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는 우리의 악기樂器를 품다 “일제 때 일인日人이 뜯던 고토(琴; 일본의 가야금)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어요. 그 순간 문득 우리에게는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기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일본음악의 보급으로 전통음악이 왜곡되고 있었던 일제강점기. 전승이 어려워진 우리 음악이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했을 청년 이영수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당시의 여건은 마치 ‘가야금은 12줄, 거문고는 9줄’을 외우며 장구 보다는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를 먼저 익히는 오늘날 양악중심의 교육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 그는 전통음악의 질곡 속에서 50여 년간 우리의 악기제작과 복원을 위한 외길을 한걸음씩 다져나갔다. 그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한다. “조상들이 자신의 마음을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우리 악기란 말이에요. 악기를 제작하는 사람은 단순히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악기장, 무대 뒤에 가려진 연주자·수리기술자 국악기를 만드는 전문적인 기술을 보유한 ‘악기장’. 전통악기의 주 재료인 나무와 가죽, 명주실, 대나무, 쇠, 돌, 흙 등을 이용해 악기를 설계하고, 고유의 소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장인이다. 뿐만 아니라 악기의 음을 조율하거나 수리를 하는 일 또한 악기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연주자가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연주를 통해 감동을 준다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장은 손기술 그 이상의 음악적 감각을 필요로 한다. “해가 더해 갈수록 처음 악기를 만들 때 보다 좋은 음을 찾기 위한 욕심이 늘어나더라구요. 아무래도 연주자를 따라 갈만큼은 못되더라도 연주자의 입장을 알고, 또 음을 알아야 제대로 된 악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한때 악기 연주를 배우기도 했었지요.”

팔십여 세월 중, 오십 해 동안 수많은 연주자의 손에 저마다의 악기를 들려준 이영수 보유자. 우리나라 국악인 중에서 그가 만든 악기를 다루어보지 않은 국악인이 없을 만큼 그가 품어낸 악기는 좋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줄이 끊어지거나 어딘가 제 소리를 못내게 되는 악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 완전하게 제 소리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연주자에게 보다 좋은 소리를 품고 있는 악기를 제작해 주기 위해 연주를 배우고, 연주자와 소통하며 음을 찾아온 수십 년 노고의 결과이다.
모든 현악기를 두루 제작하는 그이지만 이영수 보유자는 특히 가야금 제작의 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오동나무는 소리를 머금은 악기로 거듭나고, 다시 연주자의 손으로 옮겨져 선율을 타고 춤을 추는 가야금이 된다. 그는 갓 만들어진 악기의 최초의 연주자이자 수리기술자라 할만하다.
천년의 소리를 갖추어 가는 과정 “작고하신 김붕기 선생님에게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악기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다루는 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한국 고전악기 연구에 공헌을 한 스승을 만나면서 악기제작 기술에 날개를 달았다.
통나무에서 악기로서 모양과 소리를 갖추기 위한 첫 작업은 나무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그 소리를 잃지 않는다’는 말처럼 악기 재료로 즐겨 사용되는 오동나무는 30년 이상 돌산이나 산비탈에서 자란 것이 좋은 소리를 낸다. 옛말에 ‘아버지 때 나무를 널고 아들 대에서 짠다’고 할 만큼 나무의 건조도 악기 소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최소 1년 이상은 햇볕도 쐬고 눈비도 맞추며 말려줘야 해요. 그 과정에서 비틀어질 나무는 비틀어지고 썩을 나무는 썩어서 소리내기에 적당한 나무만 남는 거지요.”

가야금을 만들 때는 몸통길이 넉자 반, 넓이 일곱치 5푼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악기가 연주되는 경우에 따라 그 크기에 가감이 있다. “나무가 너무 두꺼우면 소리가 탁하고 얇아도 통통 소리가 나기 때문에 적당한 두께로 잡아야 소리가 좋습니다.” 보유자가 말하는 적당한 두께, 그것은 곧 스스로 터득한 경험과 감에서 비롯된다. 가야금의 몸통 못지않게 가야금 줄의 재료인 실의 선택과 줄꼬기는 매우 중요하다. 생사生絲를 뽑아 가닥수를 달리하여 음을 조절하게 되는데, 가야금의 소리는 생사의 질과 비례하니 최상품의 실을 써야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완성되기까지 2,000번의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제 음을 낼 수 있다는 가야금. 매 공정마다 혼을 쏟아내는 악기장이 있어 수많은 연주자들은 오늘도 최고의 연주로 관객들을 만난다.

장인匠人, 국악의 미래를 빚어내다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아쟁을 비롯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와공후臥, 월금月琴 등 문헌에는 남아 있으나 어디에 사용하였는지 알 수 없는 다양한 악기의 복원에도 시간을 아끼지 않는 그다. “문헌에 의거해서 최대한 복원을 해야 그나마 잃어버리지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니까 복원을 계속 시도하는 겁니다.” 판매할 일이 없지만 그가 옛 악기를 끊임없이 제작하는 이유다. 고증을 거쳐 복원된 악기는 국립국악원이나 박물관 전시를 통해 일반인과 만나고 있다. 그는 가야금에 줄을 걸기 전에 소뼈로 장식하거나, 완성된 가야금 몸통을 적당히 가열한 인두로 노르스름하게 지져내는 방법 등 철저하게 전통 제작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요즘에는 악기의 몸체에 칠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옛날에는 오동나무 진이 빠져나올 수 있게 지진 후에 그을음을 긁어냈어요.” 이처럼 나무의 원래 무늬가 살아나고 좀이 먹지 않으며, 습기가 차지 않아 오래도록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완성된 가야금을 이영수 보유자가 이리저리 돌리며 살핀다. “좋은 악기가 되려면 첫째는 악기 재료가 제일 좋아야하고 둘째로 만드는 사람이 아주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야 하죠. 이 두 가지는 제 소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연주를 하는 사람이 연주를 잘해야 좋은 악기가 되는 거죠.” 오랜 세월 몸에 익은 안목과 솜씨로, 전통제작 방법을 지키면서 묵묵히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장 이영수 보유자. 그에게 악기 제작은 음악연주를 위한 도구제작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음악의 역사와 예술인들, 그리고 악기를 만들어 온 수 많은 장인들의 삶과 철학을 잇고 이로써 국악전승의 미래를 빚어내는 일이다.
글 ·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 김병구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