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겨울철 놀이
겨울철 놀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첫 번째 만월의 시기인 정월대보름은 놀이가 매우 다양하다. 달에게 기원하는 달맞이, 정화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불놀이 형태인 달집태우기(동화놀이)와 횃불싸움,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줄다리기, 차전놀이, 고싸움, 경상도 지역의 여러 탈놀이, 겨울철 빙판 위의 팽이치기와 썰매타기, 실내놀이인 윷놀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야외의 연날리기, 지신밟기 등이 있다.

겨울의 새잡기는 초가지붕의 처마에 손을 집어넣어 촉감으로 잡는 방식이 있고, 마당 가운데 미끼를 놓아 막대를 받친 맷돌방석 줄을 잡아 당겨 잡는 방식도 있다. 그리고 여러 명이 일원이 되어 겨울 산을 내달리면서 토끼를 잡는 토끼몰이도 있다.

겨울철 놀이 중에 젊은 10대 남녀들이 시대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놀았던 춘향이놀이와 장치기놀이를 중심으로 상세히 살펴보자.

겨울철 춘향이놀이에 나타난 미혼여성의 시대적 불안과 극복 의지
겨울철 미혼여성의 놀이로 춘향이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10여 명의 처녀들이 실내에서 춘향의 영혼을 감정 이입시켜 현실과 미래의 불안을 극복하려는 주술적 놀이 형태이다. 미혼 여성들이 방안에 빙 둘러앉고, 가운데에 한 사람을 술래로 앉힌다. 그리고 손뼉을 치면서 ‘춘향아 춘향아, 이팔청춘 성춘향아!’라는 주문을 외운다. 주문은 다양한데, ‘춘향이 생일은 사월초파일, 춘향아, 내려라 내려라!’ 라고 외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모두 일어나서 방 안을 빙빙 돌며, 이것이 점차 빨라지면서 나중에는 손뼉을 치고 격렬한 춤을 추면서 집단 최면에 돌입한다.

놀이도 단순히 술래에게 신기를 불어넣어서 모은 손이나 반지를 쥔 손이 벌어지게 하는 신통력 확인 방식이 있다. 그러다가 점차 구슬픈 서사민요 가창, 강강술래와 수건 찾기 놀이, 집단 가무의 신명, 신내림대 사용 등의 놀이가 가미된다. 따라서 집단적인 놀이, 주술, 가무의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명칭상 ‘춘향이놀이’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춘향아씨놀리기’, ‘꼬대각시놀이’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보통 ‘춘향’ 또는 ‘꼬대각시’란 말이 들어가는 것이 공통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아동놀이를 제외하면 성인 여성의 놀이가 적은 편이다. 그런데 이 놀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20세기 중반에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매우 성행하였다. 현지조사와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하면, 전국에서 135군데 가까이 나타난다. 대체로 호남과 영남, 충남 서부 지역에 많이 전승된다. 그렇지만 근래 추가 현지조사를 해보니 중국 조선족 마을을 포함해, 충남 청양 10곳, 경기도 평택 6곳이 추가로 조사되어, 거의 150군데 이상이 된다. 따라서 전국적인 분포 양상이며, 현재 80세 이상의 할머니들은 대부분 이 놀이를 경험했거나 목격한 세대이다.

왜 미혼 여성들이 일정한 주문을 외면서 춘향의 영혼을 부르며 이 같은 놀이를 했을까? 일단 이 놀이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미혼 여성들의 의식을 반영한다. 당시 미혼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오히려 두려움이 더 컸다. 주요 전승 시기인 1940~1950년대를 보면, 그들은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적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혼인이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혼인과 시집살이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혼 여성들은 어떤 집안의 남자를 만나 평생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중요한 결정에 자신의 판단이나 의지는 반영되지 않는다. 혼인 첫 날 밤에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는 할머니들의 회고는 이런 두려움과 불안감을 반영한다. 그들은 주술적 노래와 집단최면을 통해 춘향의 영혼을 이입시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심리적 억압 구조를 탈피하려고 시도하였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결합하고,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신분상승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누린 춘향의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미혼 여성들은 미래의 두려움을 ‘놀이’라는 선험적 행위를 통해 사전에 해소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반복된 춘향이 주문은 어찌 보면 “그래, 나도 춘향이처럼 잘 살 수 있어.”라는 일종의 다짐이며, 춘향을 통해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맛보려고 했을 것이다.

겨울철 장치기의 역사성과 일제 강점기 민족정기 함양
지게를 진 10대 남성들, 곧 초동樵童들의 겨울철 놀이로 장치기가 있다. 이것은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면서 일제 강점기에 민족운동의 차원에서 널리 보급되기도 했다. 장치기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나무꾼들이 낫으로 소나무 옹이를 깎아 나무공을 만들고, 긴 나무를 적당히 잘라 장시라는 채를 만든다. 장치기 놀이는 4~5명씩 편을 갈라 양쪽에 있는 골대에 공을 넣거나 상대 결승선을 통과하는 집단적 승부놀이다. 따라서 장치기는 필드하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장치기는 원래 마상격구가 지상격구화하면서 상층에서 기층으로 퍼지게 되었다. 천 년 이상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마상격구가 고려 말, 조선 초기를 거치며 점차 지상화하여 전국에 퍼지게 된다. 명칭도 타구, 얼레공, 장치기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초기 기록에는 타구打毬라 해서 궁중에서 왕과 종친들이 장시라는 채로 공을 쳐서 ‘와아’라는 구멍에 넣는 구멍투입형 놀이가 있었다. 상층의 사교적 유흥문화의 성격을 지닌 일종의 미니골프인 셈이다. 그런데 태종 때에는 민간의 남자 아동들이 한양의 혜정교 근처에서 지상 타구를 했다. 공을 치는 인물을 구체적으로 왕과 여러 대군, 천한 반인伴人 등으로 지칭하면서 타격을 한 일종의 풍자적 놀이 형태로 장치기의 초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조선 후기에 오면 본격적인 민간의 남성 놀이로 정착한다. 구체적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19세기 후반에는 일반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세기 초중반까지 겨울철 남성 청소년들의 집단 승부놀이로 대중화되었다.

이 놀이는 1920년대 말~1930년대 초기에 민족의식 함양 차원에서 야학을 중심으로 남녀 학생들에게 적극 권장되었다.

원래 장치기는 상층의 자제들이나 서당의 학동들에게는 상민의 놀이라 하여 억제되었다. 그런데 이 놀이의 보급을 주도한 것은 지식인 계층의 유학생들이었다. 곧 1930년대 초, 경기도 수원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주도한 지주 출신 젊은 지식인들이 야학을 중심으로 민족의식 고취, 농촌계몽운동 및 겨울철 체력단련의 수단으로 장치기를 적극 권장하였다. 그래서 평택의 진위천 냇가에서 일부 신문사 후원으로 1931년 1월 말∼2월 초에 대규모 ‘전국얼레공대회’가 개최되었고, 당시 32개 팀이 참여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산야가 헐벗고 젊은 나무꾼이 사라지면서 점차 장치기는 약화되어 갔다. 그래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재현되거나, 하키협회에서 전통적 놀이로 권장할 뿐이었다.

결국 장치기는 마상격구가 지상화하면서 지상격구 형태로 무인들의 개인적 무예연마나 상층 남성의 사교적 놀이에서 출발했다. 이후 민간 아이들의 여흥적 놀이를 거쳐 점차 초동들의 집단적 승부놀이로 바뀌어갔고 일제 강점기에는 농촌계몽운동의 차원에서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놀이로 권장되기도 했다. 근래 우리 필드하키가 비인기 종목의 한계를 딛고 세계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겨울나기, 그리고 봄의 희망 키우기
성인들이 겨우살이로 동짓달과 섣달을, 또한 농한기 겨울나기로 정월달을 바쁘게 움직일 때, 10대 남녀는 놀이로써 시대적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했다.

긴 겨울날 미혼 여성들은 방 안에서 춘향이놀이를 하면서 다가오는 미래의 불안을 달래며, 나도 춘향이처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다짐의 주문을 왼다. 즉, 질곡의 시대와 닥쳐올 혼인과 시집살이의 불안과 두려움을 놀이로 극복하려고 했다. 이 놀이는 그들이 주술적 집단신명을 통해 삶에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겨울나기 놀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어쩌면 긴긴 겨울밤에 봄을 기다리며 이상적 삶을 산 춘향의 영혼을 불러들여 희망과 자기 확신을 가지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10대 남자 아이들은 언덕이나 강가에서 지게를 벗어 놓고 마구 내달리며 장치기를 하며 놀이를 통한 강인한 정신력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을 길렀다. 이들은 어찌 보면 일제강점기 하에서 놀이를 통해 땀을 흘리며 시대적 추위를 떨쳐버리고, 언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희망의 봄을 가꿔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글ㆍ정형호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사진ㆍ문화재청, 국립민숙박물관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