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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보물 484 호 운천 호종일기(扈從日記)
글쓴이 tntv 등록일 [2016.07.14]
운천호종일기 이미지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 오늘날의 경북 구미 일대)에 있다"는 옛말은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바뀌었다. 영남 인재의 반은 안동에 있다로 된 것이다. 이는 그만큼 안동에서 인물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안동 김씨, 안동 권씨가 아니라도 13명의 정승을 배출한 동래 정씨, 대구 서씨, 정조의 외가인 풍산 홍씨도 안동 일대에 자리 잡은 명문가들이다. 그 중에서도 '천금(川金)이 쟁쟁(錚錚)이요 하류(河柳)가 청청(靑靑)이라' 즉, '천전에 사는 의성 김씨들이 크게 울리고, 하회에 사는 풍산 류씨들이 잘 되었다'는 안동 지방의 야화를 참고하면 내앞(川前)에 터전을 둔 의성 김씨와 하회에 기반을 가진 풍산 류씨에서 집중적으로 인물이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에 있는 의성 김씨 귀봉 종택에는 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가 보관되어 있다. 1925년 9월 발견된 이 일기는 귀봉 김수일의 아들이자 학봉 김성일의 조카인 운천 김용(1557∼1620)이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난 간 선조 임금을 호종했을 때 기록한 것이다. 김용은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로 옮겼다가 병으로 사직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수성장이 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지금부터 죽고 사는 것은 적을 토벌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니, 국가를 위한 충성이 어찌 벼슬의 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겠는가? 일에 성공하면 신령과 사람에게 원통함을 씻을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헛된 죽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비장한 격문이 그의 문집에 남아 있다.

경북 안동의 귀봉종택(중요민속문화재 제267호)

그는 검열·전적·정언·헌납·부수찬·지평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제도도체찰사(諸道都體察使) 이원익의 종사관으로 활약했으며, 독운어사(督運御史)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를 후원하던 영의정 유성룡이 서인에게 축출되면서, 탄핵을 받아 선산부사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 금오서원을 옮겨짓고 향교를 중수하는 등 문교에 힘을 쏟았다. 그 뒤 예천군수·상주목사·홍주목사 등의 외직을 전전하기도 했다. 1609년(광해군 1)에는 춘추관편수관으로 『선조실록』을 펴내는 일에 참여했다. 그 뒤 병조참의를 지내고, 1616년에 여주목사로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안동의 덕봉서원(德峯書院)·묵계서원(默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호종일기의 작성기간은 1593년 8월부터 1594년 6월까지 약 1년간이다. 표지에는『운천선조호종일기』라 적혀 있다. 호종일기는 평화시의 승정원일기와 유사한 것이나 임진왜란 중 행재소(行在所)에서 사관들이 호종하면서 당시의 모든 정사를 기록한 것으로 일차 사료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실록에는 국왕이 환도도중(還都途中)에 재령의 민가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일기에는 그 집 주인의 성명까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자세하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역사를 연구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사료는 물론 실록이다. 하지만 선조실록은 역대 국왕들의 실록 중에서 상대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까닭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면서 사초 등 실록 편찬의 기초가 되는 자료가 많이 흩어져 버린 때문이다. 전쟁 중에도 각종 기록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는 필요한 자료가 부족해 조선시대 판 관보에 해당하는 조보나 각 관청의 일기, 개인의 문집까지 수집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선조 재위 시절이 그 어느 때보다 당쟁이 격렬한 시기였다는 점도 문제다. 광해군 시절에 만들어진 선조실록은 북인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이에 비해 인조 즉위 이후 만들어진 선조 수정 실록은 기본적으로 서인의 시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운천재사 (雲川齋舍), 김용 선생과 그의 부인 이씨의 묘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재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운 이 건물은 앞면 4칸·옆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처음에는 임동면에 지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1989년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세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임진왜란을 연구할 때는 실록의 내용을 상호 비교하고, 보충할 수 있는 추가적인 사료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뒤늦게 세상에 나온 운천호종일기는 바로 이러한 선조실록의 내용을 보충하고 검증할 수 있는 대표적 사료 중 하나이다. 어전회의에서 국왕과 주요 신료들이 나눈 발언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어 임진왜란 중 국왕을 비롯한 조선 수뇌부의 전쟁 지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조정의 움직임 외에도 피란 중에 체험하고 견문한 사실, 당시의 생활상은 물론 정치·군사·외교 등 각 방면에 걸쳐 참고가 되는 내용도 많다. 또한 실록에 없는 내용이 기록된 경우도 있고, 실록에 유사한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더 자세한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사료적 가치를 감안해 1968년 12월 19일 운천호종일기는 보물 484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경북 안동에 위치한 국학진흥원이 소장 중이다. 아쉽게도 아직 전문이 완전 번역되지 않아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밖에 운천의 저서로는 『운천집』이 전하고 있다. 호종일기가 발견된 안동의 귀봉종택은 김용의 부친인 귀봉 김수일 선생의 종택으로, 현종 1년(1660)에 최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집이다. 'ㅁ'자형으로 대문채ㆍ사랑채ㆍ안채ㆍ사당채 건물이 있고, 사당에는 안동지방 불천위(큰 공훈이 있어 나라에서 사당에 영원히 모시기를 허락한 신위) 가운데 한 분인 김용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2011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민속문화재 제 267호로 지정되었다.

글 장진영 jyj3347@hanmail. net

출처: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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