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의일침

“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러 가지로 맘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그가 이야기를 이어간다.“평안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서도소리’라고 합니다. 예로부터‘북北에는 수심가 남南에는 육자배기’라는 말이 있을 만큼 서도소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작년 말‘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우리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오랜 소리여행의 흔적

열한 살 때부터 해주의 민형식, 평양의 이정근 등 내로라하는 명창들에게 서도창의 진수를 배웠고, 광복 이후 월남하여 30세 무렵에는 서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를 그가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것은 그가 교단을 정년퇴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소리꾼의 삶을 시작한 이후였다.“중학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 서도소리의 보유자가 되기 전에 이미 그는 수차례의 발표회와 제자들을 위해 발간한 여러 권의 교육교재를 세상에 내 놓았다. 서도 소리 전승을 위해 기울인 그간의 정성과 노력이 남달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 소위‘제대로 소리하기가 어렵기로 소문난 민요’이기 때문일까. 묵묵히 배운 끝에 맛볼수있는 소리의 참맛을 접하기도 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 고향의 소리를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서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 통일되면 본고장 사람들에게 우리가 서도소리를 가르쳐야 할지도 모릅니다.”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의 소리를 이어온 것이 아니었다. 통일이 되면 자신이기 울인 노력이 소리의 맥을 잇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희망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