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후, 영조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르게 되었다. 추존 진종의 양아들로서 왕세자로 책봉된 정조였지만, 왕위에 오르자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였다.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의 팔달산 아래 새로운 읍치를 건설하면서 화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선이 유교국가임을 내세운 정조는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지의 능을 돌보다는 명분을 세운 후,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한 치밀한 계획아래 화성 축조를 시작하였다. 실학의 영향으로 새로운 문물을 자유로이 접한 정약용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성곽관련 서적을 두루 섭렵하여 수원화성 축조에 응용하였고, 채제공의 총괄 아래 1794년 착공에 들어가1796년 완공됐다.

동양의 성곽과 서양의 도시 개념이 맞닿은 화성은 농업시설과 상업시설을 두루 갖춘 완벽한 신도시였다. 자연의 지형에 따라 성곽이 건
설된 화성은 서로 다른 48개의 시설물을 갖추게 되었고 당대 실학사상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결과물로 칭송받았다.

정조의 수원화성 축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단연 혜경궁 홍씨의 회례연이다. 1795년 윤 2월 창덕궁에서 약 6천여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내려간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혜경궁 홍씨의 성대한 회갑잔치를 벌였다. 신분의 차별 없이 노인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고, 쌀을 내려서 그 기쁨을 함께 했다. 화성행차를 오가며 많은 백성들을 직접 만난 정조는 민본사상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정조의 승하로 인해 화성으로 꽃피운 찬란했던 그의 꿈은 열매를 거두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그의 유언대로 현륭원 옆에 자리한 건릉에서 안장된 정조는 과연 아버지와 오래도록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