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7호인 이완규 장인미술 대표 등 전국 6개 범종제작사 대표들은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원광식(69)씨가 현대기법으로 국가문화재를 복원·복제하고 있다면서 최근 문화재청에 철저히 조사해 문화재 지정을 취소하고 원씨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청원했다.

이에 원씨는 “전통 방식을 시연해 논란을 불식하겠다”면서 26일 자신이 운영하는 충북 진천군 종박물관에서 시연회를 마련했으나 이씨 등의 참관을 막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씨는 “10여년간 연구 노력 끝에 밀랍주조기법으로 전통 종을 재현했다”면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1300년 전 주조기법의 맥을 이은 것을 흠집내려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원씨는 2001년 신라의 전통 범종 제작방식인 밀랍주조기법을 재연했다는 평가를 받아 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鑄鐵匠)으로 지정됐다. 원씨는 보물 479호인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동종, 보물 277호인 전북 부안군 내소사 동종 등 각종 범종 및 금속주조 문화재 복원·복제사업을 도맡았다.

이씨 등 청원자들은 “전통 기법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맥이 끊겼다”며 “지금의 밀랍주조기법으로는 높이 1m 이하 소형 종 제작만 가능할 뿐 낙산사 범종 등 중대형 범종은 제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지난 25일 직접 범종 제작 시연회를 열어 원씨의 전통 범종 재현 과정을 담은 책 ‘주철장’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원씨는 책에서 ‘밀랍과 쇠기름을 2 대 8로 섞거나 밀랍과 송진을 7 대 3 또는 5 대 5로 섞어 사용한다(75, 76쪽)’고 밝혔으나, 이씨는 밀랍에 쇠기름을 섞으면 젤 상태가 돼 조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원씨가 ‘이암에 음각으로 문양을 새긴 뒤 밀랍을 부어 떠낸다(77∼78쪽)’고 한 데 대해서는 이씨는 이암에 세밀하게 조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잘못 새기면 수정 자체를 할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이날 시연회에서 원씨 측은 “비천상 조각을 직접 하는 걸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암 가루와 모래, 진흙을 섞어 만들었다는 원씨의 주물사에 대해서도 이씨는 “불에 태워 분말화하면 점성이 없는 가루가 돼 버리는 탓에 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 등은 “세금으로 제작한 중요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원씨가 주장하는 전통방식의 범종 기술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취재팀이 확인한 강원도 양양군청과 이씨가 운영하는 종 제작업체 성종사가 펴낸 ‘낙산사 동종 복원 제작 보고서’ 등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복원·복제된 보물급 범종 5개 중에 상원사종을 제외한 4개 종에는 ‘세라믹 몰드기법’ 또는 밀랍주조기법을 혼용하는 방식이 쓰였다.

이에 원씨는 “범종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통 소재인 밀랍과 흙 대신 주물용 왁스와 세라믹 주물사를 쓴 것”이라고 해명한 적이 있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박희준·신진호·조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