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그 이후' 특별전…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 등 500여점 나와
옛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현 중국 지안시) 동쪽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높이 6.39m, 가로 2m, 세로 1.48m의 거대한 바위 네 면에 1802자를 새겼다. "아, 옛날 우리 시조 추모대왕께서 처음 이 나라를 세우시니… 17세손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광개토대왕의 원래 이름)에 이르렀다. 태왕께서는 옳지 못한 적들을 무찔러 없애시니 나라와 백성은 부유하고 오곡이 풍요롭게 무르익었도다."
광개토대왕비의 원모습을 볼 수 있는 원석탁본(일본 역사민속박물관 소장)이 전시장에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11월 27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고대 문자자료 500여점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의 백미로, 5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다.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이 탁본은 1890년 이전에 뜬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껏 알려진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 10여종 중 가장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 ▲ ‘문자, 그 이후’특별전에 나온‘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보 126호·왼쪽)과‘진솔선예백장명청동도장’(보물 560호·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원석탁본이란 석회가 발리기 이전에 뜬 탁본. 세월이 흘러 비면이 닳아 잘 보이지 않는 글자들을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 석회를 발라 탁본을 뜨기 시작했는데, 석회 탁본은 일부 글자를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국내에 남아있는 광개토대왕비 탁본은 임창순본을 제외하면 모두 석회탁본이다. 비교 전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석회탁본)을 보면 '천(天)'자가 '인(因)'으로 돼 있는 등 일부 글자가 바뀌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196호)을 비롯해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연가7년명 금동불상'(국보 119호) 등 국보급 문자 자료가 대거 출품됐다. 신라 호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미노국(御野國) 호적 등 일본 쇼소인(正倉院) 문서 20여점도 볼 수 있다.
돌과 나무, 토기와 벽돌에 쓴 문자를 통해 옛 사람들의 생활상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백제의 말단 관리가 쓴 목간(木簡·나무 조각에 먹글씨를 쓴 것)에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 음지에서 고생만 하고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는구나"라는 한탄이 있고, 신라 촌락문서에서는 뽕나무를 심고 삼밭을 일구며 소와 말을 키우던 농촌 백성의 살림살이가 엿보인다. 가오리, 돼지, 사슴과 노루 등 신라 궁중(宮中)에서 먹은 음식, 벼 품종을 개량한 백제 사람의 지혜, 건강을 위해 감초나 대황 등 약재의 처방에 관심을 둔 정황도 파악할 수 있다. (02)2077-9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