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리현명 청동북 보물1810호
| 소 재 지; |
부산 서구 구덕로 225 동아대학교 박물관 |
‘황리현명(黃利縣銘) 청동북(靑銅金鼓)’은 고려 선종 2년인 1085년 황리현(黃利縣, 현 경기도 여주)의 호장(戶長)이자 무산계[武散階, 고려시대 향리, 노병, 왕족, 여진의 추장, 공장(工匠), 악인(樂人)에게 준 품계로, 문무양반에게 준 문산계(文散階)와 대비된다.) 정9품 인용부위[仁勇副尉, 고려시대 정9품 하(下) 무관의 품계로 성종 14년(995)부터 있었다.]인 민씨(閔氏)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황리현과 가까운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한다. 청동북의 앞면에는 크고 작은 동심원을 돋을새김하고, 안쪽 동심원에 연꽃무늬 당좌(撞座, 동종, 청동북의 표면에서 북채로 치는 부분) 바깥쪽 동심원에는 구름무늬를 배치하였다. 북의 뒷면에는 넓은 공명구(共鳴口)를 뚫고 측면에는 명문(銘文)을 음각하였는데, 이러한 구성과 형식은 고려시대 청동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청동북의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나 앞면 구성의 짜임새, 뒷면의 요형선(凹形線), 측면에 명문을 새긴 점 등을 고려할 때, 수준 높은 공예기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함통 6년명 청동(咸通 六年銘 靑銅金鼓, 865년)’, 고려시대의 ‘함옹 9년 경암사명 청동북(咸雍 九年 瓊巖寺銘 靑銅金鼓, 1073년)’, ‘대강 10년 법해사명 청동북(大康 十年 法海寺銘 靑銅金鼓, 1084년)’에 이어 지금까지 알려진 4번째로 오래된 청동북이다. 명문을 통해 명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고 고려시대 지방자치제도를 연구할 수 있는 한편, ‘반자(半子, 고려시대 청동북 한자표기의 하나, 盤子, 飯子를 혼용하였다.)’라는 청동북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은 문화재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