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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세계유산 벽화 산산조각…伊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당 복원 스토리
글쓴이 tntv 등록일 [2014.12.01]

[문화재 관리가 국력] 세계유산 벽화 산산조각… 30만개 퍼즐 맞추다

伊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당 복원 스토리

입력 2014-11-29 03:54
[문화재 관리가 국력] 세계유산 벽화 산산조각… 30만개 퍼즐 맞추다 기사의 사진
700여 년간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아시시 언덕을 지켰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1997년 9월 26일 두 차례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졌다. 지오토 디 본도네, 조반니 치마부에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벽화들도 산산조각이 났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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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이 쓰러졌다. 숭례문은 5년간의 복원공사를 끝내고 2013년 5월 4일 국민들에게 다시 공개됐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단청은 값싼 화학안료를 써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박락현상이 발생했고 건조가 덜된 목재를 사용하면서 갈라지는 현상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문화재 복원 방법은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문재 복원의 선진국 이탈리아를 가봤다.

1997년 9월 26일 새벽 2시32분.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의 지축이 흔들렸다. 강도 5.8 지진이었다. 세르지오 푸세티(62)씨는 위험을 직감하고 급히 잠에서 깨 차에 시동을 걸었다.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중세도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바티칸 교황청 소속의 푸세티씨는 스물두 살이던 1974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업무는 보수전문 건축가들과 함께 성당 보수를 하는 것이었다. 주로 양초의 그을음 때문에 검은색으로 바뀐 성당 내부 벽화를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지진으로 그의 업무는 완전히 달라졌다.

“1차 지진이 발생하고 9시간 뒤 여진까지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관리, 신부 2명과 내부를 둘러봤지만 큰 손상은 없었지요. 그런데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볼트(아치형 천장)에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어요.”

사고로 같이 있었던 이들은 모두 숨졌고 푸세티씨 홀로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그를 ‘미라클 보이’라 불렀다. 이후 2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는 여전히 성당의 복원·보수 담당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성당에서 푸세티씨를 만났다. 그는 성당이 1253년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리기 위해 아시시 언덕에 세워졌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성당의 백미는 내부에 있다. 성당 1, 2층에 지오토 디 본도네, 조반니 치마부에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남긴 벽화들이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성당은 올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유명세를 탔다.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 출신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 교황명을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방문 당일에도 성당에선 70년대부터 계속된 벽화에 입혀진 초의 그을음을 제거하는 작업은 한창이었지만 지진의 아픔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프란치스코 성당이 막대한 지진 피해에도 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복원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충실한 자료와 현대 기술 그리고 국민적 관심이 그것이다.

특히 이 성당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2∼3㎝ 크기의 벽화 조각 30만개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과거 기록과 대조해 맞출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 보수·복원 작업에 들어가면서 구조 등에 관한 문서작업도 이뤄진 상태였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전 기록들도 많은 편이었어요. 원본 사진을 실측 크기로 뽑아 대조하면서 퍼즐을 맞추듯 작업했습니다.”

지진 이후 복원작업도 철저히 기록해 책자로 만들었다. 대부분 작업은 완료했고 치마부에와 지오토의 대형 벽화작품들에서 떨어져 나온 8만여개의 조각만 남은 상태다. 이 조각들은 구역별로 번호를 매겨 보관소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8만개의 조각은 단색이라 육안으로는 위치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과거 기록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대신 첨단 장비도 동원했다. 현재 남은 8만개의 조각을 맞추는 데 피사대학의 도움을 받고 있다. 조각을 하나씩 스캔해 프로그램을 돌려 맞추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벽화를 벽체에 붙일 때는 특수 개발한 ‘접착제’를 사용했다. 시멘트 등에는 벽화에 손상을 주는 소금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접착제의 이름은 21번의 테스트 끝에 완성됐다는 뜻에서 ‘21아시시’로 정했다.

지진에 강한 벽체를 만들기 위해 골조는 로마의 라사피엔차 대학에서 개발한 방식을 적용했다. 철근 대신 탄소섬유를 사용했고 길이 13m짜리 독일산 철강 띠를 벽 안에 둘렀다. 철강 띠 중간에는 지진이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철강 판을 설치했다. 흔들림을 감지하는 센서도 부착했다.

여기에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복원에 힘을 실었다. 지진 발생 직후 바티칸과 이탈리아 정부는 300여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신속한 복구 작업에 들어갔고 전국 곳곳에선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자원봉사자들은 30만개의 돌조각들을 구역별로 구분해 퍼 나른 뒤 색상별로 나눴다. 사람의 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2800만 유로(약 387억2652만원)를 투입한 대형 프로젝트는 2년 만에 끝났다.

성당 홍보담당인 루이사 베네비에리씨는 “사고가 났을 때 국민은 물론 전 세계 관심에 깜짝 놀랐다”면서 “복원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의 예방보존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국가적 분위기가 생겼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원 과정에서 적용된 방진설계 등의 새로운 시도를 배우고자 외국 교육기관에서도 성당을 방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시(이탈리아)=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출처: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61753&code=13160000&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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