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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28호 경주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慶州 栢栗寺 金銅 藥師如來立像)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8.28]
▲국보 제28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두 팔은 없는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인체비례와 비슷하고 매우 당당해 보인다. 나발을 잘 표현하였으며 육계가 발달하였고, 온화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며 두 발과 발톱까지 자세하다. 통견으로 양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발등까지 길게 늘어졌는데 좌우 주름이 서로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모습이다.
▲국보 제28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두 팔은 없는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인체비례와 비슷하고 매우 당당해 보인다. 나발을 잘 표현하였으며 육계가 발달하였고, 온화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며 두 발과 발톱까지 자세하다. 통견으로 양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발등까지 길게 늘어졌는데 좌우 주름이 서로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모습이다.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의 백률사에 있던 것을 1930년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것이며, 전체 높이 1.77m의 서 있는 불상으로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며, 둥근 얼굴·긴 눈썹·가는 눈·오뚝한 코·작은 입 등에서는 우아한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8세기 중엽의 이상적인 부처의 얼굴에 비해 긴장과 탄력이 줄어든 모습이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 어깨는 약간 빈약하게 처리된 느낌이지만 어깨의 굴곡은 신체에 밀착된 옷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양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 팔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으며 앞가슴에는 치마의 매듭이 보인다.

앞면에는 U자형의 주름을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고 있는데 조금은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후해지며 옷자락들도 무거워 보이는데, 이것은 상체를 뒤로 젖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단전과 더불어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손목의 위치와 방향으로 보아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에는 약그릇이나 구슬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지만 신체의 적절한 비례와 조형기법이 우수하여 경주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의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문화재청)


통일신라 시대의 3대 금동불상

앞서 소개해드린 국보 제26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27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지금 답사기를 펼쳐놓을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이다. 3대 금동불상이 각각 비로자나불, 아미타여래불, 약사여래불로 다채롭다. 게다가 앞에 두 분 부처님은 좌상(座像)인데 이번 약사여래부처님은 드물게 입상(立像)이다.


백률사(栢栗寺)

경주하면 남산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경주 시내 북쪽에는 소금강산이 있다. 소금강산,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다. 높이 280m로 그다지 높지 않은 야산 수준이지만 초입에 굴불사 터 사면 석불(보물 제121호)이 있고 그 위쪽에 백률사가 있다. 소금강산은 신라인들에게는 불교 성지(聖地) 가운데 하나였을 만큼 성스러운 곳이었는데 이차돈의 순교 때문이다.

▲경주 소금강산에 위치한 백률사, 작지만 답사꾼들에게 떡을 나누어줄 만큼 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경주 소금강산에 위치한 백률사, 작지만 답사꾼들에게 떡을 나누어줄 만큼 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백률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암벽에 새긴 삼존 마애불좌상이 있다. 많이 훼손된 상태로 경북유형문화재 제194호이다.
▲백률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암벽에 새긴 삼존 마애불좌상이 있다. 많이 훼손된 상태로 경북유형문화재 제194호이다.

백률사(栢栗寺)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로 보이는데, 이는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공인하여 국교로 삼게 되는 이차돈의 순교 시 이적(異跡)이 일어난 곳으로 이차돈의 목을 베자 그 머리가 날아와 떨어진 곳이며 그 자리에 세운 절이다. 현재는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정도가 전부인 작은 절이며 지금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후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그 대웅전에 모셨던 부처님이 바로 '금동 약사여래입상'으로 1930년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일반에 전시 중이다.


이차돈(異次頓)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순교(殉敎)로서 이바지한 이차돈, 우리는 이차돈을 잘 아는 것 같지만 뜻밖에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다. 즉, 이차돈을 성은 이(李) 씨요 이름은 차돈으로 알거나 차돈이라는 벼슬(?)을 가진 사람으로 알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틀린 말이다. 이는 한자 교육, 역사 교육의 부재(不在)에 따른 폐단으로 보이며, 그의 성(姓)은 박(朴)이요, 이름은 염촉(厭燭)이다.

염촉은 이차(異次), 이처(異處)라고도 쓰는데 모두 염(厭 : '싫다'는 뜻 말)의 의미이며, 촉(燭), 돈(頓), 도(道), 도(覩), 독(獨) 등은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붙인 글자로 혼자 가지는 뜻은 없다. 즉 이차돈의 이차는 염촉의 염이며 돈과 촉은 의미가 없는 글자이다. (양주동 박사 해석) 그의 벼슬은 내사사인(內史舍人)으로 차돈이 벼슬이 아님도 분명하다.


이차돈(異次頓) 순교비(殉敎碑)

고구려와 백제는 370년대에 이미 불교를 승인하였지만, 신라는 한참이나 늦은 법흥왕 15년(528)에야 불교를 승인하게 되는데 이는 그만큼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가 심했다는 뜻이며 이차돈이 나서서 왕으로 하여금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귀족들을 설득, 제압하기 위하여는 불교 도입을 주장하는 자신의 목을 치라고 한다.

망설이다가 마침내 법흥왕이 짐짓 이차돈을 나무라면서 불교 도입 주장의 죄를 물어 목을 치라 하자 이차돈은 '부처가 만일 신통력이 있다면 죽은 뒤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목을 내밀었으니 그의 목을 자르는 순간 잘린 목에서는 흰 젖이 수십 장(丈)이나 솟아났으며, 잘린 머리는 하늘을 날아 소금강산에 떨어졌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재 이차돈 순교비, 육각형인데 한 면에는 목을 치니 하얀 젖이 치솟고 머리가 날아가는 순교 장면을 묘사하였고, 나머지 다섯 면에는 단정하게 칸을 그린 후 글자들을 새겼는데 아쉽게도 마멸이 심하여 해독이 쉽지 않다. 백률사에서 출토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재 이차돈 순교비, 육각형인데 한 면에는 목을 치니 하얀 젖이 치솟고 머리가 날아가는 순교 장면을 묘사하였고, 나머지 다섯 면에는 단정하게 칸을 그린 후 글자들을 새겼는데 아쉽게도 마멸이 심하여 해독이 쉽지 않다. 백률사에서 출토되었다.

이렇게 하여 22세(또는 26세) 나이의 이차돈이 순교함으로써 신라는 비로소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며, 그의 목이 날아가 떨어진 경주 북쪽의 소금강산에 이차돈을 기리는 자추사(刺楸寺)를 지어 그의 명복을 빌었다고 하며, 헌덕왕 10년(817)에는 그의 순교 장면과 함께 사적을 새긴 6각 석당(六角石幢)을 만들어 세우니 이차돈 순교비로 역시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 제28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栢栗寺 金銅 藥師如來立像)

이 불상은 약사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두 손이 없다. 두 손이 없다 보니 약사불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약합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모두 약사불로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빌었다. 신라 때부터 많은 사람이 찾아 기원한 불상이었다. 높이 179cm의 약사불, 거의 등신불(等身佛) 크기로 통일신라 시대 최대의 금동불상으로 원래는 금도금한듯하나 도금이 바랜 후 그 위에 채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보 제28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두 팔은 없는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인체비례와 비슷하고 매우 당당해 보인다. 나발을 잘 표현하였으며 육계가 발달하였고, 온화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며 두 발과 발톱까지 자세하다. 통견으로 양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발등까지 길게 늘어졌는데 좌우 주름이 서로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모습이다.
▲국보 제28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두 팔은 없는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인체비례와 비슷하고 매우 당당해 보인다. 나발을 잘 표현하였으며 육계가 발달하였고, 온화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며 두 발과 발톱까지 자세하다. 통견으로 양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발등까지 길게 늘어졌는데 좌우 주름이 서로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 때 문화재사진첩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보면 두 손이 있고 왼손에 약합이 보인다.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문화재사진첩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보면 두 손이 있고 왼손에 약합이 보인다.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신라 시대의 3대 금동불상이 국보 제26호, 27호, 28호이다. 두 부처님은 좌상으로 만들어져 불국사 비로전과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데 28호 약사불은 입상으로 만들어져 백률사에 모셨다가 지금은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 전시 중이다. 3대 금동불상 중 가장 하이라이트로 보인다.

등신불 크기로 입상으로 된 금동불상은 귀하다. 국보 제28호 금동 약사여래입상은 그만큼 소중한 국보이며 이나마 온전히 모셔진 것에 감사드린다. 양팔이 끼워진 사진은 있지만, 다시 만들어 끼우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원문보기
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24/20150624014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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