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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낮으면서도 큰 산, 경주 남산
글쓴이 tntv 등록일 [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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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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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석공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마치 돌 속의 부처를 캐낸 듯한, 신비스럽고 장엄한 감동이 밀려오는 경주 남산. 신라 사람들의 신앙터이면서 불교미술 창작을 위한 진정한 예술터이기도 했던 남산 산행을 나서면 우리 문화유산을 하나씩 하나씩 산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설렘과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지난 14일 오전 7시 30분 경남 창원 마산역에서 경남산사랑회 회원들과 함께 출발해 서남산주차장(경북 경주시 배동)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께. 정해진 산행 코스에 위치한 문화재들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나는 서둘러 삼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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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배동 삼릉(사적 제2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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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64년에 머리가 없는 상태로 땅속에서 발견되었던 석조여래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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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가지 않아 동서로 나란히 있는 3개의 왕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냉골'이라 불리는 삼릉계곡 어귀에 위치한 배동 삼릉(사적 제219호)은 박씨 왕들인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더욱이 신라 초기 아달라왕의 무덤이 무려 700여 년이란 시간적 간격이 있는 두 개의 왕릉과 한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삼릉 주변에는 소나무들이 많아 상큼한 솔 향기가 내 콧구멍을 기분 좋게 찔렀다. 삼릉계곡은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고 남산에서 유적도 가장 많다. 삼릉서 6분 남짓 올라가면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좌상이 나온다. 지난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땅속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조선 시대의 억불숭유 정책 탓이었을까. 머리 없는 불상을 보니 불자가 아닌데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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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가운데 으뜸가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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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한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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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자연 암벽에 각각 한 쌍의 마애삼존불을 선각으로 새겨 놓은 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에도 들렀다. 정교한 조각 수법으로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힌다고 한다. 남산에는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남아 있는데, 특히 '마애불의 보고(寶庫)'라 할 만큼 마애불이 많다. 지인들과 6년 전 여기에 우르르 와서 사진을 찍었던 옛일을 잠시 추억하고서 잰걸음으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을 보러 갔다.

예전에 정확한 고증 작업을 거치지 않고 콘크리트로 엉성하게 보수 처리되었던 얼굴 부분을 지난 2007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다시 보수 정비하여 뺨, 코, 입 등을 복원했다. 지나치게 길었던 얼굴은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원만함이 감돌게 둥근 형태로 다듬어졌다. 잃었던 얼굴을 다시 찾은 셈이다. 불상 뒤편으로 넘어져 크게 파손되었던 광배도 10여 개의 조각을 접합하여 원형을 살렸고, 없어져 버린 광배 위쪽 부분은 새로 만들어 당대의 광배 윤곽에 가깝게 보수되었다.

대현 스님 따라 고개 돌리던 불상 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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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자연석 기단 위에 3층탑 같은 특이한 원형 대좌가 인상적이다. 대현 스님 따라 고개를 돌렸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불상 머리 부분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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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20분께 금오산(468m)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는 산객들로 복작거렸다.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으로 금오산과 고위산 사이에 있는 용장골 쪽으로 나는 계속 걸어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던 용장사터가 있는 곳이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이 나타났다.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진 석탑으로 용장사의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있다.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아래층 기단 같은 느낌이 들어 경이로웠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져 탑의 높이는 4.42m이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다. 주변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여 그 자태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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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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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468m)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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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을 보러 내려가는 길은 꽤 가팔라 조심스러웠다. 자연석 기단 위에 3층탑 같은 특이한 원형 대좌를 만들었다. 대좌에 비해 불상은 작은 편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유가종의 대덕인 대현 스님이 염불을 하면서 이 불상 주위를 돌면 부처님도 대현 스님 따라 고개를 돌렸다고 전해지는데 불상의 머리 부분이 없어져 버려 안타까웠다. 남아 있는 석축으로 미루어 규모가 큰 절집으로 짐작되는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던 이 불상의 머리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영재로 가기 위해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갔다. 15분 남짓 올라가서 삼화령 쪽으로 걸어가는데 점심 도시락밥을 먹고 있던 일행 몇몇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칠불암 내려가는 길에 있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인데 점심을 먹다가는 아무래도 주어진 산행 시간 내에 하산이 안 될 것 같아 그냥 걸었다.

첫사랑의 두근거림으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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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돌 속의 부처를 캐낸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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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백운재와 고위산이 보였다. 평탄한 길을 10여 분 정도 걷자 이영재 이정표가 나왔다. 거기서 칠불암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배도 고프고 몸도 지쳤다. 사실 용장사곡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을 보러 내려갔다 오면서 이미 지쳐 있었다. 배낭에 넣어 두었던 빵을 끄집어내어 먹어 가면서 걸었다. 남들이 언뜻 보면 참 처량한 몰골이다. 그렇게 40분쯤 걸어갔을까. 드디어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마치 첫사랑을 만난 두근거림처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상으로 높이가 1.4m이다. 오른손에 꽃가지를 들고 왼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린 채 구름 위에 앉아 있다. 중생 제도를 위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이다. 마음 흐트러짐이 없이 깊은 영성을 지닌 신라 석공에 의해 탄생했을 것 같은 보살상을 뒤로하고 칠불암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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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1.4m 되는 보살상으로 오른손에 꽃가지를 들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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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은 일곱 부처다. 돌 4면에 각각 불상을 새긴 사방불(四方佛), 그리고 1.74m 간격을 두고 뒤쪽 병풍바위에 새겨 놓은 삼존불로 이루어져 있다.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은 부처님의 자비를 한껏 드러내며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에는 크기가 같은 협시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사방불도 연꽃이 화사하게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정말이지, 신라 석공들이 돌 속의 부처를 캐낸 듯한 불심을 보았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다시 올라가서 고위산 정상을 향했다. 백운재를 지나서 고위산(494m)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께였다. 3시까지 하산이라 늦지 않으려고 열심히 걸었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신라를 말할 수 없음을 한 번 더 실감한 하루다. 남산은 낮은 산이면서도 참으로 큰 산이다.

출처: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7325&CMPT_CD=P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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