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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24호 석굴암
글쓴이 tntv 등록일 [2012.10.08]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인조 석굴인 경주 석굴암 내부(왼쪽)와 늦은 가을 석굴암의 외관(오른쪽).
<출처 : 오세윤(왼쪽)/석굴암(http://www.sukgulam.org/)>(오른쪽)>

수학여행 하면 으레 경주의 불국사석굴암을 생각하듯이, 석굴암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유적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석굴암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은 기껏해야 신라 경덕왕 시대에(8세기 중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러나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세계의 4대 고대 도시 중의 하나였던 경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석굴암과 불국사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고 이렇게 따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두 건축물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석굴암은 무엇이 뛰어나다는 것일까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유일의 인조 석굴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석굴암에 데려가면 할 말을 잊는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석굴암은 세계 유일의 인조 석굴이기 때문입니다. 이 건축가들은 이런 건물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한 나머지 석굴암의 구조를 뜯어보느라 말을 잊은 겁니다. 사실 석굴암은 석굴이라기보다 석실, 그러니까 돌로 만든 방이라 해야 합니다. 굴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을 만들고 굴처럼 보이게 한 것이지요. 그러면 신라인들은 왜 이런 굴을 만든 것일까요? 이것은 인도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인도는 더워서 수행자들이 굴처럼 서늘한 곳에서 수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엘로라 석굴이나 아잔타 석굴이고 이 전통을 따라 중국에서도 용문 석굴이나 운강 석굴을 만들었습니다.

 

불상의 머리 위로 깨진 마개돌이 보이고 그 주변에는 30개에 달하는 쐐기돌이 있다. <출처 : 오세윤>


신라인들도 이런 석굴을 만들려 했지만, 한국의 돌은 아주 단단한 화강암이라 굴을 파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인조로 석굴을 만들려 했고, 그 결과가 석굴암입니다. 석굴암을 만들 당시 신라는 기술과 문화의 힘이 최고였던 모양입니다. 에밀레종 같은 세계 최고의 종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석굴암이라는 문화력과 기술력, 그리고 종교성이 최고로 발휘된 불후의 역작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건설 기간이 약 40년이 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특히 돔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 돔은 돌을 원형으로 쌓은 다음 마지막에 마개돌을 올려놓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이 돌을 올려놓다가 그만 깨트리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깨진 돌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돔의 위로는 자연석을 수없이 놓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습니다. 이것은 석굴 안에 생기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통풍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 아래 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만들면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쐐기돌 같은 것을 곳곳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래야 돌들이 힘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석굴암에 데려가면 할 말을 잊는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석굴암은 세계 유일의 인조 석굴이기 때문입니다. 이 건축가들은 이런 건물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한 나머지 석굴암의 구조를 뜯어보느라 말을 잊은 겁니다. 사실 석굴암은 석굴이라기보다 석실, 그러니까 돌로 만든 방이라 해야 합니다. 굴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을 만들고 굴처럼 보이게 한 것이지요. 그러면 신라인들은 왜 이런 굴을 만든 것일까요? 이것은 인도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인도는 더워서 수행자들이 굴처럼 서늘한 곳에서 수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엘로라 석굴이나 아잔타 석굴이고 이 전통을 따라 중국에서도 용문 석굴이나 운강 석굴을 만들었습니다.

 

불상의 머리 위로 깨진 마개돌이 보이고 그 주변에는 30개에 달하는 쐐기돌이 있다. <출처 : 오세윤>


신라인들도 이런 석굴을 만들려 했지만, 한국의 돌은 아주 단단한 화강암이라 굴을 파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인조로 석굴을 만들려 했고, 그 결과가 석굴암입니다. 석굴암을 만들 당시 신라는 기술과 문화의 힘이 최고였던 모양입니다. 에밀레종 같은 세계 최고의 종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석굴암이라는 문화력과 기술력, 그리고 종교성이 최고로 발휘된 불후의 역작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건설 기간이 약 40년이 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특히 돔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 돔은 돌을 원형으로 쌓은 다음 마지막에 마개돌을 올려놓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이 돌을 올려놓다가 그만 깨트리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깨진 돌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돔의 위로는 자연석을 수없이 놓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습니다. 이것은 석굴 안에 생기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통풍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 아래 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만들면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쐐기돌 같은 것을 곳곳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래야 돌들이 힘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석굴암에서 엿볼 수 있는 신라인의 과학기술

석굴암 내부 공간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습기입니다. 습기가 생기면 돌 표면에 이끼가 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신라인들은 절묘한 방법을 썼습니다. 돔 바닥 밑으로 샘을 흐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닥 온도가 내려가게 되는데 바닥이 차지면 실내의 습기가 바닥에서 이슬로 화합니다. 석굴암을 보수했던 일제는 이것을 몰라 이 샘을 없애버리고 콘크리트로 돔 위를 막아버렸습니다. 해방 후에 우리 정부도 어쩔 수 없어 그 위에 또 시멘트를 바르게 되는데 이 때문에 석굴암은 더는 원형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석굴암의 과학성은 그 향하는 방향에서도 읽힙니다. 석굴암이 문무왕릉(대왕암)을 향해서 있다는 설도 있지만, 동지 때 일출 방향으로 향해 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동지는 해가 다시 길어지는 날이라 옛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신성한 날로 여겼습니다. 그 정확한 방향을 찾는 데에 1/1,000 미만의 오차밖에는 생기지 않았다니 당시 과학 수준을 알 만합니다.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조각물의 예술성

사실 석굴암이 불세출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조각물들의 예술성 때문입니다. 석굴암을 처음으로 조사하던 일본인은 본존불은 “동양무비(無比)다.” 즉 ‘동양에서는 비교할 것이 없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불상은 동양에만 있는 것이니 이것은 이 불상이 불상 중에 세계 최고라는 것이 됩니다. 인도에서 일본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불상이 있었을 텐데 이 석굴암의 불상이 최고라고 한 것입니다. 이 본존불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을 정도로 종교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완벽을 자랑합니다.

 

석굴암에 새겨진 부조. 관음보살상과 제자상이 보인다. 가장 왼쪽에 있는 상이 관음보살이며, 그 옆에 있는 제자가 붓다의 아들인 라훌라이다(왼쪽), 관음보살상의 조각은 본존불과 더불어 석굴암 안에서 최고로 평가 받고 있다.(오른쪽). <출처 : 오세윤>

 

 

본존불뿐만 아니라 부조로 처리한 보살상들의 양감 있는 조각들도 최고입니다. 그중에 본존불 바로 뒤에 있는 관음보살은 가히 압권입니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면모가 돌로 조각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관음상이 불상 바로 뒤에 있는 것은 이 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석가가 남성적인 지혜를 상징한다면 관음은 여성적인 자비를 상징합니다. 이 관음상은 머리가 11개로 되어 있지요? 그래서 11면 관음이라 부릅니다. 11이라는 숫자는 가운데와 8방향, 그리고 아래위를 합친 것으로 이것은 어디서든 위난에 빠진 중생이 부르면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흡사 119구조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내부 구조는 단순한 미학이 아닌 치밀한 계산과 건축 지식의 결과물

이 돔 안에는 붓다의 수제자 10명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들은 이 굴 안에서 유일하게 실존하는 인물들입니다. 이 가운데에는 붓다의 법통을 이은 가섭도 있고 아들인 라훌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보살상과는 달리 검박하고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수도자이었던 때문이겠지요. 이들 위에는 감실이 있고 이 안에도 보살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감실은 밑 부분이 뚫려 있어 환기구 역할도 했답니다.

 

예배실에서 예배자의 자리에 서면 이와 같이 불상의
머리가 광배의 정중앙에 오게 된다.
<출처: 석굴암(http://www.sukgulam.org/)>

예배하는 광경을 도면으로 그린 그림. 160cm 키를 가진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계된 것이다.

 

 

돔에서 불교를 보호하는 사천왕이 조각된 통로를 따라나오면 사각형의 예배공간이 나옵니다. 여기에 서면 그림에 있는 것처럼 불상의 머리가 뒤에 있는 광배의 정중앙에 옵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니까 키가 160cm 되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광배도 원래는 타원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이 자리에서 보면 동그랗게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계산해서 만들었다니 당시 신라인들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예배 공간에는 두 명의 무사(인왕역사)가 험상궂게 지키고 있고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 불리는 작은 신(lesser gods)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원래 힌두교의 신들인데 불교를 지키는 작은 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접이 영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문간방(?)에 살고 있고 석굴암 안에 있는 상 가운데 유일하게 이들에게만 머리 뒤에 있는 두광(頭光)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굴 안에는 원래 40구의 조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38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불교를 지키는 인도의 작은 신. 석굴 안에 있는 상 가운데 유일하게 두광이 없다. <출처 : 오세윤>

 

 

유적의 보존 때문에 직접 내부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워…

석굴암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정보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힘들게 석굴암 앞에까지 가봐야 굴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본존불만 보고 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유적의 보존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최첨단의 정보관을 만들어 석굴암의 모든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오는데, 별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글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자료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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