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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인천의 ‘찐 역사’, 강화 12돈대 이야기...역사가 풍경이 된, 호국돈대길 둘러보기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9.29]

 

인천의 ‘찐 역사’, 강화 12돈대 이야기

발간일 2020.09.28 (월) 17:16
        

   


역사가 풍경이 된, 호국돈대길 둘러보기


▲강화 최고의 풍광이 펼쳐지는 손돌목 돈대


강화도는 한강 하류와 임진강이 만나 바다로 접어드는 곳이라 삼국 시대부터 군사 요충지였다. 고려 때는 개성, 조선 시대에는 서울로 통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군사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19세기 구한말에는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교역을 구실로 침략행위를 할 때 꼭 거쳤던 섬이기도 하다.


강화도의 해안길에는 옛 선인들이 이 섬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섬 전체 해안 길 1.3Km마다 설치되어 있는 돈대다. 돈대(墩臺)는 경사면을 자르거나 흙을 다져 평평한 지대를 만들고 옹벽을 쌓은 곳을 말한다. ‘돈’자가 흙더미 돈자다.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주로 설치했다. 내부에는 포를 쏠 수 있는 군사 시설이 들어서있다.


청나라 군대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된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방비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효종·숙종·영조·고종 대까지 강화 섬을 빙 둘러 돈대 시설을 보강하거나 새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겨난 53개의 돈대와 대대 규모의 군사시설인 12개의 진(鎭)과 보(堡)는 강화도를 지키는 든든한 존재다.


 

▲바다를 조망하며 산책하기 좋은 갑곶돈대

 

▲절벽 암반위에 자리한 용두돈대




다양한 모습, 풍경 보여주는 돈대의 매력

강화의 자연과 문화유산이 담긴 강화나들길 가운데 2코스는 강화도 동쪽 해안의 돈대를 보러 가는 ‘호국돈대길’이다. 총거리 17km로 갑곶돈대-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광성돈대)-덕진진-초지진을 지난다. 강화나들길을 걸어도 좋고 돈대와 인접한 해안도로와 보행로에 차량이나 자전거를 타고 돈대 여행을 해도 된다.


돈대는 대부분 바닷가 언덕 위에 지어졌다 보니 후손들에게 전망 좋은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하루 중에도 썰물과 밀물의 물때에 따라 확연히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돈대는 땅의 모양새에 따라 네모형, 둥근형, 일자형, ㄷ자형 등 여러 가지로 만들었다. 규모가 큰 곳은 산성 같고, 언덕 위 성채 같은 돈대가 있는가하면 토성 모양의 아담한 돈대 등 다채롭다. 돈대에 들를 적마다 이 돈대는 어떤 모양일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궁금한 마음과 호기심이 든다.


나무숲에 둘러싸인 아늑하고 호젓한 오두돈대, 바다가 보이는 공연장 같은 화도돈대, 밤나무 한 그루가 초병처럼 고독하게 서있는 용당돈대, 강화도의 돈대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광성보,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한 용두돈대, 뱃사공 손돌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손돌목 돈대, 노거수 소나무가 지키고 서있는 초지진 등이 이어진다. 어느 외딴 돈대는 잡풀이 무성하게 피어나 산속 폐사지(버려진 옛 절터)에서 느껴지는 적막하고 쓸쓸한 폐허미가 있어 한동안 발걸음이 머물게 된다.



▲돈대에서 보이는 강화해협 혹은 염하



▲강화 돈대를 잘 알려주는 강화전쟁박물관

 

▲어재연 장군 수자기




아름다운 풍경 품은 돈대에 담긴 아픈 역사


호국돈대길은 내내 강화해협 혹은 염하(鹽河, 소금강)라고 불리는 바다를 보며 지난다. 강화도의 동쪽 바닷가는 수도인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서 다른 곳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과 진상품을 실은 세곡선도 염하를 지나 한양으로 들어갔다. 19세기 개항과 교역을 원하는 제국주의 국가들도 이 뱃길을 따라 돈대로 쳐들어왔다.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요호 사건(1875년) 등은 새로운 문명과의 격렬한 충돌의 현장이기도 했다.


현재 염하는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되어 곳곳에 철책이 세워져있고 조그만 고깃배 십여 척만 드나들 뿐이다. 여느 바다와 달린 파도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해안, 몇 척 안 되는 어선이 떠있는 손바닥만 한 포구에 횟집들이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북한과 인접한 변경의 풍경이 고스란했다.


들머리인 갑곶돈대에서는 강화전쟁박물관에 꼭 들러야 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숙연해지는 ‘어재연 장군 수자기’를 만날 수 있어서다. 수자기는 장수를 뜻하는 ‘帥’자가 새겨진 깃발로, 1871년 신미양요 때 침입한 미군과 싸우다 전멸한 광성보 전투에 걸렸던 깃발이다. 당시 미군은 이 깃발을 가져가 보관해 오다 2007년, 136년 만에 장기대여 형식으로 깃발을 반환했다.


갑곶돈대 안에는 천연기념물(제78호) 탱자나무도 살고 있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라고 한다. 억센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성벽 밑에 심어놓은 건, 철조망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해 적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광성보 안에 이어지는 나무숲길



▲거센 물살이 흐르는 곳에 세운 용두돈대사진


 

▲노거수 소나무가 지키고 서있는 초지진


웅장한 성벽을 자랑하는 광성보에는 울창한 숲길과 반듯하게 다듬은 오솔길이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 이하 전몰자들의 위령비와 묘가 있어 후손의 마음을 아릿하게 한다. 당시 강화 돈대에 설치된 포대의 포탄은 사정거리가 짧은데다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배에 구멍을 내는 쇠구슬 수준이었다. 조선군은 화승(불붙인 노끈)을 점화구에 갖다 대어 화약을 터트리면서 총알을 발사하는 구닥다리 화승총을 썼는데, 제국주의 군대가 보유한 사정거리 900m의 최신식 소총과는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다.


광성보 안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가장 멋진 돈대라고 추천한 손돌목 돈대와 용두돈대가 있다.

손돌목은 염하에서 물살이 가장 거칠게 지나가는 여울목으로, 사람만한 바위가 물살에 쓸려 다닐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돈대와 염하를 오가는 뱃사공 손돌과 피란 온 인조임금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강화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돈대이자 멋진 전망대다.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에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암반위에 설치된 돈대로, 강화도의 여러 돈대들 가운데 가장 풍경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덕진진에는 강화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 제일의 포대 남장포대와 덕진포대가 있다. 둔덕 사이의 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해 해상에서는 적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절묘하게 포대를 설치했다. 초지진은 돈대보다 두 그루의 노거수 소나무의 존재가 우뚝하다.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을 목격한 나무로, 당시의 격전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경이롭고 믿음직스럽다.

글· 사진  김종성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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