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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고려청자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용인서리 가마터를 찾아서
글쓴이 tntv 등록일 [2013.04.22]



“저기, M자형 구릉 보이지요. 저게 용인 서리 가마터입니다. 고려자기의 편년(고고학적 자료의 시간 배열)을 둘러싼 논란을 교통정리 해준 교통순경 같은 곳이지요.” 지난 2월 23일,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도자사 전공자들을 위한 동계학술답사에 동행했다. 경기도 일대 박물관 및 가마터 답사다. 아침 8시 30분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출발해 광주의 신대리·상림리 조선 시대 가마터 및 경기도자박물관, 해강도자박물관의 서리 고려시대 가마터 및 경기도립박물관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답사 하이라이트인 용인 서리 가마터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 무렵이었다. 답사팀을 이끄는 윤용이 명예교수는 특유의 활력 넘치는 걸음으로 앞서 걷더니 마을 초입의 언덕을 가리켰다. ‘저 곳이 그 유명한 용인 서리구나!’ 미술사에서 고려청자의 기원과 관련해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용인 서리 가마터는 지형이 독특하긴 했지만 뒷동산처럼 평범했다. 하지만, 고려청자 탄생의 비밀을 풀어준 곳이라 생각하니 새삼 달리 보였다.
용인시 이동면 서리 중덕 부락 산 23번지에 위치한 용인 서리 요지窯址 답사팀이 느꼈을 반가움을 전하기 위해선 이곳의 학문적 중요성에 대해 조금 알 필요가 있다. 고려청자는 12세기 비색청자, 12~13세기 상감청자 시대를 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언제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기록이 없어서다. 처음엔 통일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 중반 중국기술을 받아들여 제작됐다는 게 통설이었다. 초기에 제작된 청자 완(차 사발)의 해무리 모양 굽이 당나라 후기에 만들어진 굽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 해무리 굽 완이 집중 출토된 전남 강진의 청자 요지가 9세기 중국과 해상무역을 했던 장보고의 활동 근거지 완도와 멀지 않은 점도 신빙성을 높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후반 경기도 일대 여러 가마터에서 이뤄진 발굴에서 기존 학설을 뒤집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1987~1988년 용인 서리 가마터 발굴 결과다. 진흙가마 아래 지층에 중국식의 벽돌가마가 존재한 것이다. 지금까지 청자의 시작으로 알고 있었던 강진의 진흙가마 형태보다 더 오래 전에 벽돌가마 형태가 쓰였다는 걸 땅속은 말해준 셈이다. 더욱이 벽돌가마 조각이 발견된 맨 아래 지층에서는 해무리 굽 완이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발굴한 황해남도 봉천군 원산리의 가마터도 벽돌가마로 조사됐는데, 이곳에서 제작 연도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순화淳化4년(992)’ ‘순화 4년(993)’이라고 새겨진 청자가 각각 출토됐다. 경기도 시흥 방산동에서는 974년으로 추정되는 ‘갑술甲戌’이라고 새겨진 청자 뚜껑 조각이 나왔다. 파편처럼 나온 단서를 퍼즐 맞추듯 꿰맞추니 고려청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9세기가 아닌 10세기 후반에나 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의 중앙집권제가 정착됐던 광종 무렵이다. 낙엽이 수북이 깔린 서리 가마터에는 도자기 파편들이 지천으로 널려 1000년 전의 번영을 짐작하게 했다. 한 답사 참가자가 도자기 파편 하나를 들고 와서 윤 교수에게 물었다. “이건 청자 파편인가요? 청자 치고는 색이 좀….” “예, 맞습니다. 백자입니다. 이곳은 초기에만 청자를 제작했고 이후 고려 시대 내내 백자를 생산했던 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안내판의 설명이 ‘용인서리백자가마터’였다.

사실, 경주 석굴암 같은 유명한 문화유적지가 아닌 이런 도자기 가마터는 학술답사가 아닌 이상 개인적으로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용인 서리 가마터는 그나마 사적으로 지정돼 안내판이 있지만, 대개의 가마터는 산비탈이거나 밭으로 변해 식별이 쉽지 않다.
앞서 둘러보고 온 17세기 조선 시대 가마터인 신대리 요지와 상림리 요지가 그렇다. 광주 실촌면 신대리에 위치한 신대리 백자 가마터는 표식 하나 없어 얼핏 잡풀 무성한 동네 뒷산으로 보였다. 도척면 상림리 요지는 마을 입구 다리에 표시된 ‘사기소교’란 명칭이 과거를 전할 뿐 가마터는 밭으로 변해 있었다. 이 두 곳은 조선 시대 관청에 납품하던 대표적인 관요이며 철화백자의 주생산지였다. 답사 참가자들은 용케도 가마터에서 그 때의 영광을 알리는 철화무늬 파편, 간지가 새겨진 파편, 17세기 굽의 특징을 지닌 접시 조각 등을 찾아냈다. 관요官窯임을 입증하는 갑발 조각도 나뒹굴었다. 갑발은 그릇을 가마에 쌓을 때 그릇 위에 씌워서 그릇에 재가 앉는 것을 방지하는 합이다. 왕실에 올리는 그릇을 구울 때나 썼다. 책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 이것이 답사의 목적이자 답사가 주는 기쁨이다.

답사에는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와 문화예술대학원 예술품감정학과 석·박사 과정 학생이나 졸업생 40명 가까이 참여했다. 젊은 학생이 많지만 의사, 대기업 간부, 경매회사 임원, 주부 등 뒤늦게 우리 미술의 매력에 푹 빠져, 혹은 필요에 의해 공부하는 만학도가 적지 않다. 문화재 담당 기자로 일하는 필자 역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이곳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한 바 있다. 이날 답사는 아마추어적인 관심을 넘어 우리 미술 애호에 전문성과 깊이를 더하려는 열정의 현장이기도 했다.

글. 사진. 손영옥 (국민일보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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