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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과 선비들의 심신수련처 ‘별서명승別墅名勝’
글쓴이 tntv 등록일 [2016.04.03]

백운정

백운정현판

섬처럼 남아 있는 개호송

백운정 쑤 전경(송림)

개호송 숲 내부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한국의 대표적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개호송,
강 건너편의 백운정 등이 낙동강의 제1지류인 반변천(半邊川)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자아내는 경승지이다.

“백운정(白雲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그의 아버지 청계 김진으로부터 땅을 받아
조선 선조 1년(1568년)에 세운 정자로 반변천 강 언덕 위에서 내앞마을과 개호송 숲이 한폭의 경관으로 조망되는
지점에 위치하여 전통적 유교문화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탁월한 조망점 역할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씨족 촌락 마을로 의성김씨 종택을 비롯하여 보물 2점과 고택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택리지>에 전통 씨족 촌락으로 소개되어 있고,
약300년 전에 제작된 이종악의 <허주산부군수화첩(虛舟山府君水畵帖/半邊川十二景)>에 ‘운정풍범(雲亭風帆)’이라는
제목으로 마을 풍광 그림이 남아 있는 등 500여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개호송(開湖松) 숲”은 통례공 만근(通禮公 萬謹)이 조선 성종 무렵에 내앞마을 앞 수구(水口)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38년(1605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운천 김용 선생의 발의로 다시 조성한 숲이다.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문중 규약을 만들어 이 숲을 보호해 왔다고 전한다.

이 숲은 내앞마을의 농경지를 보호하고 바람과 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구막이 숲이며,
완만한 모래사장에 달빛이 비추는 ‘완사명월형(浣沙明月形)’ 혹은 소가 누워 풀을 되새김하는 ‘와우형(蝸牛形)’으로 알려져 있는
내앞마을 풍수형국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하여 온 오랜 역사의 마을 숲이다.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강 건너편 백운정과 반변천 수중에 조성되어 있는 반월형 섬 위의 소나무 숲인 개호송 숲,
강가를 따라 조성된 내앞마을, 반변천과 강가의 기암과 단애,
천변 숲이 한 눈에 펼쳐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대표적인
씨족 촌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명승 제58호 담양 명옥헌 원림(潭陽 鳴玉軒 園林)

 


담양 명옥헌 전경

명옥헌 원림 연못 전경


 

명승 제58호「담양 명옥헌 원림(園林)」은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다. 이곳에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鳴玉軒)으로 했다고 전한다. 주위의 산수 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도록 한 원림이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143호  경북 예천 초간정(草澗亭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 가 세운 것으로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이다.

권문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과사전류인 『대동운부군옥』 20권을 지어 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겨 놓았다.

정자는 조선 선조 15년(1582)에 처음 지었고, 선조 25년(1592)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4년(1612)에 고쳐 지었지만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고종 7년(1870)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대청마루로 4면에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 초간정사의 현판이 정자 앞 늪에 파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졌는데, 신기하게도 늪에서 오색무지개가 영롱하여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파보았더니 현판이 나왔다고 한다.

초간정은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끝>


 

선비들의 심신수련처 ‘별서명승別墅名勝’
 
 
 





물아일체物我一體 속 자연과 벗하다

별서명승이란, 사대부들이 살았던 가옥에서 좀 떨어진(0.2km~2km 정도) 곳에 자기만의 심신수양과 휴식, 학문을 위해서 별도로 지어놓은 농막과 같은 장소를 말하는데, 특별히 경치가 아름다워 명승적 가치가 있을 경우 별서명승別墅名勝이라 칭한다. 별서명승으로서의 조건은 조영자에 대한 생활 기록이나 삶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고, 바라보이는 경치가 고유성, 희귀성, 심미성, 특수성 등을 보유해야 할 것이다. 경치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사람이 기거하고, 흔적이 있을 때 비로소 경치가 돋보이고, 경승의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다음은 조선후기 이재 선생(1680-1746)의 후손 이기용李奇用이 쓴 <학천정기鶴泉亭記>에 나타난 명승의 의미를 설명한 대목이다. 학천정의 건립 경위와 중수 과정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으며, 특히 산수의 아름다움이 인간에 의해 더욱 아름다워지고 오래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땅은 산수에 의해 아름다워지지만, 때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낙사洛社에서 수계修를 개최하여 낙사가 드러나게 되었고, 주자朱子가 무이구곡에서 뱃노래를 부르자 무이구곡이 드러났다. 만약 낙사와 무이구곡이 두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골짜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석담石潭은 율곡을 만나 드러났고, 화양동은 우암을 만나 드러났다.…… 우리 도암陶菴 선생에 이르러 이곳이 드러나게 되어 학습하고 노니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종제인 지암공知菴公을 시켜 조그만 집을 짓게 하여 둔산정사屯山精舍라 이름 붙이고 당호를 성심惺心이라 불렀다. ……우리의 도道가 융성하여졌고, 산수는 이것 때문에 드러나게 되었다.    



地以山水勝, 而有時乎顯晦. 故程夫子修於洛社而洛社顯. 紫陽子櫂歌武夷而武夷顯. 向使洛社武夷不遇兩夫子則只是古今一壑而已. 至於我東, 石潭遇栗翁顯, 華陽得尤翁顯.

……至我陶菴先生而顯, 於是爲藏修之遊息之. 使從弟知菴公 起數椽扁之 以屯山精舍, 堂曰惺心,…… 吾道之以隆 山水因之而顯矣.

 

별서명승의 지정현황 및 형성배경

지금까지 국가지정명승 중 별서명승은 11개소 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국가지정명승 68개소의 16.2%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이들 별서명승은 서울성북동의 성락원, 부암동의 백석동천, 전남 완도의 부용동원림, 담양의 소쇄원, 명옥헌, 식영정, 순천의 초연정, 경북 예천의 초간정, 선몽대일원, 구미의 채미정, 안동의 백운정 및 개호송숲 일원 등 서울지역 2개소, 전남지역 5개소, 경북지역 4개소 등이다. 조선전기에서 중기의 선비들은 훈구파와 사림파로 구분 되었고, 여기에서 희생된 김종직을 위시로 한 사림파들은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등의 4대 사화를 겪게 되었다. 이후 다시 사림파들은 영남사림파와 기호사림파로 나뉘어 학문적 경쟁은 물론 정치적 경쟁도 병행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고향이나, 별도의 한적한 전원지를 찾아 유일자적하는 풍토가 생겼으며, 여기에서 탄생된 것이 정자를 중심으로 한 심신수련의 공간이자 휴식처인 별서別墅요, 별서명승別墅名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별서명승의 형성배경은 양반 위주의 정치체제, 토지소유로 인한 튼튼한 경제구조, 당쟁과 학문적 대립에 따른 사대부들의 현실 도피적 은일관, 도교, 유교적 자연관이 주원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험준하고 다양한 형태의 지형으로 산수가 좋고 경승지가 많아 은둔, 은일하기가 용이했으며 기후적으로 온난하고 식생이 자라는데 유리한 점 등의 지리적 여건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를 논할 수 있는 장소로서 독특한 별서명승문화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별서명승의 입지적 특징은 산수가 수려한 경승지에 위치한다는 점과 인간의 정주생활이 이루어지는 가옥과 완전히 격리되지 않은 도보 권에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을과의 격리방법은 시각적 격리, 관념적 격리, 복합적 격리 등으로 분류된다.

별서명승의 공간구조는 담장 안의 내원, 담장 밖의 가시권에 속하는 외원, 정원공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향권원의 3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감상대상은 단순히 담장 안의 내부공간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고 외부의 경관까지를 포함하였다. 그 이유는 앞산의 봉우리, 앞에 전개되는 시냇물과 들판의 풍경, 서산에 지는 달 등이 시문이나 행장기록에 자주 표현되고 있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별서명승의 공간구조는 적어도 외원을 포함한 영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별서명승 지정 확대의 필요성

일본의 경우 357개소의 명승(특별명승 35개소 포함)중 198개소가 고古정원으로서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중 도쿄의 소석천정원小石川庭園, 육의원六義園, 강산후락원岡山後樂園, 교토의 무린암無庵, 청풍장淸風莊 정원 등 20%이상(77개소 추정)이 고관대작 또는 선비들의 심신수련처이자 휴식처로 지정된 일종의 별서명승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은 10㎢이상의 대단위 지역만을 국가명승으로 지정하기 때문에, 국가급 풍경명승구에 별서명승은 없고 사성급 명승에 관리들의 별서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소주 졸정원이 2007년 5월에 5성급 풍경명승으로 지정되었고, 상해예원, 사천성의 대읍류씨장원大邑劉氏庄園, 강소성의 소주사자림, 망사원, 류원, 양주의 개원介園, 하원何園 등이 4성급풍경명승으로 지정된바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연유산중 경치도 아름다우면서 선조들의 생활 흔적이 남아있는 별서공간들을 복합유산의 성격을 띄고 있는 별서명승으로 지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조선후기 존재했던 정자는 1,200개 정도 되며, 현재는 1,5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200개 정도는 조영자가 분명하고, 행장 및 기록이 있어서 정밀조사해 볼 가치가 있다. 또한 훼손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서 조영자가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큰 경우, 자연유산보존은 물론 국민적 활용측면에서 별서명승으로 계속 지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삶의 흔적이 물씬 풍기면서도 자연승경이 아름다운 문화유산 별서명승. 단순한 사적이나 시도기념물로서만 지정 관리 할 것이 아니라 명승으로 지정하고 보존 관리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서에 부응하고 문화유산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사진 | 이재근 문화재전문위원, 상명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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