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과 아현 무동연희장의 성행 1900년 전후 아현과 용산 등의 한강변에는 무동舞童연희장이 야외 가설무대로 설치되어 성행하였다. 그림 1에서와 같이 놀이패들은 너른 공터에 사각으로 넓게 말뚝을 박고 포장을 쳐서 울타리로 삼았다. 놀이공간의 한가운데에는 높은 장대를 사각으로 세우고 그 끝에 거대한 그늘막을 달았으며, 그늘막의 두 귀퉁이에는 각각 다른 색의 커다란 술이 달려 있었다. 커다란 술은 멀리에서도 한눈에 연희장의 존재와 위치를 시각으로 알려주는 표지 역할을 했을 것이었다. 울타리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말 그대로 구름 같이 모여 있었다. 놀이공간 한가운데에는 탈을 쓴 놀이패들이 연희를 하고 그 한쪽 끝에는 악사들이 자리하였다. 이들 무동연희장은 근대적 교통수단으로 등장한 전차 정거장과 근접하여 한성부 도시민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무동연희장은 도시민 관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당시 근대적인 인쇄매체로 새롭게 등장했던 신문에 광고를 싣기도 했다(그림 2). 당시 근대적인 도시개조사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었던 한성부 안에는, 외국인 거류지의 외국인 연희장을 제외하고는, 연희장의 설치가 금지되고 있었다. 그 대신 한성부 외곽에 해당하는 용산과 아현 등의 일부 한강변 지역에 한성부나 경무청의 허가와 통제 하에 무동연희장이 설치 운영되었다.

최초의 실내극장, 협률사의 설치
1902년 8월에는 고종황제 즉위 40주년기념 칭경례식稱慶禮式 1)을 위한 희대戱臺 2)가 봉상시奉常寺 3)안에 설치되었다. 희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극장으로 설치되었으며, 이후 전속연희단체의 이름을 따라 협률사協律社 4)라고 불렸다. 실내극장은 무동연희장과 달리 극장 외부와 내부를 건축적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서는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연희자와 관객이 만나는 방식과 연희방식 및 내용, 관극방식, 관객의 성격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협률사의 새로움은 또한 한성부의 중심에 합법적으로 허가된 최초의 극장이었다는 데에도 있었다. 봉상시의 위치는 지금의 새문안교회 자리로 알려져 있지만, 그림 3과 같이 당시 한성부의 지도를 참고해볼 때는 좀더 안쪽에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경희궁의 흥화문 바로 앞이었을 뿐만 아니라 광화문과 종묘사직에 인접한 한성부의 가장 중심지였다. 연희장의 도심 진입과 실내극장의 등장은 실상 동시적으로 발생한 일대의 연극적 사건이었다. 야외의 가설극장은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설치가 금지되었지만, 근대적인 실내극장으로 건축된 연희장은 근대적인 도시의 특징적인 모뉴먼트(monument)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협률사의 독특한 외관, 즉 둥그렇게 만든 외벽 위에 끝이 뾰족한 고깔모양의 지붕을 얹어놓은 듯한 모습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건축이었다(그림 4).

협률사의 레퍼토리와 공공극장화
칭경례식은 콜레라의 잦은 발생으로 끝내 무산되었다. 하지만 희대에서는 1902년 12월 4일 민간 연희단체인 협률사가 처음 상업적인 공연을 시작했다. 협률사는 창부唱夫와 기생, 무동, 남사당 등을 전속 연희자로 하였다. 개장 당시 관람료는 상등에 1원, 중등에 70전, 하등에 50전으로서 당시 10전이었던 활동사진 구경값에 비해 꽤 높은 편이었다. 협률사의 주된 연희는 창부의 판소리와 기생의 무용과 가요, 무동의 아크로바틱 등이었다. 기생과 창부의 연희는 원래 소수의 왕족과 귀족, 고위관리, 양반의 전유물이었으나, 협률사의 극장 영업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 관객대중에게 개방되었다(그림 5). 그 중 특히 기생의 연희는 그동안 특권적이고 폐쇄적인 궁宮에 전유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당시 협률사의 공연을 보았던 파란 눈의 여행가 부르다레는 ‘진짜배기 궁궐 무용수’에 ‘환장한 군중’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람들은 담패를 피우고 오가면서, 여태껏 궁궐에서만 공연하던 이 유명한 무용을 보려고 안달이 났다. … 이 저녁에 진짜배기 궁궐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예외적인 순서가 있었다. 이 새로운 구경거리를 보려고 환장한 군중이 극장에 모여들었다. … 그녀들은 전혀 수줍음이 없는 어린‘기생’들이다. 무대 뒤로 사라질 때 그녀들은 친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추파를 던진다.” 하지만 국권이 위기에 처해 있었던 상황에서 협률사의 극장영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협률사는 러일전쟁 전후 휴장과 폐장, 재개장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1907년 초반 관인구락부官人俱樂部로 용도변경 되었다.

원각사와 이인직의 ‘신연극’ <은세계>
1908년 7월 26일에는 신소설의 창시자인 이인직이 연극개량을 내세우며 당시 관인구락부로 활용되고 있었던 전前 협률사를 원각사圓覺社로 재개장하였다. 개장 당일의 레퍼토리는 주로 가기歌妓와 창부의 연희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연극개량 즉 ‘신연극’ 공연을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5일에는 마침내 이인직의 <은세계銀世界>가 ‘신연극新演劇’이라는 표제 하에 공연되었다.

<은세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주인공 최병도가 부패한 강원도 관찰사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그 자녀인 옥남과 옥순 남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미국 유학을 마친 후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귀국하였으나 의병들에게 끌려가는 내용이다. <은세계> 이후에도 원각사에서는 최병도와 유사한 실화를 토대로 했던 ‘이소사 이야기’와 <천인봉>, <구마검> 등과 같이 동시대의 현실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사회극이 비로소 공연되기 시작했다.

‘신연극’의 공연형식은 지금까지도 한국근대연극사의 주된 논쟁대상이 되고 있다. 일찍이 이두현 교수는 ‘신연극’ <은세계>가 일본의 소우시시바이壯士芝居와 같은 초기 신파극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이를 우리 근대연극의 기점으로 삼았다. 반면에 유민영 교수는 원각사 창부 이동백의 회고담을 근거로 <은세계>가 원각사 창부들에 의해 오늘날의 창극과 같은 판소리 분창으로 공연되었음을 밝히고, 우리 근대연극의 기점을 혁신단의 신파극으로 재설정하였다. 하지만 <은세계>가 비록 판소리 분창으로 공연되었다고 해도 기존의 판소리 레퍼토리와 다른 이인직의 새로운 극작술에서 우리는 ‘신연극’의 연극적 근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신연극’ <은세계>는 전술했던 바와 같이 동시대의 현실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주제적인 면에서는 대사 - 특히 계몽적인 연설의 장광설長廣舌 - 가 노래唱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근대연극을 향한 단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글 · 우수진 연세대학교 강사,『한국 근대연극의 형성』(푸른사상, 2011) 저자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