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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보유자 김종대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10.16]

손바닥 안에 담긴 하늘과 땅의 질서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보유자 김종대 그는 그 마을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 고집일까, 인내일까? 아니면 그저 운명이었을까? 어쩌면 그의 마음 한편에 묵묵히 한 방향을 가리키는, 정직한 나침반이 있는 것은 아닐까. 흔들림 없이 제 길을 찾아 오랜 세월을 지나온 김종대 윤도장의 이야기이다. 윤도장(輪圖匠) 윤도장은 24방위를 원으로 그려 넣은 풍수 지남침(指南針)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윤도는 남북방향을 가리키는 자석바늘을 이용하여 지관이 풍수를 알아볼 때나 천문과 여행분야에서 사용되는 필수도구였다. 명칭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에 처음 등장하며, 나침반, 지남철, 지남반, 패철이라고도 한다.

새로운 길을 찾게 해 준 운명의 나침반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정해진 시기가 있을까? 거장, 명장, 장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개 ‘어린 시절’을 그 일과 함께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른 시기부터 시작해야만 그러한 경지에 달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종종 오해한다. 그러나 사실, 장인들에게 그 일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 장인에게 중요한 건 그 일을 ‘계속’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패철(佩鐵)로 유명한 고창군의 김종대 윤도장도 그렇다.


김종대 윤도장이 본격적으로 윤도를 만들기 시작한 건 한창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1963년이었다. 둘째 큰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윤도를 보고 자랐고, 스물다섯 무렵에 기술을 전수받기는 했지만 그는 엄연히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농협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둘째 큰아버지는 자신의 가업을 조카가 물려받기 원했다. 성격이 차분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무엇보다 조각 솜씨가 뛰어난 그를 둘째 큰아버지가 눈여겨본 까닭이었다.


“바로 이웃에 살았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께서 작업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면서 자랐죠. 그때 큰아버지께서 만든 윤도의 인기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 다니고 군대 가고 또 직장생활 하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주로 수리를 맡아 했었죠.”


그러나 결국 운명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윤도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01. 거북형 9층 윤도. 마을 뒷산에는 자침을 시험하는 거북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윤도의 형태는 그 거북바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02.윤도를 만들 때는 우선 걸음쇠로 층수를 나눈다. 층의 개수에 따라 윤도에 담기는 구성과 정보의 양이 달라진다. 03. 24층 윤도 그의 집안에 가보로 내려오는 헌종 14년 관상감의 판본을 기초로 제작한 것이다.

하늘을 살피고 땅을 찾던 전통의 천문 도구

윤도는 근대 이전 시기 우리나라에서 쓰인 나침반이다. 기록상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그 명칭이 언급된다. 『선조실록』 33년 9월 21일 기록에는 윤근수가 선조와 나눈 대화 중 “(명나라) 이문통이 나경이란 것을 꺼내 보여 주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윤도처럼 생겼으며”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 『영조실록』 18년 기록에도 “관상감에서 아뢰기를, 절행 때 구해 온 천문도와 오층 윤도는 모두 천문, 지리의 쓰임에 긴요한 것이니 청컨대 본떠 만들어 두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헌을 통해 윤도의 사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을 담당했던 ‘관상감’에서 윤도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용은 이보다도 더 오래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중국에서 이미 기원전 4세기경 나침반을 발명했으며 이후 널리 전파되었고, 한반도에서도 기원전 54년에 일식을 관찰하거나 별과 해의 모습을 통해 하늘을 살피며 점을 치는 등 천문, 역법과 관련된 기록이 『삼국사기』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체에 관한 지도를 만들고 별자리의 변화를 계산해 농사에 활용할 만큼 천문학이 발달했던 우리나라이기에 윤도와 같은 나침반 기구들이 쓰였을 것으로 본다.


윤도는 기본적으로 지침을 통해 방위를 확인하는 기구다. 하지만 단순히 동서남북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이지와 팔괘를 함께 표시해 우주의 법칙 그리고 음양오행의 사상을 함께 담아놓았다. 그래서 지관들이 묘터인 음택과 집터인 양택을 알아보는 풍수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고 간략한 형태로 만든 윤도는 여행자들의 길 안내에도 쓰였다. 또 합죽선의 선추나 거울이 달린 면경철 같은 장신구, 생활 소품으로도 활용되었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패철(佩鐵)’로도 불리게 된 것이다.


04.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각종 도구 김종대 장인의 전통 도구들은 선대부터 계속 사용하던 것으로 오래된 도구는 200년이 넘기도 했다. 05.자침은 장인이 직접 세공하고 자철석을 이용해 자력을 넣는다.

높은 제작 난도, 선대의 가르침으로 묵묵히 해낼 뿐

윤도는 매우 고단한 제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크기나 층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통 몇 개월은 걸려 작업해야 하는 일이다. 윤도의 재료가 될 대추나무를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수령 200~300년의 속이 꽉 찬 대추나무를 2~3년간 물에 불리고 건조해야 한다. 나무 속 진을 빼내야 제작 중에 나무가 갈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두를 이용해 대추나무의 가장자리를 깎아 판의 형태를 만드는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걸음쇠로 그어 둔 선대로 대추나무가 원형이 되는 것을 보면 가히 신기라 할 만하다. 원반 모양으로 둥글납작하게 다듬고 나면, 밀칼질과 사포질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다. 다음은 윤도의 층수를 나누는 정간 작업에 들어간다. 역시 걸음쇠로 동심원을 그리고 난 후 일정한 간격으로 금을 긋는다. 동심원 1개가 1층으로, 층수가 많을수록 그 안에 담기는 내용도 다양해진다. 이후 분금을 하게 되는데 정확한 분금이야말로 윤도의 생명이기 때문에 특히 집중해서 작업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역시 각자다. 가장 큰 24층짜리 윤도에는 글자만 3,000자가 넘게 들어가는데 김종대 윤도장은 이를 밑글씨도 쓰지 않은 채, 칼로 한번에 파내어 작업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사포질로 모두 밀어내고 다시 작업해야 한다.


06. 윤도장 전수교육관. 교육관 2층에는 전시실이 있으며, 윤도장 활성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07.자침은 장인이 직접 세공하고 자철석을 이용해 자력을 넣는다. 07. 김종대 장인 작품들. 부채에 장식하는 선추, 손거울로 쓰는 면경철 등 다양한 형태로도 윤도가 쓰였다.

“익숙해져서 안 보고도 외우지만,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만약 집중이 잘 안 되면 무리해서 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쉬는 게 좋아요. 큰아버지께서는 작품이 잘 안 되면 밖에 나가 단소를 불며 긴장을 푸셨다고 해요. 저는 농사일을 하거나 산책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밀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윤도 제작. 다행히 김종대 장인에게는 둘째 큰아버지가 남겨준 ‘교과서’가 있다. 그의 집안 가보로 전해지는 24층 윤도 판본이 그것이다. 이 판본은 헌종 14년에 관상감에서 만든 것으로 정간과 분금, 각자를 하는 데 중요한 기본 자료이다. 각자 과정을 마치고 나면, 먹을 입히고 먹이 마르면 옥돌가루로 덮어 글자에 선명하게 색을 입힌다. 그런 다음 자침을 만드는데, 이때 그의 집안에 내려오는 또 다른 가보인 자철석을 이용한다. 이 자철석은 원래 2개였는데 증조할아버지 대에 안타깝게 하나를 잃었다고 한다.


자침을 가운데에 올려 균형을 맞추고 유리를 잘라 덮으면 외형적으로는 윤도가 완성된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 그의 마을 뒷산인 제성산에 오르는 일이다. 그곳에는 거북 형태의 고인돌이 있는데, 동서로 놓인 이 바위에 윤도를 놓고 남북이 제대로 맞춰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다른 고장에서 만든 윤도를 놓으면 잘 안 맞지만 이곳에서 만든 윤도는 꼭 들어맞지요.”


마을이 생길 때부터 윤도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고창군 낙산마을다운 방식의 베타 테스트인 셈이다.


세상의 이치, 방향을 잃지 말 것

김종대 장인은 윤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때 서당에도 다녔지만, 아직도 윤도의 비밀을 다 풀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윤도에 담긴 ‘데이터’는 단순한 위치, 방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과 땅의 시간 그리고 길흉화복에 관한 의미까지 담고 있으니 만들면 만들수록, 알면 알수록 심오한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윤도를 ‘나경(羅經)’이라 불렀던 것도 삼라만상을 다 포함하고 천지를 직조해 낸다는 의미에서였지 않았을까.


항상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윤도처럼,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길을 헤매지 않고, 지극한 손길로 우주의 질서를 다듬어 온 김종대 장인. 평생 마을을 떠난 적 없다는 그의 올곧은 삶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몰라 헤매는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글. 최대규 사진. 김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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