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골로 삶을 꾸려온 섬, 강화도 교동의 ‘왕골선생’

완초 재배와 공예로 유명한 강화도 인근 섬 교동도. 이곳이 완초장 이상재 보유자의 고향이다.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되었을 만큼 이 지역의 완초공예품은 최고로 꼽혔다. 

“교동은 옛날부터 농사는 못 짓고, 왕골농사를 지었어요. 제가 배울 때는 왕골을 짜서 다들 생활을 꾸려 나갔어요.” 30년 전만 해도 교동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꽃방석을 짜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상재 보유자도 왕골을 짜는 어른들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자연스레 완초공예를 익혔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앉아서 왕골을 짜는 일이 힘들어서 못하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 번 배워보겠다고 어머니를 졸랐죠.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제가 재주가 좋았던지  다행히 아주 잘 만들어냈어요.” 그의 유년기는 이 지역에서 왕골공예가 가장 성행했을 때였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4세에  마을에서 솜씨 좋은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왕골공예를 익힌 지 3년. 그는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교동 일대에서 점차 솜씨를 인정받았고, 일명 ‘왕골 선생’으로 불리며 공예기술을 남들에게 가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벼농사가 마땅치 않은 척박한 섬마을 교동도. 왕골농사를 생업으로 선택한 교동사람들의 솜씨를 물려받은 이상재 보유자의 왕골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교역의 인기상품, 왕골공예품

현완懸莞, 석룡초石龍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완초는 우리에게 ‘왕골’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풀이다. 왕골은 숙련된 장인의 손에 의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상류층의 애호물이 되기도 했으며, 곳간의 곡물이나 제사에 쓰이는 귀한 물건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가정살림에서도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된 왕골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왕실에서 필요한 자리나 공예품을 제작해서 납품하는 전담기구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는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왕골이 중요한 교역품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왔던 사신들이 왕골공예품을 많이 요구한 까닭에, 왕골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수요를 미처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왕골공예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재료와 감각의 어우러짐

“올해는 왕골 흉년이 들었어요. 햇볕을 잘 받아야 왕골이 쑥쑥 잘 자라는데 장마가 심해서 좋은 왕골을 수확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완초장 이상재 보유자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예작물인 완초는 4월에서 5월에 파종하여 씨를 뿌려서 발화시킨 뒤 논에 옮겨 심는데, 물대기와 논매기를 해주고 8월에서 9월경 수확을 하니 마치 벼농사와 비슷하다.

“거리를 가다가도 왕골을 죽 늘어놓은 것을 보면 그게 참 좋아 보이고, 논에도 왕골 심어 놓은 것을 보면 올해는 왕골농사가 잘돼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평생 왕골과 함께 한 그이니 왕골만 보아도 남다른 마음이 들만도 하다.

수확한 완초는 이삭과 잎을 제거하고 밑 부분을 세 갈래로 째는 ‘코자르기’를 하여 들판에 펼쳐 말린다. “왕골은 굵은 것은 네 쪽으로 째고, 가는 것은 세 쪽이나 두 쪽으로도 쨉니다. 이것이 왕골공예품을 만드는 첫 작업이에요.” 쪼갠 왕골은 날을 꼬는 작업에 들어간다. 전통도구인 갈구락지를 이용하여 꼰 노를 물감을 풀어 염색을 한다. 염색을 오래 한다고 하여 제 색깔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10년에서 20년 정도 지나면 주부들이 밥을 지을 때 느낌으로 보고도 물을 맞추듯이 물감을 들이는 시간도 감각이에요.”

도구를 이용하여 왕골공예품을 제작할 수도 있지만 그는 손으로 엮는 방법을 고수해 왔다. 그가 짠 왕골의 올은 매우 고르며 전체적으로 정연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는 공예품의 예술적 가치는 자신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전통의 지혜를 이어가는 완초장

그의 집 안은 왕골로 만든 물품으로 가득하다. 왕골공예품전시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지만, 타인에게 자랑하기 위해 모아둔 것이 아니다. 훗날 제자들이 완초를 엮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그의 작품들을 보며 실마리를 찾으라는 속내다.  동그리, 삼합, 송동이와 같은 전통적인 공예품을 주로 제작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늘날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왕골가방을 비롯하여 쓰임새가 요긴한 공예품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다. 강화화문석관을 비롯한 여러 곳의 수업을 통해 일반 수강생을 만나지만 이들을 전승자로 끌어들이는 일은 어렵기만하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데, 배우러 와서 한 3, 4일 배우다 말아. 하루 종일 하고나면 하늘이 팽팽 도는데 젊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나요.” 현재 완초장 전승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젊은 사람들의 참여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어려운 완초장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는 그의 뒤를 이어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학습을 통해 왕골공예의 기초를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강화도’의 특산품하면 ‘화문석’이라 배워온 어린이들. 화문석이 무엇을 말하는지, 왕골이 무엇인지 아리송할 그들에게 자그마한 왕골소품제작은 값진 경험이 된다.

“사람들에게 제가 만든 공예품들이 이렇게 인기가 좋은지 몰랐어요. 유독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작품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왕골공예품에 감탄을 하니까 힘이 났죠.” 올해 초, 인사동에서 열린 문화재청 주관의 공개행사 때 그의 왕골공예품은 인기가 대단했다. 그간 다리가 불편하여 바깥출입을 자제해 온 그이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에 더욱 힘을 얻었다고 한다. 

소박하게 발전한 한국의 풀문화 가운데서도 품질과 예술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왕골 공예품. 이상재 보유자의 6평 남짓한 작은 공방에서 우리네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다양한 공예품들이 살아나고 있다. 자연에서 살림살이를 얻어낸 옛사람들의 지혜가 그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 ·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 김병구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