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간문화재 김금화 선생 만수대탁굿
인천시 강화도. 강화읍에서 북서쪽으로 10여㎞를 달리니 산기슭에 금화당이 나온다.
금화당(錦花堂)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무당, 즉 나라 만신으로 불리는 김금화 선생(76)의 이름을 딴 당집이다. 최근 나온 그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생각의나무 펴냄)도 그의 두 이름을 합해놓은 것이다. 비단꽃은 금화의 순우리말이고, 넘세는 딸만 낳은 부모들이 다음엔 아들을 낳게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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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 무대에서 닷새간의 일정으로 만수대탁굿이 펼쳐지고 있다. 만수대탁(萬壽大宅)굿은 황해도 지역에서 노인들의 만수무강과 돌아가신 뒤 극락 천도를 기원하는 굿이다. 큰 무당들도 평생 세 번을 하기 어려운 큰 굿판이다. <비단꽃 넘세>의 서문을 쓴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가 1987년 서울 우이동에서 금화가 베푸는 굿판에서 너무도 강렬한 느낌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는 바로 그 굿이다.
굿판에선 금화를 신어머니로 삼아 신내림을 받은 신딸들이 신어머니 금화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넘세’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천덕꾸러기로 태어나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열두 살 때부터 무병을 앓고, 열네살부터 구박과 구타로 이어진 시집살이를 2년 만에 탈출한 어린 새색시의 아픔이 쏟아진다. 어디 그뿐이랴. 열일곱 살에 외할머니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지만, 일제와 6·25,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굿은 미신으로 치부돼 때론 경찰서에 끌려가고, 때론 총구의 협박을 받으면서 살아온 그 모진 삶 속에서도 고통 받는 이들의 상처를 끌어안아 원한과 상처를 훨훨 털게 한 그의 삶이 바로 한 판 굿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