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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 기능보유자
글쓴이 tntv 등록일 [2012.06.19]




소년시절,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스승님

이형만 기능 보유자가 잊지 못하는 스승님에 대한 추억은 장난질 심하던 소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계통은 여러 스승으로 옮겨가며 배움을 갖는 게 보통인데 그는 한 스승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셨다. 배움과 교육열이 남달랐던 스승님과의 인연은 아직 통영이 경남 충무시로 불리던 1963년도부터다. 가난 탓에 진학한 학교가 일사 김봉룡 선생님이 세우신 칠공예기능양성소였다. 그 시절에 오늘날 공예의 기초인 도안과 문양디자인까지 모두 배운 셈이다. 김봉룡 선생님이 조그만 공방을 열어 독립하시던 해 그는 선생님의 수제자로 선택이 된다. 자개 기능일 외에 인력이 부족한 탓에 옻칠일까지 두루 섭렵해야 하는 완벽한 공방일이었다. 서울행이 족히 사오일은 걸리던 시절, 한번은 스승님이 서울로 출타하신 틈을 타 소반 네 개를 두고 칠 연습을 했다. 그런데 너무 옻칠이 두툼했는지 칠을 말리는 중 두어 시간이 지나자, 온통 쭈글거리며 모양새가 엉망이 된 것이다. 그는 스승님의 꾸중이 두려워 그 달음에 십리 길을 달려 집으로 도망을 친다. 이제는 나전일을 배우지 않겠노라 장담했지만. 사흘 만에 스승님께 끌려오고 말았으니. 그의 재능을 외면하지 않는 예리한 눈이었다. 그 후로 몇 번인가를 스승님 곁에서, 그리고 나전칠기 일에서 달아나려 했으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완성된 작품을 마치 그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듯 상사칼로 아무 말씀 없이 파내시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치 않는 그런 스승님의 혹독한 가르침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이리라. 언제나 인격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셨던 분이었기에 지금도 그 시절은 선생님과의 추억으로 가슴 한 켠을 적신다. 다만 존경하는 스승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함이 늘 아쉬움으로 그에게 남아 있다.



나서면 꺾인다. 기어!

그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힘은 바로 훌륭한 스승님들과의 만남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앞서 이야기한 김봉룡 스승님 말고도 나전칠기의 활기찬 복원을 꿈꾸는 김성수 스승님이 계신다. 한분을 더 이야기하자면, 분야는 다르지만 원주에서 그의 삶의 일부로 사셨던 장일순 스승님이시다. 생애 첫 전시회를 함께한 분이다. 전시회가 끝나고 1988년에 그가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거머쥐었을 때 스승께서는 “나서면 꺾인다. 기어라!”를 첫마디로 하셨다. 이 말씀은 아직도 그에게 남은 인생동안의 숙제이다. 아마도 시대의 대를 잇는 진정한 예술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셨을게다. 첫 전시회였던 그 때를 전후로 그만큼의 인원이 동원된 전시회는 다시 없을 거라는 그의 회고 뒤에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전통을 알리고 현대를 취했던 시간들

2007년은 그가 10여년의 외도를 정리한 해이다. 전통공예를 하는 그가 늘 고민하는 건 전통과 현대가 함께 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이다. 배제대 칠예술학과에 출강하는 십여년 동안, 원주에서 일주일에 두 번을 꼬박 통근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현대공예의 정신 속에 전통공예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담아주고 싶었다.


“십여 년의 외도를 정리하면서 학생들에게 나는 너희의 젊음 속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생각을 얻었고 너희는 나의 전통공예를 전수받은 것이라며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내 작품 할 시간을 할애해 가며 갔던 이유는 나와 다른 분야를 알아야 지금의 공예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이제는 전통과 현대가 같이 어우러져 가야 할 때라고 봅니다. 아니면 공예 전체가 퇴보할 수도 있으니까요.”

스승님의 가르침처럼 그는 늘 말한다. 지금의 전통공예를 끌어가는 상황이 어렵더라도 기준점을 가지고 정직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부다.

작품의 첫 시작인 도안을 그릴 때의 기본은 선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영감을 얻기 위한 나들이 길에서 건축물 외형으로 드러나는 선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부드럽고 창조적인 문양을 그는 바로 선들의 변화에서 취한다. 현재와 미래를 추구하는 건축물에선 현대공예의 맛을 찾아내고 옛 추억을 담아낸 고건축물에선 사라져가는 고전미를 발견한다. 그가 구하고 또 작품에 이용하는 재료인 조개와 옻칠은 언제나 최고이며 그래서 작품 또한 최고일 수밖에 없다. 전통의 초석위에 현대 공예를 접목 시키는 상생의 길, 그리고 우리 생활 속에서 그 작품들이 자리할 수 있도록 생활용품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 그가 바라는 일이다.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 작품에 최선을 다할 준비를 한다. 나전칠기 작품의 과정 중 가장 힘들고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밑그림 도안(족히 320점 정도는 되는)들이 그의 사물함에 어느새 빼곡히 들어차 있다. 창의적인 그의 생각들이 세상을 향해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일순 선생님과의 전시회 이후 개인전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작품들에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보니 그 동안 삼년 뒤라고 늘 이야기해 왔는데 벌써 수삼년도 더 지난 듯합니다. 이제 내 나이도 어느 정도 되다보니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끝에 자신만의 진정한 작품을 만들 욕심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는 그를 필요로 하는 부름과 외도를 자꾸만 자제한다. 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후학들에게 좀 더 기회를 주고 문하생들의 성공을 더 바라기도 한다. 원주시에서 이번엔 옻칠문화센터에 넓고 전망 좋은 방을 그에게 마련해 주었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작업공간에서 열심히 작업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문화재청 주관의 건청궁 복원 사업 일환인 칠기공예작품들을 완성하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미루었던 중간크기의 삼층장과 이층장 만들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간의 보람도 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매진중이다. 장남인 광웅씨는 벌써 엄격한 스승인 아버지의 가르침과 재능을 이어받아 2004년 전국공예품대전에서 당당히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험도 있고 대학 강단에도 선다. 둘째인 상훈씨 또한 앞으로 전통공예의 판매나 마케팅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3년째 나전칠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 수습생으로 혹독한 훈련중이다. 작업장에서의 그는 아버지이기 전에 항상 호랑이 스승이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건 그의 스승님들이 그러하였듯, 당당한 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할 기회인 셈이다. 또한, 후학들도 지금은 외국에 나가 제 몫을 해주고 있어 더없이 든든하다.



사각 사각...., 그의 문하생이 문지르는 사포질 소리가 계속해서 작업장을 울리고 있다. 살며시 다가가 그녀에게 물으니, 문갑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데 족히 육개월은 걸린단다. 깜짝 놀라 감탄사를 지를 수밖에. 칠기공예 작업은 45가지의 공정을 거치는 실로 긴 시간의 수고로움이 있어 더욱 빛난다. 넓은 방안에 자리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자개농은 이리저리 둘러 봐도 그 고운빛깔의 화려함과 영롱함에 눈이 부시다. 마치 이슬을 머금은 아침 숲 속을 풀어 놓은 듯하다. 거북이 살아서 기어 다니고 천년학은 날갯짓을 하여 금세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살아서 숨 쉬고 있었다.  


글·박양숙  
사진·최재만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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