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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3.14]
▲인도 산치대탑.  
▲인도 산치대탑.

공식명칭 : 안동 법흥사지 칠 층 전탑 (한자 명칭 : 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지정일 : 1962.12.20
테마 : 유적건조물 / 종교 신앙/ 불교/ 탑
시대 : 통일신라
주소 : 경북 안동시 법흥동 8-1번지

문화재청 설명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 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 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탑신은 진한 회색의 무늬 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 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 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전탑(塼塔)

전탑(塼塔)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탑은 크게 그 재질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으로 나뉘며 우리나라에서는 ‘탑’이라고 하면 대개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처럼 돌을 다듬어 쌓은 석탑(石塔)을 떠올리지만, 세계 모든 탑이 재료나 모양에서 똑같지는 않다.

탑은 원래 인도 고유의 무덤 형식에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축조물에서 비롯되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돌아가자(열반:涅槃) 유해를 화장(다비:茶毘)하여 여덟 나라에 나누어주고 탑을 세우게 하였으니 그것을 근본 팔탑(根本 八塔)이라고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인도 산치에 있는 거대한 탑으로 기원전 1세기경에 축조된 것이다. 반구를 엎은 모양인 무덤 자체에는 맨 위에 우산 같은 덮개처럼 산개(傘蓋)를 얹었을 뿐 다른 장식이 없으나, 둘레에 돌난간을 두르고 동서남북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조각한 문을 세운 구조이며 주로 돌과 흙을 사용하였다.

▲인도 산치대탑.
▲인도 산치대탑.

그 후 불교가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이러한 인도 탑의 형태를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고유한 건축물에 부처의 사리를 모시게 되었으니, 중국에서는 초기에는 다층 누각 형태의 탑이었다가 뒤에 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塼塔)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을 통해 불교가 전해진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다층누각을 지었지만, 벽돌보다는 목탑으로 지었으며, 이후 각종 전란을 겪거나 화재로 인하여 불에 타버리곤 하였으니 이러한 취약점 때문에 나무 재료가 돌(石)로 바뀌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라마다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하여 탑을 세웠는데 중국에서는 풍부한 모래를 이용한 벽돌집이 이미 발달했던 터라 벽돌탑(전탑)을 많이 쌓았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본따기는 하였으나 벽돌 생산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듯, 그 대신 풍부한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잘라 탑을 쌓기도 하였으니 이를 벽돌을 모방하여 쌓은 탑이라고 모전탑(模塼塔)이라 한다. 경주의 분황사 탑이 그것이다.

즉, 벽돌로 쌓은 탑을 전탑(塼塔)이라고 하며, 벽돌처럼 돌을 잘라서 쌓은 탑을 모전탑(模塼塔)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살펴볼 국보 제17호는 벽돌로 쌓은 전탑(塼塔)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전탑이다. 전탑은 경북 북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신세동 전탑

이 탑은 한동안 신세동 칠 층 전탑이라고 불렀다. 국보를 지정할 때 동네이름을 잘못 붙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탑의 이름은 대개 그 탑이 있거나 옮기기 전에 있던 자리, 층수, 재질에 따라 붙였으며 그래서 안동 신세동 칠 층 전탑이라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또 그것이 더 친숙한 이름처럼 들린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 명칭부여의 원칙을 정하고 일관성을 지키기로 하면서 정식명칭은 '안동 법흥사지 칠 층 전탑'이라 하였다. 지금 흔적은 없지만, 그 자리에 법흥사가 있었다고 하며, 지명도 법흥동이다.


탑의 위치

이 탑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바로 옆을 지나도 알 수 없다.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으로 올라가는 도로변에 중앙선이 나란히 붙어서 지나는데 그 철로 변 너머에 있으니 사전지식이 없으면 까마득하게 모른 체 지날 수밖에 없다. 기차를 타고 지나간다 해도 높다란 플라스틱 방음벽이 솟아있어 블라인드를 쳐놓은 셈이다.

그 너머 철도와 고성이씨 종택 사이 주먹만 한 공터에 우리의 국보 제16호는 옹색하게 서 있다. 매일 수 없이 지나가는 철도의 진동에 흔들리면서 그래도 어찌어찌 알고 도로 옆 기찻길 아래 토끼굴을 지나 고물고물 찾아와주는 탐방객이나 지나가던 길손들을 반기며 거기에 서 있다. 국보에 참 많이 미안하다. 철도 밖 어디쯤 시야가 탁 트인 곳에 모셔내었으면 좋겠다. 죄송합니다.

▲옛 이름 '신세동 칠 층 전탑'으로 표기되어있다. 안동댐 옆 도로와 중앙선철도 안쪽에 있어 토끼굴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옛 이름 '신세동 칠 층 전탑'으로 표기되어있다. 안동댐 옆 도로와 중앙선철도 안쪽에 있어 토끼굴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일설에는 고성이씨 종택이 아흔아홉 칸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들의 독립운동에 분노한 일제가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일부러 절반쯤을 철거해야 하는 위치로 건설하였다는 것이며, 그때 행랑채와 부속 채가 철거되어 지금은 50여 칸만 남았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임청각(臨淸閣)은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니 자동차도로와 철도 안쪽에 국보 1점과 보물 1점이 갇혀있는 것이니 참 안타깝다.

문화재 답사를 계속 할수록 일제의 만행에 분노할 때가 많은데 이번이 또 그런 경우이며, 광복 7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옹색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관계기관들의 무감각에 두 번 화가 난다. 고택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보 전탑은 옮기기를 희망해 본다.

▲법흥사지 칠 층 전탑 전경. 오른쪽 높은 방벽이 중앙선 방음벽이며 왼쪽 고성이씨 소종택과의 좁은 공간에 옹색하게 서 있다.
▲법흥사지 칠 층 전탑 전경. 오른쪽 높은 방벽이 중앙선 방음벽이며 왼쪽 고성이씨 소종택과의 좁은 공간에 옹색하게 서 있다.
▲탑의 2층과 3층 지붕 부분에 기와를 얹었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탑의 2층과 3층 지붕 부분에 기와를 얹었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2층부터 6층까지 확대한 모습. 벽돌을 층층이 어긋나게 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벽돌은 하나가 길이 28cm, 폭 14cm, 두께 6cm쯤이라고 한다.
▲2층부터 6층까지 확대한 모습. 벽돌을 층층이 어긋나게 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벽돌은 하나가 길이 28cm, 폭 14cm, 두께 6cm쯤이라고 한다.
▲1층에는 남면 중앙에 감실 문이 있었던 듯하며 지금은 목판으로 막아놓았다. 일제 강점기 때 탑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는데 그때 기단부를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아마 깔끔하게(?) 마감한다고 한듯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1층에는 남면 중앙에 감실 문이 있었던 듯하며 지금은 목판으로 막아놓았다. 일제 강점기 때 탑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는데 그때 기단부를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아마 깔끔하게(?) 마감한다고 한듯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경사면 아래의 단층 평면기단 외벽 중 북면과 서면에는 팔부신중과 사천왕상을 새긴 판석들이 세워져 있다.
▲경사면 아래의 단층 평면기단 외벽 중 북면과 서면에는 팔부신중과 사천왕상을 새긴 판석들이 세워져 있다.

지금껏 국보를 돌아보던 중 1호부터 15호까지는 나름대로 무난하게 둘러보았으며 그중 제2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가 관리 목적상 위치를 옮겨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는 것 외에 나머지는 다 그 자리에 있음을 보았다.

이제 16호를 맞이하여 안동에 가보니 그 자리가 법흥사 절터였고 (지금은 고성이씨 종택) 그래서 그 자리가 국보의 원래 자리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중앙선 철도 건설과 1971년 안동댐 건설 후 도로 개설 등으로 지금은 고립무원에 빠져있고 철저하게 갇혀 있으며 뿐만 아니라 수시로 지나다니는 철도의 진동과 소음은 국보 문화재의 수명과 관리실태에 많은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다.

다시 한 번 청컨대, 국보에 걸맞은 (멀지 않은) 자리로 옮겨 마구잡이로 해체 보수한 기단 부분도 되살리고 하여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국보, 안동에 들르면 누구나 찾아보는 국보가 되었으면 한다. 높이 17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의 칠 층 전탑, 국보 제16호가 팔부신중과 사천왕상이 둘러싼 기단이 살아나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층마다 올려진 지붕을 상상하고 상륜부에 걸맞은 규모의 금동제 장식들이 솟았음을 추측해볼 때 꼭 그리되기를 기대해본다.

원문보기
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6/20150126015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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