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천경개를 즐거이 노래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소리 산타령은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과는 달리 활달하고 씩씩하게 부르는 남성들의 소리로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 산타령(도라지타령)’ 등을 차례대로 연창하고 있다.
산타령이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치 않다. 다만 1800년대 중반 이후, 문헌이나 사료에 사당패가 산타령 관련 악곡들을 연행하였다는 점이나 불가의 의식이 끝난 후 산타령과 민요로 일반 대중을 위로한 점, 그리고 도시와 농촌에서 넓은 마당에 불을 밝히며 구경꾼들과 함께 즐겼던 점으로 미루어 사당패의 소리를 예인집단이나 세속 음악인들이 개작하여 전승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는 “고종 때의 명창으로 뚝섬패의 이동운이 있었는데 그의 선생이 그 유명한 이태문이었고, 이태문의 선생이 신낙택, 신낙택의 선생이 종대, 종대의 선생이 이의택”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물론 박춘재를 비롯한 원로 선소리꾼들의 전언에 의한 것이다. 이 전언에 따른다 해도 1920년대 뚝섬패의 유명한 모갑(某甲) 이였던 이동운 윗대로 태문-낙택-종대-의택 등 4대를 거슬러 오른다면 줄잡아 1800년 초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산타령이 불렸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다만 앞산타령, 뒷산타령과 같은 악곡의 이름이 문헌에 등장하는 시기는 잡가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10년에서 1920년대 사이인데, 이 시기의 『증보신구잡가』를 비롯한 『고금잡가편』, 『무쌍신구잡가』, 『신구유행잡가』, 『증보신구시행잡가』 등에는 선소리 산타령의 여러 악곡 명이 들어 있어서 그 시대에 이미 대중적인 노래로 자리매김해 왔다는 점을 알게 한다.

특히 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다. 구한말까지도 서울의 왕십리와 뚝섬을 잇는 살고지다리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답교놀이가 행해졌는데, 이날 밤에는 서울과 경기 일원의 산타령 패(牌)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목말을 타고 목청을 높여 산타령을 부르며 밤새워 흥겹게 놀았다고 한다. 율동을 곁들인 합창단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드러내고, 참가한 시민들과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부르던 중요 레퍼토리가 바로 산타령이었던 것이다.
산타령은 경기, 서도, 남도지방의 산타령이 있으나, 현재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산타령은 경기의 산타령뿐이다. 과거 문헌에는 경기 산타령은 판염불,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서도 산타령은 놀량, 사거리, 중거리, 경발림 등으로 묶었으나, 현재는 제1곡이 놀량, 제2곡이 앞산타령, 제3곡이 뒷산타령으로 동일하고, 제4곡만이 경기는 자진산타령(일명 도라지타령)인 반면, 서도는 경발림(일명 경사거리)이어서 다를 뿐이다. 악곡 명이나 구성, 선율 진행, 일부 사설이 유사한 편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경기와 서도는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산타령이 다른 지방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27년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서는 경기 산타령은 불규칙리듬이 많고 서도 산타령은 비교적 규칙적이라는 점, 서도는 템포가 빠르고 요성(謠聲)이 격렬한데 비해 경기는 비교적 느리고 매끈하다는 점을 들어 서도의 산타령은 경기 산타령의 변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동네에서, 교육현장에서 널리 불리길
그러나 경기나 서도 할 것 없이 산타령은 오랜 역사와 음악적으로 다양한 특징들을 지니고 전승되어 오는 전통의 소리임은 분명하다. 자칫 이에 대한 보존정책이나 전승과정을 소홀히 했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을 잃을 뻔 했던 종목임이 분명하다. 1969년, 산타령을 무형문화재 단체종목으로 지정하면서 뚝섬패의 김태봉, 유개동, 과천패의 정득만, 왕십리패의 이창배, 동막(공덕)패의 김순태 등 5인을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 그만큼 이 종목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중흥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유자들이 연로한 탓에 전승 활동이나 후진 양성이 활발치 못하였다. 현재의 산타령 계보는 왕십리패를 이끌었던 이명길의 제자 이창배의 산타령과 과천패 소완준의 소리를 이은 정득만의 소리가 전승되고 있으며,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황용주와 최창남 외에 박태여, 염창순, 방영기, 이건자, 최숙희 등 전수조교들, 그리고 ‘선소리산타령보존회’ 회원들이 지난날의 산타령을 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타령과 같은 노래가 동네나 교육현장에서 불려도 좋은 이유는 노래의 가사 속에 각 지역의 유명한 산이나 강 이름이 두루두루 나오기 때문에 사설 내용도 건전할 뿐 아니라, 국토에 관한 상식이 풍부해진다는 점, 독창보다는 대형을 이루며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여서 협동심을 키울 수 있다는 점, 소고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이기에 다양한 리듬감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점 등이다.
전통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기반이라는 시각이 점점 확대되어 가는 지금, 산타령이 얼마나 신명나고 건강한 노래인가를 확인시켜주는 무대가 자주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 서한범(단국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