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심방’을 업으로 삼아 온 집안
‘무당’, ‘단골’에 비해 ‘심방’이란 단어는 제법 낯설다. ‘무당’이나 ‘단골’이라 부르는 육지와 달리 삼다도三多島 제주는 무속인에게 ‘심방’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15세 되던 해 심방 일을 하시던 큰어머니를 따라 처음 굿판을 따라 나서지 않았으면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김윤수’ 이름 석자 대신 ‘심방’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 50여 년. 신과 인간을 이어주며, 제주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온 그간의 노정을 감히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우리 집안이 자손이 귀했어요. 6대조 할아버지 묏자리를 쓸 때 풍수를 모셔다 터를 보았대요. 그런데 그 터가 자손은 번성하겠지만 심방 자손이 나올 터였다고 해요.” 심방으로서의 삶이 순탄했을 리 만무다. 그러나 그는 4대째 심방을 업으로 삼아 온 집안 내력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해녀 물질과 바람의 신, 영등
음력 2월, 거친 계절풍이 불어오면 해녀들은 긴장한다. 제주로 구경을 오는 바람신, 영등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등신은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땅과 바다에 씨를 뿌려주고, 각 마을에서는 풍요를 기원하는 굿이 열린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행해지는 굿이 대표적이다. “이리 저리 다니는 길 모두 편안하게끔 할마님이 보살펴 줍소 하고 비는 겁니다.” 칠머리당에서 모셔지는 신은 영등신과 용왕신이다. “바람신으로 영등대왕, 영등할방, 영등할망이라고 부릅니다.” 굿의 진행은 심방이 하지만 굿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해녀들이다. 해녀는 특별한 장비 없이 수분동안 숨을 참으며 소라와 전복을 채취한다.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제주여성은 어려서부터 이 일을 시작한다. 해녀들은 이렇게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어패류를 팔아 일평생 가족을 먹여 살려 왔다. 바다와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안전은 누구보다 절실하니 영등굿은 이들에 의해 지속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인류가 함께 지켜갈 무형유산,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바람의 신 영등을 위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바다의 평온과 풍어를 위해 열리는 의례로 제주 고유의 토속문화가 담겨있다. 김윤수 보유자가 보존회관에서 춤을 가르치는데 열중이다. 그가 치중하는 것은 영등신앙의 전승력이다. 그는 무엇보다 연등굿의 연원에 대해 일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전수생들에게 영등신앙을 전승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영등신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시기인 2월초에서 중순은 대체로 바다가 거칠고 바다 속의 해삼이나 전복도 속이 비는 때에요.” 이러한 까닭에 제주 어민들은 뱃일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로 영등에게 굿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사실 영등굿은 상당한 연원을 가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제주목 풍속조에도 2월 초하루날 영등신을 맞아 보름날 보내며, 이 달에는 배 타는 것을 금한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는 세계적으로 공유되어 2009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제주문화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김윤수 보유자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제주의 여건과 제주인의 정신문화를 알려야 해요. 아직 실질적인 전승을 위한 기획을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영등신을 맞이하고, 영등신을 보내고
평범한 사람, 평소 말수가 적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김윤수 보유자가 굿판을 연다. 굿판에서 그는 평범한 김윤수가 아니다. 신과 인간의 매개자 심방이다. 영등굿을 행하기 이틀 전 해녀들은 굿에 쓰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작업을 한다. 공동작업에는 몸에 이상이 없는 한 모두 참여해야 한다. 언제 물속에서 숨이 차올라 세상을 등지게 될지 모르는 것이 해녀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해산물의 씨를 뿌려주고, 안전을 보장해 주는 영등신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바다에 들어간 지 대여섯 시간 만에 뭍으로 올라온 그녀들은 바다에서 잡은 것을 풀어놓는다.

“제사상에도 올리고 팔아서 돈을 만들어 가지고 물자사서 떡도 하고 돼지머리도 해요. 신에게 바칠 어물은 가장 싱싱한 것으로 올려요.” 이 모든 것이 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제물들을 준비하는 손길이 정성스럽다. 마음을 다해 차린 제물 위에 남편과 자식의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준비가 끝난다. 굿이 열리는 날 아침 심방들은 굿당 입구에 대나무와 깃발을 세워 신들이 인간세계에 내려오는 길을 만든다. 해녀들은 마을을 기원하는 7개의 상에 제물을 진설 한다. 송별굿을 통해 영등굿은 모든 사람이 한데 어울리는 축제가 된다.

‘굿’이 ‘GOOD’으로
근대화 바람이 바다물결을 타고 제주에 닿았다. 이 영향으로 굿은 곧 미신迷信이라 하여 핍박받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이즈음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1980.11.17). 무형자산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굿이 문화재가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제는 우리 문화유산을 넘어서 세계무형유산이니 세월 참 좋아졌지요.” 그는 다른 욕심은 없어 보인다. 아니 무속인의 본래 역할이란 나를 위해 무언가를 바라기 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온 자들이 아니었던가. 제주도 바다의 해가 뉘엿거린다. 굿판이 끝나면 신과 인간을 이어주던 김윤수 심방은 비로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글ㆍ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ㆍ김병구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