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와 만나는 골목길투어

: 대구를 찾아온 파란 눈의 천사들 :


대구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 한켠에는 '은혜정원'이라는 묘지가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다. 표지석에는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고 새겨져있다. 이들의 헌신으로 대한민국 근대 교육과 의료시설의 기초가 놓여졌다.
대구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던 1906년부터 1910년경에 건축된 선교사 주택들은 서양식 건축양식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지붕에 기와를 올렸다(일부는 함석으로 개조). 뿐만 아니라 스윗즈 주택과 챔니스 주택은 대구읍성이 헐릴 때 나온 읍성 돌을 기초로 지어졌다.

선교박물관(스윗즈 주택)에는 선교활동 사진과 각종 성경책, 3500년 된 모세시대의 등잔이 전시되어 있고 의료박물관(챔니스 주택)에는 1800~1900년대의 의료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블레어 주택에는 다양한 민족 사료와 교육서적, 교과서들을 볼 수 있으며 대구 3·1운동의 발자취와 일제의 만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계성고등학교 역시 선교사들이 남겨준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아름다운 중세시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이곳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학교다. 아담스관 ,맥퍼슨관, 핸드슨관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학교가 지어질 당시에 지역 어르신들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건물을 구경하며 '저 집은 도대체 언제 상량이 올라 가노?'했단다. 건물이 다 지어진 후에는 이 건물을 보기위해서 시골에서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왔을 정도라고. 이 신기한 학교는 1919년 3월 8일 대구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이 학교 지하에서 등사한 독립선언서는 계성학교 학생들의 손을 빌어 비밀리에 운반되었다.

: 청라언덕 :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학창시절 아련한 짝사랑의 추억을 노래로 만든 '동무생각'은 청라언덕을 배경으로 한다.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성학교시절, 이웃의 같은 개신교 계통의 학교인 신명학교 여학생을 짝사랑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마주치는 모습만 바라보다가 그 여학생은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후에 숭실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마산 창신학교 교사로 재임하며 시조시인 이은상 선생과 친분을 가지게 되는데 박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작시하여 탄생한 곡이 바로 동무생각이다.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서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선교사주택이 있는 언덕을 뜻한다.
: 대구근대역사관 :

대구광역시는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1년 1월 대구근대역사관을 개관했다. 이곳은 1932년 일제가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설립한 건물로 일제의 금융 지배와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던 것을 근대건축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근대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새롭게 꾸미게 되었다.
조선시대 대구의 경제, 행정, 사법의 중심지였던 경상감영 옆에 세워져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건축물의 변천과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코스다. 아울러 조금 떨어진 달성공원의 향토역사관과 달성토성까지 탐방한다면 선사시대부터 이어지는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독립운동길 :

고종황제의 서거로 불붙은 3·1운동은 대구에서도 맹렬히 타올랐다. 대구의 독립만세운동은 서울보다 1주일 늦은 3월 8일에 시작되었다. 독립선언서 배포를 맡았던 대구 출신 이갑성은 2월 24일 대구에 도착한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대표들을 추대하는 중책을 맡고 이만집 목사와 백남채를 대표로 추대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스스로 대표로 서명하게 되었다.

이만집 목사가 민족대표가 되어 달라는 청은 거절했지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제작 등 거사에 필요한 준비를 돕는 한편 교사인 백남채, 최상원, 이재연 및 기독교인 의사 정광순과 정재순 등을 접촉하며 동지들을 규합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8일로 결정했다. 그날은 대구의 큰 장날이자 토요일이었다. 이만집은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교사들에게 학생동원을 부탁하는 한편 교회신자들에게도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대구에 독립선언문이 도착한 것은 4일이었다. 일본순사의 눈을 피해 계성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8일 오후 3시경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학생 200여명과 대구고보 학생 200여명을 포함한 만세군중들이 모여들었다.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800여명의 만세행렬이 이어졌다. 일제의 총칼 앞에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대구는 3월 내내 만세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골목투어 참가자들은 대구독립운동의 역사 속을 걸으며 두 명의 핵심적인 항일인사를 만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한 서상돈(徐相敦, 1851~1913) 선생과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 선생이 그들이다. 서상돈은 스스로 재산을 내놓으며 일본이 국내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해 도입한 차관을 갚기 위한 주권수호운동에 앞장섰고, 이상화는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민중의 가슴에 뜨거운 민족혼을 불러일으켰다.

: '옛 골목은 살아있다' :

토요일에 진행되는 골목투어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마련되어있다. 서상돈·이상화 고택 앞에서 근대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 옛 골목의 생생한 이야기를 거리연극으로 공연한다. 이 연극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1905년 을사늑약 체결''1907년 서상돈과 국채보상운동''1919년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1927년 민족시인 이상화와 저항운동'등을 재현하며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 약령시·진골목 :

서상돈·이상화 고택에서 골목을 빠져나가면 바로 약령시로 이어진다. 3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대구 약령시에서는 전통 한의약 축제인 '대구 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매년 5월에 개최된다. 약전골목에서 더 좁은 길로 들어가면 진골목으로 연결되는데 이곳은 김원일 작가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소설은 전란이후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진'골목은 경상도 사투리로 '긴'골목이라는 뜻으로 서울의 피맛골 같은 우회로의 기능을 감당했다. 특히 진골목은 여성국채보상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서상돈 선생이 금연으로 나라 빚을 갚자고 주창하자 진골목에 거주하던 부인들이 가지고 있던 반지와 비녀를 모아 동참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 Information :

: Interview :
글쓴이 : 이영숙 (대구 중구청 골목해설사, 「골목투어 가이드 양성 프로그램 교재」공저)

Q 골목투어의 탄생배경은?
A 2002년 경북대 학생들의 리포트가 시초가 되었다. '우리 고장 알리기'를 주제로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골목은 살아있다'라는 소책자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 졸업생들이 주축이되어 '거리 문화 시민연대'를 만들면서 대구의 골목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2008년 거리 문화 시민연대가 해체되고 중구청에서 바통을 이어 받아 본격적인 '골목투어'가 시작되었다.
Q 골목투어 코스의 중요 포인트는?
A 대구는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근대문화를 찾아가는 여행에 초점을 맞추었다. 골목투어는 다양한 코스로 발전되었는데 경상감영과 달성공원을 잇는 역사문화코스와 동산의료원의 선교사주택과 제일교회, 계성학교 등의 기독교 선교코스, 성유스티노신학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계산성당을 포함하는 가톨릭타운코스 그 외 야경투어, 맛투어 등이 있다.
Q 참가상황은 어떤지?
A 정확하진 않지만 2008년에 최소 300명이 참가했고, 2009년 3000여명, 2010년 6700여명, 2011년 상반기에만 10000명이 넘었다. 또한 여행사를 통해서도 매주 200명 이상 참여하고 있으며, 중구청이 교육청 및 지역 언론사와 MOU를 맺고 '학생창의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참가자는 건축학과 대학원생 한명이 교수님의 추천으로 골목투어를 하고나서 '대구가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만 있는 도시'로 여겼는데 '한 발짝 다가가자 다양한 근대건축물들을 볼 수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Q 골목이란?
A 골목은 늘 변화하는 살아있는 곳이다. 오늘 만나는 골목은 과거도 말하고 있고, 미래도 보여주는 곳이다. 5년 가까운 골목투어 기간 동안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야기가 뿌려진 곳에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골목이 살아야한다. 골목투어를 통해 지역이 밝아지고 경제적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