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매운 바느질 솜씨
시어머니는 언제나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분이셨다. 크고 작은 집안행사 후에는 으레 재단 후 남은 헝겊을 모아 바느질한 조각보에 음식을 싸서 내어 주곤 했는데, 배색이 아름다워 음식 보다는 보자기가 탐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구혜자 보유자는 바느질로써 남들에게 베푸는 시댁의 살림살이 방법이 싫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 친정어머니께서도 한복을 참 좋아하셨어요. 어릴 때는 물론이고 과년해서도 고운 한복을 자주 지어 주시곤 하셨지요.” 바느질을 가까이 하는 친정집의 여건 덕분에 언제나 안방 한켠에 어김없이 놓여있는 바느질감, 그리고 시어머니가 바느질 하는 모습이 그녀에게는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 중에서 그녀가 시어머니의 바느질을 물려받은 이유도, 유독 바느질 솜씨가 남달랐던 것도 우리 옷을 가까이 해왔던 까닭이었다.

몸의 곡선을 살려 내는 우리 옷 짓기
‘바늘과 실로 복식 전반을 짓는 일’ 이것이 바로 침선장의 역할이다. 대부분 가정에서 옷을 만드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한편 궁중에서는 왕실 복식의 조달을 전담하던 상의원尙衣院의 경공장經工匠 가운데 침선장을 두어 각종 궁중 복식을 제작하였다.

옷을 짓는 일은 바느질 기술은 물론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복잡한 작업이다. 옷감 짜기, 염색하기, 자수 놓기, 금박 입히기 등 협업協業에 의해 옷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옷의 맵시나 품위, 효용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옷을 제도(디자인)하여 모양을 내어 입을 수 있도록 하는 침선장의 솜씨라 할 수 있다.

“옷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지어 놓은 옷이 사람 몸에 맞아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복을 한 벌 지어 보겠다고 무작정 달려들다가는 이내 포기하기 쉽다. 옷을 입었을 때 비로소 곡선이 살아나는 것이 한복이니 만큼 옷 짓는 이의 눈대중과 손의 감각에 따라 안성맞춤의 옷이 탄생한다. 양장은 입체재단인 반면 우리네 옷 짓는 일은 평면제도의 방식이라 더욱 어렵다. “최대한 몸의 선을 살리는 것이 한복이기 때문에 숙련된 솜씨여야만 입는 이의 체형에 맞는 옷을 지을 수 있어요.” 한복을 어떻게 입어야 아름다움이 살아나는 것일까. 보유자가 서슴없이 답한다. “때와 장소, 연령에 맞추어 입어야지요. 옷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입어야 옷도 사람도 품격을 지닐 수 있습니다.”

침선, 손끝 기술 보다는 정성
침선장 보유자이셨던 시어머니로부터 40여 년을 꼬박 배운 바느질이건만 “이제 곧잘 흉내를 내는 구나”라는 말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그녀에게 선사한 최고의 칭찬이었다. “어머님께 수없이 꾸지람을 들었어요. 바느질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평생 바느질을 해 오신 어머님 입장에서는 제가 보다 완벽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살림 잘하는 맏며느리였지만 바느질 앞에서만은 주눅이 들곤 했다던 구혜자 보유자. 그녀가 공들여 만든 옷을 두고 칭찬하는 법이 없으셨던 시어머니 정정완 보유자의 엄격한 가르침이 그녀에게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규방공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침선을 배우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는다. 침선을 배우는 이들에게 그녀는 서두르지 말라고 강조한다.

“한 부분이라도 완전하게 알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고 하지요.” 머리가 좋아서 뛰어난 사람보다 차근차근 임하는 노력형이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옛 어른들 표현에 따르면 손끝이 야문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침선은 재주를 부려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성실한 사람을 눈여겨봅니다.”

그녀는 갓 입문한 교육생들에게 배냇저고리 짓기를 가르친다. 아기에게 입힐 작은 옷이지만 다양한 바느질 기법을 구사해야 만들어지는 옷인 까닭이다.

집을 짓듯 옷을 짓다
그녀는 개인적인 주문을 사양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생계를 목적에 두고 옷을 만들려면 재봉틀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많은 수의 옷을 지을 수 있어요. 주문이 밀려들면 손바느질로 제작해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노력,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손바느질이에요.” 그러면서도 섬세하지 않은 손바느질은 재봉틀로 지은 옷만 못하다는 것이 보유자의 생각이다.학교강의와 각종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녀는 지금 겨울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궁중예복을 복원하기 위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수옷감을 직접 짜서 완벽한 복식을 복원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하니, 그녀는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후대에 본보기가 되는 작품을 남기는 것이 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집을 짓는다고 하지요. 옷 역시 짓는다고 표현합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부터 튼튼히 다져야 완전한 집이 지어지듯이 옷 짓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아요.” 재봉틀이 등장하면서 손바느질 하는 손길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오늘날, 침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유자는 바느질을 대하는 자세가 솜씨를 결정할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글·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김병구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