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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驪州 高達寺址 僧塔)
글쓴이 tntv 등록일 [2016.10.03]


[국보탐방] [4]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문화재청 자료

공식명칭 : 여주 고달사지 승탑 (한자 명칭 : 驪州 高達寺址 僧塔)
지정일 : 1962.12.20
테마 : 유적건조물, 종교신앙, 불교, 탑
시대 : 고려시대
주소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

문화재청 설명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승탑이다. 고달사는 통일신라 시대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언제 문을 닫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가운데 돌에 새겨진 조각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돌은 8각이라기보다는 거의 원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에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각 거북을 사이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을 새겨 두었으며, 나머지 공간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웠다.

▲고달사터 전경. 나름대로 발굴작업을 거쳐 구획정리를 해놓았으며 일부 복원작업 중이다.
▲고달사터 전경. 나름대로 발굴작업을 거쳐 구획정리를 해놓았으며 일부 복원작업 중이다.
돌에 꽉 차게 새겨진 무늬들이 과장되지 않고 세련되어 능숙하면서도 대담한 힘이 느껴진다. 가운데 돌을 중심으로 그 아래와 윗돌에는 연꽃무늬를 두어 우아함을 살리고 있다. 사리를 모셔둔 탑몸돌에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는데, 문에 새겨진 자물쇠 모양의 조각은 밋밋하여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이를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꽃 조각이 달려 있는데, 크기에 비해 조각이 얕아서 장식 효과는 떨어진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그런 돌 위로 지붕을 축소한 듯한 보개(寶蓋)가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기본형을 잘 따르면서도 각 부분의 조각들에서 고려 특유의 기법을 풍기고 있어 고려 시대 전기인 10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돌을 다듬은 솜씨도 깨끗하고 조각에서도 세련미가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고달사터(高達寺址)
 
여주와 양평의 중간쯤, 그중에서도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거기에 갈 일이 없을 만큼 제법 외진 곳에 고달사가 있었다. 못미처에 블루헤런 골프장이 있어 동코스와 서코스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혹시 잘못 온 건 아닌가 하면서 지난 후 오르막 고갯마루를 넘어 반대쪽 내리막의 왼편에 고달사 절터가 있다.
 
약간 경사진 지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담하고 포근한 그곳에는 지금 소개할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외에도 보물 제6호 <원종대사 부도비>와 보물 제7호 <원종대사 부도>, 보물 제8호 <석불대좌>가 있으며,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보물 제282호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도 원래는 이곳 고달사지의 석불 대좌 아래 있었으나 1959년에 박물관으로 옮겨감으로써 빈자리만 남았다.

▲고달사 절터의 국보와 보물 위치.
▲고달사 절터의 국보와 보물 위치.
원래 고달사는 전성기인 고려 시대에는 사방 30리가 모두 절 땅이었으며, 수백 명의 스님들이 머물렀다는 대찰(大刹)이었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폐사되었는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옛날에는 인근 남한강 수로(水路)를 따라 문물의 왕래가 빈번하였고 따라서 이 근처는 많은 인구가 거주하거나 재물이 모여드는 등 번화한 곳이었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멀지않은 곳에 법천사나 거돈사 등의 또 다른 큰 절터가 아직 남아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한동안 폐사지 특유의 쓸쓸함이 가득 배어있는 황량한 벌판의 느낌이었으나 최근 들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정비하고 복원 및 보호활동에 힘입어 이제는 제법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반갑다. 2014년 8월 현재 보물 제6호 <원종대사 부도비>의 비신 복원설치 작업이 진행 중에 있어 9월 이후에 이곳을 다시 찾아본다면 감회가 새로우리라.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高達寺址 僧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은 절터 안에 있지 않고 뒤쪽 산기슭에 있으며, 근처에는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탑이 있다. 이는 스님들을 모신 승탑은 절 주변의 한적한 곳에 안치하는 관례에 따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절은 여러 스님의 승탑들을 모신 부도밭을 사찰 입구 길가에 조성하여 나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터 뒤편으로 잠시 올라가면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이 보인다.
▲절터 뒤편으로 잠시 올라가면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이 보인다.
또한, 최근에는 '부도'라 부르지 않고 '승탑'으로 부르고 있다. 다만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탑>처럼 국보 제4호의 경우 누구의 승탑인지를 밝히지 않는 것은 어느 스님을 모신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원감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나 이들을 기록해놓은 탑비도 발견되지 않는 등 아쉬운 부분이다.

▲고달사지 승탑 정면. 신라 시대 각원당형의 부도양식을 따랐으며 현재 남아있는 부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장중하다. 승탑 앞쪽으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보물 제282호 쌍사자 석등이 세워져 있던 팔각 지대석과 배례석이 보인다.
▲고달사지 승탑 정면. 신라 시대 각원당형의 부도양식을 따랐으며 현재 남아있는 부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장중하다. 승탑 앞쪽으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보물 제282호 쌍사자 석등이 세워져 있던 팔각 지대석과 배례석이 보인다.

 

▲측면에서 빗각으로 보면 중대석 둥근 몸돌에 새긴 거북 머리가 밖으로 돌출되어 보인다.
▲측면에서 빗각으로 보면 중대석 둥근 몸돌에 새긴 거북 머리가 밖으로 돌출되어 보인다.

 

▲승탑 주변을 둘러싼 축대 뒤에 올라 낮은 시각으로 내려다 본 승탑. 지붕돌과 상륜부를 볼 수 있는 위치이다.
▲승탑 주변을 둘러싼 축대 뒤에 올라 낮은 시각으로 내려다 본 승탑. 지붕돌과 상륜부를 볼 수 있는 위치이다.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라는 격(格 )에 걸맞게 이 승탑은 우선 그 앞에 서면 그 장중함과 유려한 모습에 압도당하고 만다. 과연 국보감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전체적으로 팔각원당형 승탑이며 바닥에는 지대석부터 팔각으로 깔고 그 위에 굄돌을 얹은 후 한 면에 2개씩의 안 상을 새겼다. 중대석은 팔각모양보다 오히려 둥근 원통 모양을 보이면서 커다란 거북을 중심으로 좌우 2마리씩, 4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을 정교하게 새겨놓았다. 특히 정면을 바라보는 거북 머리는 크게 돌출되어 조각적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그 위에 얹혀진 팔각 몸돌은 앞뒤로는 자물통을 걸어놓은 문짝이, 좌우로는 문창살이 새겨져 있으며 그사이 4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안에 모셔진 스님(사리)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커다란 지붕돌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얹혀있으며 팔각의 여덟 각마다 귀 꽃을 올려세워 화려함을 더하였으며 지붕 위에는 상륜부를 꾸몄을 것이나 현재는 복련위에 보개가 얹혀져 있고 기타 부분은 보이지 않아 마치 2층 형태의 지붕인 듯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지붕돌의 처마 밑을 자세히 올려다보면 긴 옷자락을 날리며 날아가는 천인(天人)을 새겨놓았는데 매우 아름답다.
 
이처럼 대단한 승탑 옆에는 당연히 탑비가 남아서 어느 스님인지, 그 스님의 행적은 어땠는지를 소상히 적어놓아야 하지만 아쉽게도 이 국보급 승탑에는 탑비가 없어서 명확한 기록을 구하지 못한 채 다만 원감국사의 승탑으로 추정할 뿐이다. 승탑의 설명 판에도 이러한 탑비가 없다는 설명을 상세히 기술해야 할 것이다.

▲석등과 배례석 앞쪽에는 좌우로 낮은 크기의 석주(石柱)가 2개 보이는데 명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석등과 배례석 앞쪽에는 좌우로 낮은 크기의 석주(石柱)가 2개 보이는데 명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이상으로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둘러보았다. 그밖에 고달사 절터에 있는 보물들을 소개한다.

 
고달사 절터의 기타 보물들
 
고달사지 승탑의 오른쪽 약간 아래편에는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탑>이 있다. 국보 제4호 부도에 모신 스님이 원감국사로 추정된다 하였는데 원종대사는 원감국사의 제자 진경대사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니 고달사의 제3대 지주가 되는 셈이다. 원종대사는 국사의 자리에 올라 이곳 고달선원을 전국 제일의 선찰로 가꾸었고 이 무렵 고달선원은 희양원, 도봉원과 함께 전국 3대선원으로 불리었다. 대사 입적 후 광종이 '원종대사 혜진'이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원종대사 승탑은 국보 제4호 승탑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이며 서로 비교하면 작품성이나 공력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국보 제4호 승탑은 팔각인 데 비하여 원종대사 혜진탑은 하대석이 사각이며, 중대석의 거북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여러 가지 미흡하면서도 거북이 고개를 왼쪽으로 꼬아 조각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또한, 국보 제4호 승탑의 몸돌에는 자물쇠 문양이 뚜렷하게 앞뒤로 새겨졌지만 원종대사 승탑은 자물쇠 없이 문(門)만 새겨 놓았다. 반면에 원종대사 승탑은 상륜부가 비교적 온전한 장점이 있어 가까이 있는 양쪽을 서로 비교하여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연코 국보 제4호 승탑이 뛰어나고 우월하다. 게다가 원종대사 승탑은 지반 앞부분이 침하되는 듯 보여 불안하다.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탑.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탑.
또한 원종대사 탑비는 고달사 절터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현재는 귀부와 이수만 있고 비신은 1915년에 넘어져 깨어진 상태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라하며, 올해 8월 말까지 복원작업을 추진 중에 있으니 9월 이후에는 복원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원감국사(추정) 승탑은 있으나 탑비가 없어 아쉬웠는데 원종대사는 승탑과 탑비가 모두 남아있어 다행이다. 원종대사 부도비가 하도 크고 포스가 느껴져서 혹시 국보 제4호가 원종대사 승탑이고 이 탑비와 한 쌍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보물 제6호 원종대사 부도비. 귀부와 이수만 있는데 현존하는 귀부와 이수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보물 제6호 원종대사 부도비. 귀부와 이수만 있는데 현존하는 귀부와 이수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2014년 8월 현재 비신을 새로이 제작하여 복구작업 중이다.
▲2014년 8월 현재 비신을 새로이 제작하여 복구작업 중이다.

고달사터의 중앙 아래쯤에는 커다란 석불대좌가 하나 있다. 불상은 없는 채 대좌만 자리 잡고 있는데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크기로 알려졌으니 위에서 예를 든 승탑이나 탑비 등과 더불어 고달사의 사세(寺勢)를 짐작게 해준다. 이렇게 해서 한자리에서 국보 하나, 보물 4개를 보았다.

▲보물 제8호 석불대좌
▲보물 제8호 석불대좌.

 

▲보물 제282호 쌍사자 석등. 쌍사자 2마리가 서있 지(立) 않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282호 쌍사자 석등. 쌍사자 2마리가 서있 지(立) 않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빈자리만 남아있는 쌍사자 석등은 보물 제282호이다. 그동안 옥개석(지붕)이 없이 놓여 있었으나 최근에 빈자리 근처에서 옥개석을 발견하여 제 짝임을 확인 후 씌워주었다고 한다.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고, 여기에 쌍사자 석등이 함께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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