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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년을 잇는 모방과 창조 연곡사 세 승탑(僧塔) 이야기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2.02.18]

천년을 잇는 모방과 창조 연곡사 세 승탑(僧塔) 이야기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연곡사(?谷寺)에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불교관이 투영된 세 개의 승탑이 있다. 한 사찰에 건립된 이들 승탑은 구성과 문양은 닮았지만, 이를 표현하는 기법을 달리하며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연곡사 남쪽에 21세기 승탑을 세운다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게 해준다. 01.국보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谷寺 東 僧塔) 02.국보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谷寺 北 僧塔) 03.보물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 谷寺 逍遙大師塔)

무엇이 시대를 대표하는가?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할 즈음 어디선가 읽었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건축은 시대의 문화를,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 이다.’ 무형의 문화가 실제 삶을 구성하는 물리적 재료나 공간으로 구현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현재의 문화와 삶을 잘 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옛집은 어떻게 담고 있을까. 당시에 내게는 이것이 화두(話頭)였다.


그렇게 옛 건축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 전라남도 구례에 있는 연곡사(鷰谷寺)에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일주문(一柱門)을 비롯해 누각과 요사, 종각 등 다수의 건물이 건립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비스듬히 경사진 터에 대적광전만 서있고, 드문드문 승탑과 석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이 동(東)부도, 지금의 국보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이하 ‘연곡사 동승탑’)이었다.


처음 연곡사 동승탑을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래에서 위로 오를수록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세계관이 매우 세련되고 정교한 조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어떻게 돌을 이만큼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을까. 조각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부처가 사는 불국토(佛國土)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후 북(北)부도, 지금의 국보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이하 ‘연곡사 북승탑’)으로 갔다. 같은 승탑 아닌가? 둘은 무슨 관계일까? 자세히 보니 곳곳에 닮은 듯 다른 모양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서(西)부도, 지금의 보물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谷寺 逍遙大師塔, 이하 ‘연곡사 소요대사탑’) 앞에 다가섰다. 분명 같은 절에 있는 승탑인데, 앞선 두 승탑과 비슷해 보이지만 구현된 모양과 기법이 사뭇 달랐다. 걸어서 불과 몇 분인데, 시간으로는 800여 년이 흘렀다. 충격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같으면서 다르게 만들었을까. 불교라는 무형의 정신세계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표현되었을까.


04,05.동승탑 옥개석과 북승탑 옥개석. 북승탑은 동승탑과 달리 옥개석 아래 비천상을 새겼다.

세 시대를 잇는 다른 듯 서로 닮은 승탑

승탑(僧塔)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廟塔)으로, 부도(浮屠)라고도 부른다. 불교의 세계관과 승려의 삶이 축약되어 표현된 작은 우주인 셈이다. 삼국시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이와 관련한 건축과 문화가 함께 전파되기 시작했다. 승탑 또한 이때부터 건립되었고, 세 승탑 중 가장 먼저 건립된 연곡사 동승탑은 불교 문화가 매우 융성하였던 통일신라 후기인 870년 전후에 건립되었다.


동승탑은 승탑 건립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통일신라 말 부터 고려 초에 제작된 승탑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아름 답다고 평가받는다. 가장 아래에 놓인 하대석(下臺石)에는 구름과 용, 사자가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놓인 8각의 중 대석(中臺石)에는 네모난 틀 안에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다리를 구부린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새겨져 있다. 그 위 상대석(上臺石)에는 화려한 연꽃잎을 두 겹으로 새겼고, 윗면 탑신 받침에는 모서리마다 중간에 마디가 있는 기둥을 새겼으며, 각 면에 ‘가릉빈가(迦陵頻伽)’라는 극락에 사는 전설의 새를 새겼다.


8각의 탑신(塔身) 남북면에는 문과 문 틀을, 동서면에는 향로를, 그 사이 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사천왕상은 현재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사천왕상의 모습과 약간 다른데, 예를 들어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의 손에 있어야 하는 탑(塔)이 없다. 탑신 위쪽 옥개받 침부분에는 목조건축의 인방, 주두, 소로와 같은 형태가 새겨져 있으며, 옥개석(屋蓋石)에는 목조건축물의 지붕이 매우 정교하게 구현되었다. 서까래와 덧서까래는 물론이고, 지붕에 놓인 기와와 기왓골, 처마 부분의 막새기와까지 묘사되어 있으며, 추녀마루 끝에는 풍탁(風鐸)을 걸어 두었던 구멍이 두 개 남아 있다. 돌을 나무처럼 다듬은 석공에게 무한한 존경심이 샘솟는다.


이제 북승탑이다. 연곡사 북승탑은 고려시대인 979년 무렵 제작되었는데, 동승탑과 유사한 점이 많아 각각 스승과 제자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성은 대부분 동승탑과 유사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옥개석 아래에 비천상을 새긴 점과 하대석에 부처를 모신 대좌와 같이 이중의 연잎이 새겨진 점이 다르다. 탑신 모서리 기둥 위를 가로로 잇는 인방의 중앙에 놓인 대공의 모습도 동승탑과 다르다.


북승탑은 2001년 도굴되어 무너졌다가 복원되었는데, 지금의 봉황이 보륜(寶輪) 위에 있는 모습은 이때 복원된 것이다. 동 승탑에 비해 묘사된 조각의 깊이감이나 입체감이 크지 않아 다소 간결하고 소박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상대석 아래에 새겨진 연꽃잎은 동승탑을 좇아 화려한 문양을 보여 주고 있다. 정말 스승을 닮고 싶은 제자의 뜻이 반영된 것 일까.


06,07,08.(위에서부터)동승탑과 북승탑에 새겨진 사천왕상, 그리고 소요대사탑에 새겨진 신장상

마지막으로 소요대사탑이다. 앞선 두 승탑의 상륜부를 본 떠 화려한 봉황 조각을 새긴 장엄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통일신라와 고려 때처럼 불교가 융성하던 시기가 아닌 때 만들어져서인지 앞선 두 승탑에 구현되었던 조각은 간략화되어 있거나 때로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8각의 지대석에는 하대석을 받기 위해 윗면에 돋을새김만 했고, 하대석에는 상부에만 화려한 구름 문양을 새겼다. 중대석 역시 두 승탑의 것과 달리 약간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상대석에 새겨진 연꽃잎은 정교하다기보다 얇고 보드랍게 느껴진다. 탑신 전면에는 자물쇠가 새겨진 문과 문틀이 있고, 후면에는 장방형 액자가 새겨져 있는데, ‘소요대사지탑, 순치육년경인(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庚寅)’이라는 글자에서 승탑의 주인과 제작연대가 효종 원년(1650)임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여섯 면에는 신장상이 새겨졌는데, 겉으로 볼 때는 강건해 보이지만, 보다 친근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유교가 대세였던 조선시대라 불교와 그 상징에 대한 이해와 기술이 조금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든 친근함을 표현한 것일까.


09.승탑의 각부 명칭 ©김왕직, 『그림 으로 보는 한국건축 용어』, 도서출판 발언, 2000, 206쪽

삶을 담는 건축의 가치

세 승탑의 가치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불교관을 당대의 조각기법으로 보여준 것에 있다. 그렇다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천년 세월 속에서 구현된 불교와 승 려의 삶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각각의 승탑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여기 연곡사 남쪽에 21세기의 승탑을 세운다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는 재난과 피해를 줄일 방안을 연구 하고 있는 지금은 당장 연곡사 주변 산세의 산사태 발생 가능성과 산불 발생 가능성 시선이 먼저 간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 화두(話頭)는 변함이 없다. ‘건축은 시대의 문화를,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모방과 창조를 거듭하며 긴 시간을 지나온 연곡사 세 승탑에 담긴 불교 정신과 가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참고문헌
성춘경, 「조선시대 소요대사부도에 대한 고찰」, 『문화사학』 20권, 2003, 209~233쪽
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3』, ㈜창비, 1997
황호균, 「연곡사 석조문화재의 양식적 특징과 조성배경 연구」, 『문화종교학보』 제17권 제1호, 2020, 117~183쪽
김왕직, 『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 도서출판 발언, 2000



글, 사진. 조상순(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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