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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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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화교의 딸, 세계 최고 미인 ‘왕관’...1962년 미스유니버스 대회 2위 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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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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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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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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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화교의 딸, 세계 최고 미인 ‘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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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미스유니버스 대회 2위 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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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초, 멀리 영국에서 뜻밖의 낭보 하나가 전해졌다. 인천 출신 화교 이수영(李秀英·19세)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다는 소식이다. 한국 화교사회는 물론 인천지역이 환호했다. 이수영은 중국 산동 출신의 부모를 둔 화교 2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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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화교로 미스유니버스에서 왕관을 차지한 이수영씨 | | 인천에서 화교학교인 중산소학을 졸업하고 13세에 대만으로 건너가 타이페이국립예술전문학교 음악과에 진학하였다. 이수영의 부친은 인천의 당면 제조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맏딸인 그녀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여 학업을 이어나갈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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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의 이수영(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인천화교협회, 인천대 중국학술원 제공 | |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하려면 예선격인 자국 미인대회에서 입상해야 한다. 이수영의 국적은 자유중국(대만)이었다. 세계 대회 본선 참가에 앞서 1961년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미스차이나’ 대회에 출전하여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대만 대표로 그해 연말 런던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해 2위의 왕관을 차지했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준(準)월드미스에 뽑혀 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되었다.
그 뉴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의 여신 비너스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당시 1위 월드미스 수상자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발각돼 1위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수영이 1위 수상자를 대신해서 1년간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결국 이수영이 그해의 미스 월드인 셈이었다. 1962년 1월 25일 ‘세계 최고 미인’ 이수영은 김포공항으로 금의환향했다. 자유중국 대사 부부, 화교 200여명, 미스코리아 진·선·미 등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이수영은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다시 와서 정말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날 박정희 의장(국가재건최고회의) 부부를 예방했다. 박 의장은 아직 대통령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당시 실제적인 권력 1인자였다. 이어서 판문점 방문, 방송 출연, 미스차이나의 밤 행사 참가 등 17일 동안 전국을 순회했다. 당시 국내 언론사들이 이수영의 일정을 연일 보도할 정도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큰 화젯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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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영대회 모습(사진 인천화교협회, 인천대 중국학술원 제공) | | 1월 31일 이수영은 인천 화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고향 인천 땅을 밟았다. 인천화교협회는 그녀의 모교인 북성동 중산학교의 강당 부흥당에 환영대회장을 마련했다. 주한자유중국대사 부부를 비롯해서 인천시장, 경기도경찰국장, 인천경찰서장, 경기매일신문사장, 경인일보사장, 미스 경기 등이 참석했다. 약 1천 여 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환영하고 보기 위해 학교로 몰려들었다. 그날 만찬은 지금은 짜장면박물관이 된 공화춘(共和春)에서 진행되었다. 며칠 후 인천시민회관에서는 시민들이 장내를 꽉 메운 가운데 ‘미스차이나의 밤’이 성대하게 열렸다. 이수영이 인천 화교학교를 방문한 사진이 지금도 북성동 옛 청국영사관 회의청 거실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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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출처 : 시대의 길목 개항장(유동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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