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핀 꽃, 지화는 간절함으로 피어난 꽃이다. 한지를 물들이고 고이 접어 꽃으로 피어난 정성은 염원으로, 다시 복으로 이어진다. 김은옥 지화장(69)은 반백년 동안 지화 꽃을 피워낸 유일한 사람이다. 인천시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지화장의 손은 쉬지 않고 지화를 만지고, 또 만졌다. 울긋불긋한 지화가 그녀 주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부와 명예 목련, 백년해로 모란이 상징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에서 지지 않는 꽃을 구해왔다네.”
그 옛날 화공들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구하기 어렵고 귀한 꽃이란 뜻이다. 지화는 지지 않는 꽃이라 불리며, 양반가문에서만 볼 수 있는 장식이었다. 고려시대에서 이어진 한국의 전통공예다. 사시사철 집안에 두고 볼 수 있는 장식의 효과도 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더욱 값지다.
지화는 무화와 가화로 나뉜다. 무화는 무녀가, 가화는 양반들이 집안에서 사용하던 꽃이다. 모두 복을 불러들인다는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 가화는 ‘우리 집’의 부귀영화를 염원한 것이고 무화는 무녀를 찾는 모든 이들의 복을 빌었다는 것 정도의 차이다. 수려한 꽃, 그 보다 깊은 선조들의 간절함에서 지화는 태어났다.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목련,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모란 등이 많이 쓰인다. 결혼을 하는 신부에게는 수국과 모란 등으로 부케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한다. 종이로 만들지 못하는 꽃은 없다. 실존하는 꽃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건강, 불로장생을 나타내는 ‘십장생’이란 상상의 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양한 복을 불러들이는 염원으로 피어난 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토속신앙은 종교이기 전에 문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 보존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각기 다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옛날에 부유한 대감 집에선 한 가운데 종이로 만든 목련을 화병에 꽃아 두었답니다.”
종이 꽃 향기의 비법
김 지화장은 50년간 지화를 피워냈다. 어릴 적 아버지 어깨 너머로 처음 지화를 보고, 쭉 지화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지화와 함께하다 보니,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니까요. 시중에 파는 한지를 사용하면 이런 색감이 나지 않아요. 꽃의 색을 내기 위해 힘들어도 반드시 직접 염색을 해야 해요.”
실제로 김 지화장이 꼽은 가장 중요한 일이자 가장 어려운 과정이 바로 이 ‘한지 염색’이다. 비가 내리는 날 빗물을 받아두고, 날이 좋은날 잿물을 만들어 쓴다. 치자나 오미자처럼 색을 내는 열매, 꽃잎 등의 즙을 내어 염료를 만든다. 찰나의 순간이 종이의 질과 색감을 좌우한다. 빠르게 한지를 물들이고 햇볕에 말리는 몇 날 며칠의 과정이 지나야 색 한지를 손에 쥘 수 있다.
그가 염색된 한지를 코에 가까이 대어본다. 잠시 눈을 감고 향을 맡더니, “여기요, 맡아봐요. 천연염색을 해서 향이 그대로 나요.” 노란 한지에선 치자가, 녹색 한지에선 쑥이, 붉은 한지에선 오미자가 각자 향을 내뿜고 있었다.
종이로 꽃을 피우는 일은, 자연이 꽃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꽃잎 하나를 물들이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 자르고 접어내 만든 송이 송이에 장인의 얼이 깃든다.
4대가 이어진 지화가문
그녀는 황해도 해주의 태어났다. 4살에 피난길에 올라 정착한 곳이 인천이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결혼 후에 다시 인천으로 와 쭉 중구에서 살았다. 인천시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김은옥 지화장은 전국에서도 유일한 지화장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저작권으로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김 지화장의 집은 할머니 때부터 이어진 지화 가문이다. 그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늘 지화를 만들었다. 지인이 개업을 하거나, 결혼을 할 때면, 당신이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그 옆에서 김 지화장은 어렵게 물을 들인 한지로 딱지치기 놀이를 하곤 했단다.
종이를 만지작거리던 어린 소녀는 어느덧 50년의 세월이 흘러 2013년 지화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삼남매 중 막내딸이던 그녀만이 유일하게 지화를 이어 받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지화展’을 열며 세상에 지화를 알렸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이 지화의 길을 걸으면서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친 지화가문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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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지화는 거의 아들이 만든 거예요.” 그가 작업실에 놓인 꽃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나보다 잘 만드는 것 같아.” 지화를 아들에게 넘겨주면서, 김 지화장에겐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지화전시를 하면 보기가 좋잖아요. 사람들이 여기서 차 한 잔 하면 좋겠다는 말을 해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지화갤러리 겸 카페를 개관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내년쯤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있어요.”
그의 손은 쉬지 않고 꽃잎을 둥글리고 있다.
차지은 I-view 기자 minsable@hanmail.net
출처:인천시 I-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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