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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1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南原 實相寺 百丈庵 三層石塔)
글쓴이 tntv 등록일 [2016.12.04]
▲그런데 예전에는 석등과 석탑, 부도가 얕은 담으로 둘러져 있었고 지금의 건물은 없었던듯하다. 당시의 문화재청 사진. 

문화재청 자료
공식명칭: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한자 명칭 : 南原 實相寺 百丈庵 三層石塔)
지정일:1962.12.20
테마: 유적건조물, 종교신앙, 불교, 탑
시대: 통일신라 시대
주소: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5

문화재청 설명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이다. 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 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괴임에는 난간 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당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신라 석탑 중 가장 장식이 많은 탑이다. 9세기 이후 화려하게 장식된 탑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탑은 장식 탑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상사(實相寺)

▲실상사에서 산내면을 지나 인월면으로 가다보면 백장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산길로 1Km 쯤 올라가면 백장암이다.
▲실상사에서 산내면을 지나 인월면으로 가다보면 백장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산길로 1Km 쯤 올라가면 백장암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북쪽 들판에 자리하고 있는 천 년 고찰 실상사는 선(禪)의 가르침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곳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증각대사(洪陟證覺大師)가 당나라에 유학하며 마조도일선사의 제자인 서당지장선사의 선맥을 이어받고 돌아와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실상선문을 열었고, 2대조 수철 화상이 법맥을 이어서 고려까지 선종의 근본 도량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신라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사찰이라는 점이 눈에 띄며 부속암자들을 포함하여 국보 1점, 보물 11점 등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백장암(百丈庵)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로, 백장이라는 이름은 백장선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백장암의 창건시기는 알 수 없으나 원래 명칭은 백장사였다고 한다. 백장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실상사 터에 몇 칸의 작은 건물을 지어 백장암이라 했는데, 이후 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 때 운월대사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상하 교행이 불안한 산길을 올라 간신히 주차하고 들어서니 백장암이 한눈에 보인다. 대웅전 앞에 석등과 석탑, 몇개의 부도가 보이고 산신각과 요사채가 전부인 아담한 절집이다.
▲상하 교행이 불안한 산길을 올라 간신히 주차하고 들어서니 백장암이 한눈에 보인다. 대웅전 앞에 석등과 석탑, 몇개의 부도가 보이고 산신각과 요사채가 전부인 아담한 절집이다.
백장암에는 백장암삼층석탑(국보 10호)을 비롯하여 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과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 등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있다. 실상사에서 인월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3Km 가다보면 백장휴게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 산도로를 따라 1Km를 올라간다. 현재는 백장선원이 개설되어 10여명의 스님들이 참선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석등과 석탑, 부도가 얕은 담으로 둘러져 있었고 지금의 건물은 없었던듯하다. 당시의 문화재청 사진.
▲그런데 예전에는 석등과 석탑, 부도가 얕은 담으로 둘러져 있었고 지금의 건물은 없었던듯하다. 당시의 문화재청 사진.
▲국보 10호, 백장암 삼층석탑. 한눈에도 많은 조각과 장식이 되어있고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있음을 알수 있다. 좌우 모습.
▲국보 10호, 백장암 삼층석탑. 한눈에도 많은 조각과 장식이 되어있고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있음을 알수 있다. 좌우 모습.

우리가 흔히 보는 석탑의 경우 그 대부분이 상륜부가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화강암등으로 견고하게 조각되고 얹혀진 몸돌이나 지붕돌에 비하여 상륜부는 그 중심에 철심(찰주)을 박은후 아래부터 위로 여러개의 다양한 장식물을 화려하게 붙이곤 하였는데 세월속에 떨어져나가거나 망실되어 제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심지어 다 없어지고 철심만 남은 경우를 보곤 탑에도 피뢰침을 세웠다고 하는 웃지못할 경우도 있다. 또한 각 층의 지붕돌에도 귀마다 장식을 매달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처마 끝에 뚫린 구멍만 남아 있다.

▲석탑의 온전한 모습과 명칭, 백장암과 실상사 석탑이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복원시 참고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석탑의 온전한 모습과 명칭, 백장암과 실상사 석탑이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복원시 참고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석탑양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조성한 이형탑(異形塔)이다. 바닥에 놓인 지대석위에 기단없이 몸돌받침을 얹고 바로 1층 몸돌이 놓였으며, 각 층마다 매우 섬세한 조각들이 화려하고 복잡하게 새겨져있어 일반적인 석탑에서는 볼수없는 모습이며 석질(石質)도 보통의 화강암과는 다른 느낌이다.

▲2층과 3층은 1층에 비하여 너비가 줄지않은채 비슷하게 올려졌으며 몸돌 높이는 1층보다는 줄였지만 2, 3층높이는 비슷하다.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이 2구씩,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하나씩 새겼다. 2층 지붕돌 밑면에는 1층과 같이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인데 3층만은 받침돌 없이 지붕돌 하단에 경사를 살려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는데 식별이 어렵다. 부분적으로 조금씩 깨지거나 부식되어 보여 안타깝다.
▲2층과 3층은 1층에 비하여 너비가 줄지않은채 비슷하게 올려졌으며 몸돌 높이는 1층보다는 줄였지만 2, 3층높이는 비슷하다.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이 2구씩,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하나씩 새겼다. 2층 지붕돌 밑면에는 1층과 같이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인데 3층만은 받침돌 없이 지붕돌 하단에 경사를 살려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는데 식별이 어렵다. 부분적으로 조금씩 깨지거나 부식되어 보여 안타깝다.
▲지대석위에 얹은 몸돌받침에는 난간을 조각하였다. 2, 3층에도 몸돌 아랫부분에는 난간을 둘렀다. 참 특이한 모습이다. 1층 몸돌에는 대부분 석탑에 새기던 우주와 탱주는 없고 정면에는 門 형태를 중앙에 두고 좌우로 인물상을 새겼으며 나머지 삼면에는 돌아가면서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 등을 돋음새김하였다. 지붕돌 받침석은 앙련을 새긴 듬직한 모습이며 그위에 얹힌 지붕돌은 경쾌한 들림은 없지만 안전하고 묵직한 모습이다.
▲지대석위에 얹은 몸돌받침에는 난간을 조각하였다. 2, 3층에도 몸돌 아랫부분에는 난간을 둘렀다. 참 특이한 모습이다. 1층 몸돌에는 대부분 석탑에 새기던 우주와 탱주는 없고 정면에는 門 형태를 중앙에 두고 좌우로 인물상을 새겼으며 나머지 삼면에는 돌아가면서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 등을 돋음새김하였다. 지붕돌 받침석은 앙련을 새긴 듬직한 모습이며 그위에 얹힌 지붕돌은 경쾌한 들림은 없지만 안전하고 묵직한 모습이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개, 보륜, 수연 등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신라 석탑 중 가장 장식이 많은 탑으로 장식 탑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말해주듯 새로이 탑을 세우거나 옛 탑을 복원하고자 할 때 이 탑을 많이 참고 한다고 한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개, 보륜, 수연 등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신라 석탑 중 가장 장식이 많은 탑으로 장식 탑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말해주듯 새로이 탑을 세우거나 옛 탑을 복원하고자 할 때 이 탑을 많이 참고 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곳 백장암에는 보물 제40호 석등과 제420호 청동 은입사 향로가 있다고 하는데 석등은 석탑 앞에 서 있어 살펴볼 수 있었지만, 향로는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일설에는 실상사에 있다거나, 어디 박물관에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탑 앞에는 몇 기의 조선 시대 부도군이 횡으로 늘어서 있었다.

▲대웅전 앞에 선 석탑과 그 사이의 석등, 그리고 앞쪽에 횡으로 선 부도군.
▲대웅전 앞에 선 석탑과 그 사이의 석등, 그리고 앞쪽에 횡으로 선 부도군.

김신욱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원문보기
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24/2014102401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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