 갔다. '이삐고 귄있는'(예쁘고 정감있는) 전라도말 잔치에 '항꾸네 모태서 오지고 재미지게'(여럿이 모여서 아주 재미있게) 놀았단다. 전라도말로 기사를 쓰는 이 잡지는 상 이름도 전부 전라도말로 붙였다.'질로 오진 상'(1등), '영판 오진 상' '팽야 오진 상'(우수상), '어찌끄나상'(아차상). 정이 담뿍 밴 표현에 또 한 번 웃었다.

안타깝게도, 독특하기로 전국에서 으뜸인 제주 사투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유네스코는 2010년 말 제주어를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 '아주 심각한' 은 유네스코의 위기 언어 분류 5단계 중 마지막인 '소멸한 언어'의 바로 아래다.

제주도는 2007년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역어 살리기에 힘써왔다. '제주어 구사 능력'은 제주시 지정 무형문화재이고, 제주어센터를 운영하는 제주대 국어연구원을 비롯해 도내 여러 기관과 단체가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열고 있다. 제주어 교육은 학교 평가 항목에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은 달라서, 교사가 제주어로 재량 수업을 하면 그럴 시간에 영어를 가르치지, 왜 사투리를 가르치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제주대 국어연구원 원장인 강영봉 교수는 "공공 영역에서는 표준어를 쓰더라도 가정이나 일상 생활에서는 제주어를 쓰는 이중언어생활을 하자"고 말한다. "표준어와 사투리를 고급/저급 식의 대립 관계로 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표준어는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사투리가 사라지고 표준어만 남는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사투리는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자원이다. 사투리의 복권은 우리말의 다양성을 살려 우리 문화를 살찌우는 길이다. 사투리가 살아야 표준어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